음악과 문학은 한 몸처럼 영혼을 움직인다
조영훈의 음악 읽기 7
인류의 역사를 함께 걸어온 음악과 문학의 그 길고 긴 서사.
지금은 ‘라떼’ 소리를 듣는 중장년층은 어린 시절 조용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입시 준비를 할 때도 조용한 환경을 선호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상황을 찾아 고시생들은 절밥을 먹으며 칠전팔기를 꿈꾸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세태가 달라졌다. 출퇴근길에 무선 이어셋도 모자라 아예 소니 헤드셋을 쓰고 출퇴근하는 모습이 너무 흔한 일상으로 다가오는 시절이다. 스타벅스에서 몇 시간씩 앉아서 공부하는 요즘 젊은 세대의 귀에는 당연히 이어셋이 꽂혀 있다. 음악을 들어야 공부도 잘되는 세대로 바뀐 셈이다. 누구나 한 번쯤 잔잔한 라디오 FM 방송을 들으면서 책 한 권 들고 식탁이나 소파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휴일의 호사를 누릴 때 마음의 평화를 느낀 경험은 있는 법.
사실 음악과 문학, 심지어 철학은 마치 한 몸처럼 인류 문화와 함께했다. 현대문명의 원조처럼 추앙되는 그리스 시대를 돌아봐도 서양음악 이론을 창시했던 사람은 수학자로 유명한 철학자 피타고라스다. 그는 음계를 창조해 멜로디를 인류에게 선물했다.
서구 문명의 근간이 된 기독교 문화에서도 음악과 문학은 한 카테고리로 움직였다. 중세 최고의 음악으로 꼽히는 ‘그레고리언 성가’는 라틴어로 문학을 거의 독점했던 수도사들이 성경인류 최고의 문학작품의 내용에 음계를 붙여 만든 대규모 음악 작품이다.
모차르트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미제레레 메이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작품은《시편》 제 51편의 첫머리를 주제로 로마교황청 소속 음악가 그레고리오 알레그리가 만든 최고의 ‘그레고리언 성가’로 꼽힌다. 다윗이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솔로몬 왕의 어머니를 범한 뒤 선지자 나단을 통해 이스라엘에 내려진 전염병의 징벌을 참회하면서 기록한 참회 시다. 이 음악이 너무나 아름다워 교황 우르바노 8세는 오직 교황만이 예배를 드리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성주간에만 연주하게 했고, 악보 자체를 유포하면 신성모독죄로 처벌할 정도로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1770년 어린 모차르트는 14세의 나이에 이 곡을 한 번 듣고 기억에 의존해 악보를 필사해 세상에 알렸고, 우리는 그 덕분에 지금 이 귀한 음악을 언제든 들을 수 있다.
문학이 음악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음악가들을 매료시켰다는 기록은 악성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사례에서도 발견된다. 절대음악을 추구했던 고전주의의 완성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의 부제는 ‘템페스트’. 그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작곡했다고 알려졌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작품의 부제가 됐다. 그의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의 주장으로, 진위 논란이 있지만 베토벤이 평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즐겨 읽고 좋아했다는 것은 정설로 통한다.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가면 문학은 본격적으로 음악의 중심으로 파고들어 음악 작품의 중요한 소재이면서 주제로 자리 잡는다. 낭만주의 전도사 정도로 볼 수 있는 슈만은 독일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시인이자 작가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집《노래의 책》 중 ‘서정적 간주곡’ 편에 실린 시 16편에 곡을 붙여 연가곡집《시인의 사랑》을 완성했다. 독일 가곡의 시작이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는 독일 서정 가곡의 완성이라고 하는 <겨울 나그네>를 남겼다. 독일의 시인 빌헬름 뮐러의 시를 음악으로 작곡한 연가곡집 24곡 중 5곡 ‘보리수’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른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를 슈베르트가 먼저 작곡했던 것을 감안하면, 뮐러는 슈베르트의 음악적 영감을 만든 스승이었던 셈이다.후기 낭만주의 시대에도 셰익스피어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러시아의 대표 음악가 표트르 차이콥스키는 희곡《로미오와 줄리엣》을 주제로 교향시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1935년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역시 셰익스피어의 같은 작품을 4막 8장 구성의 발레 음악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의 발췌곡 일부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작품과 함께 지금도 자주 연주된다.
중세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신곡》은 프란츠 리스트에게 영향을 미쳤다. 알리기에리 단테가 1308년부터 1320년까지 집필한《신곡》은 기독교 문화에 오랜 기간 영향을 미쳤고, 특히 미술과 음악에 끼친 영향이 지대했다. 리스트는 단테의 이 작품에 매료돼 피아니스트답게 1837년 <단테 소나타>를 만들었고, 후에 표제음악으로 <단테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는 이와 함께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희곡을 주제로 한 <파우스트 교향곡>을 만들기도 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1896년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호인 프리드리히 니체의 소설《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모티프로 동명의 교향시를 작곡했다. 쇼펜하우어에서 시작된 음악가의 철학적 관심이 음악 작품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좋아하는 책을 꺼내 들고 좋아하는 음악 한 곡을 듣는 여유. 괴팍해진 날씨가 잠잠해질 때 누릴 수 있는, 오랜 호사를 떠올리기 좋은 계절이 다가왔다.
editor심효진
words조영훈<리빙센스>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