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실험을 담은 집
삶의 디테일을 엄선해 집을 편집하는 시대.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LNH의 이승일 디렉터가 예술적이면서도 실험적인 공간으로 변형한 집.
집, 일상의 중심이 되다
이승일 디렉터는 서울 성북동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해 잠원동과 영국 런던, 랭커스터, 석촌동 등을 거쳐 이곳에 이르기까지 13번의 이사를 감행했다. 그 여정의 끝에 부부는 마침내 자신들만의 아파트를 갖게 됐다. 남편은 공간 디자인을, 아내는 그림을 공부하며 런던과 랭커스터에서 보냈던 기억들이 집의 풍경 곳곳에 스며 있다. 빛이 충분히 들지 않는 구조지만, 부부에게는 흐릿하고 평온한 영국의 날씨를 떠올리게 하며 오히려 안도감마저 들게 한다. 영국 생활 중에는 종종 호텔에서의 시간을 즐겼는데, 여행객의 마음으로 머물렀던 그 공간들은 두 사람의 감각과 취향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중 불가리호텔과 소호하우스는 세련됨보다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과 로컬의 요소를 가미한 따스한 분위기로 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훗날 이 집의 주된 디자인 언어로 자리 잡았다. 집 곳곳에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조화가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두 사람의 취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소호 홈과 셀프리지 백화점에 자주 드나들며 고른 조명들, 밀라노 박람회에서 우연히 들른 가리모쿠 쇼룸에서 발견한 의자까지,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에서 두 사람의 독특한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집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주요 요소인 아트워크 또한 섬세하게 계획됐다. 집이 넓어 보이게 하려면 큰 그림이 필요했지만, 공간에 완벽히 어울리는 작품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결국 부부가 직접 붓을 들었다. 공간의 비율을 고려해 크기를 정하고, 집의 풍경과 유기적인 작품을 표현했다. 그림부터 조각품까지,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작품들은 맞춤형으로 작업된 만큼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집을 완성하고 나니, 부부는 더는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호텔을 찾거나 불필요한 외출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예전에는 집에서 만족감을 못 느꼈기 때문에 호텔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곤 했죠. 하지만 그런 경험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어요. 공간이 바뀌니 삶이 달라지더라고요.” 이제 부부에게 집은 삶의 여백을 채우고 새로운 영감과 가능성을 열어주는 특별한 장소로 변모한 것이다.
집을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공간을 재정의 하는 방법
이승일 디렉터에게 이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실험의 무대였다. 획일화된 아파트 풍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간이길 바란 것. 공간 디자이너로서 그는 새롭게 연출한 이 집에서 직접 살아본 경험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주거 공간의 새로운 비전을 그리고 있다. 그는 이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때 한층 더 넓고 개방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여러 면으로 변주를 주었다. 먼저, 우리나라 아파트 특유의 낮은 천장을 철거한 후 층고를 4cm 높여 공간감을 확장하고, 현관 옆은 세라믹 소재를 활용해 빛을 반사시키며 부족한 채광을 보완했다. 주방은 기능적인 틀을 벗어나, 하나의 오브제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벽을 철거하고 상부장을 없애 일자로 길게 뻗은 주방은 호텔 리셉션처럼 따뜻한 환대의 분위기를 자아내며 집의 중심이 되어준다. 거실은 정형화된 모습을 탈피해 가구를 다양한 방향으로 배치하여 활동이 더욱 유연해지는 공간으로 완성됐다. 아울러 침실은 옆에 자리한 세미 드레스 룸을 과감하게 철거해 편안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갈무리했다.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에 담긴 실험 정신도 돋보인다. 직접 제작한 슬라이딩 수납장은 허리를 숙이지 않고도 물건을 꺼낼 수 있도록 설계했고, 현관의 동판 문패는 부부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내포했다. 이처럼 섬세한 조정이 만들어낸 큰 변화를 통해 이 집은 부부의 정체성을 온전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집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부부는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며, 매일 조금씩 집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editor김소연
photographer김잔듸·임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