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조셉 리저우드가 찾은 한국 술의 정취, 그 첫 여행기

2025-05-08     리빙센스

조셉 리저우드 셰프와 떠나는 양조장 투어 1

Unexpected Harmony

 익숙한 재료를 낯설게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만든다.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초록빛 막걸리에는 산초의 알싸함과 막걸리 특유의 부드러운 맛이 균형 있게 섞였다. 술에 ‘진심’을 담은 이들의 상상이 전통주와 만나 또 다른 가능성을 빚어냈다.

 

조셉 리저우드 (Joseph Lidgerwood)
호주 출신 셰프. 영국 ‘레드버리’, 미국 ‘프렌치런드리’ 외에도 다양한 나라에서 경력을 쌓았다. 한식의 매력에 빠져 한국에 정착한 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에빗(@restaurantevett)’을 열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직접 재료를 채집하고, 새로운 식재료를 탐색하는 일에 진심이다. 2021년 미쉐린 영 셰프 상을 수상했으며, 2020년부터 5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 스타를, 2025년에는 미쉐린 2스타를 획득했다. 2024년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하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식재료와 문화를 주제로 요리를 선보이는 조셉 리저우드 셰프Joseph Lidgerwood, 그 재료로 빚어낸 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는 〈리빙센스〉와 함께 한국 술을 경험하고 배우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며 술 안에 담긴 한국의 이야기를 마주하려 한다. 그 첫 번째 여정에는 한국의 술에 매료되어 그 매력을 전하고 있는 호주인 줄리아 멜로 대표(Julia Mellor)가 이끄는 더술컴퍼니(The Sool Company)와 함께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전통주를 직접 빚는 수업을 열고, 계절마다 제철 과일을 활용해 다양한 술을 만드는 더술컴퍼니(The Sool Company), 최근 조셉 리저우드 셰프와 협업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맛의 술을 개발했다. 그 중심에는 한국인이 가장 친숙하게 여기는 술 중 하나인 막걸리가 있다. 막걸리는 쌀을 발효시켜 만든 탁주 윗부분의 청주를 떠낸 뒤 남은 술지게미에 물을 타고 다시 걸러내 완성한다. 구수하고도 달큼한 맛, 그리고 톡 쏘는 산미가 특징이며 주로 4~6%의 낮은 도수로 가볍게 즐기기 좋은 술이다. 오랜 시간 한국의 서민층에서 사랑받아 온 막걸리는 조셉 셰프가 특히 좋아하는 술이기도 하다. 에빗(ebbitt) 팀은 전통적인 막걸리를 재해석해 에빗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요소를 더하고 싶었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은 주니어 수셰프 브린 크로스(Brin Cross)였다. 그가 주목한 재료는 다름 아닌 ‘산초’. 한국에서도 매운탕에 향신료처럼 넣어 먹는 정도로 알려진 산초를 술에 활용해 보자는 과감한 제안에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다. 연둣빛을 띤 신비로운 색감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산초 막걸리는 더술컴퍼니(The Sool Company)의 민준호 양조사, 에빗(ebbitt)의 주니어 수셰프 브린 크로스, 그리고 조셉 리저우드 셰프가 함께 연구한 결과물이다. 은은한 산초 향과 막걸리 특유의 달콤한 맛이 조화를 이루며 한 모금만 마셔도 누구나 “맛있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되는 술로 완성됐다. 산초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며 그들로부터 술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통주를 사랑하는 호주인, 줄리아 멜로가 설립한 더술컴퍼니@thesoolcompany. 모두가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술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조셉 리저우드 셰프와 손을 잡았다. 수십 번의 시음을 거친 끝에 완성된 산초 막걸리는 개성과 익숙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술이다.

산초 막걸리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민준호 대부분 한국 양조장은 한 종류의 술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요. 지문처럼 각자의 뚜렷한 개성이 있고, 설비도 그 술의 성격에 맞게 세팅되어 있죠. 반면 산초 막걸리 같은 경우는 그런 정해진 틀 안에서 출발한 술이 아니었어요. 에빗 팀이 원하는 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함께 완성해 나간 작품입니다. 더술컴퍼니는 누구나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막걸리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산초 막걸리를 만들어갈 때도, 에빗 팀이 그 위에 다양한 변주를 줄 수 있는 안정적인 베이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죠.
브린 산, 막걸리, 산초. 이 3가지는 제게 자연스럽게 연결돼요. 제가 등산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한국에서는 등산 후 막걸리 한 잔을 마시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산초는 한국 산에서 자생하는 식물이에요. 한국에 와서 처음 맛본 재료인데, 독특한 향과 맛이 매력적이었어요. 용문산 봉우리에 올라 사진을 찍던 중 한국 전통주인 막걸리와 산초를 섞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제품 개발이 시작됐어요.

막걸리를 만들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브린 처음에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보았는데, 그리 훌륭하진 않았어요(웃음). 하지만 더술컴퍼니에서 만든 베이스 막걸리는 정말 맛이 좋았죠. 산미가 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단맛이 느껴졌어요. 조셉 셰프가 이 막걸리를 베이스로 향을 더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정말 흥미로웠어요. 만드는 과정은 상당히 오래 걸렸죠. 막걸리에 산초 청의 비율을 1.5%, 2%, 3% 등 다양한 비율로 계속 바꿔가며 테스트했어요. 가장 맛있는 비율을 찾아야 했거든요.
민준호 가장 어려운 것은 적당한 ‘밸런스’를 맞추는 부분이었어요. 저는 산초 막걸리의 향과 맛이 모두 옅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누구나 편하게 마실 수 있게요. 하지만 에빗 팀과 이야기를 꾸준히 나누면서 방향을 조정해 나갔죠. 약 7개월의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70L가 넘는 양을 폐기했지만요(웃음). 최종적으로는 연결점과 여운이 돋보이는 술이 되었어요. 막걸리 안에서 옅은 사과 향과 산초의 폭발적인 향이 잘 연결됐고, 막걸리 특유의 씁쓸한 향과 산미가 마신 뒤에도 여운을 남기죠. 지속적으로 샘플 테이스팅을 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맞춰가고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과정은 길고 어려웠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산초 막걸리의 제작 과정에 대해 더술컴퍼니의 양조사와 디자이너, 그리고 조셉과 브린 셰프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일반 막걸리 병과 다른 패키지 디자인도 인상 깊어요.
브린 용문산에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더술컴퍼니의 디자이너가 한지 라벨로 제작해 주셨어요.
조셉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술이 막걸리예요. 그런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일반 플라스틱 병에 담긴 막걸리를 서빙하기가 어렵죠. 술의 맛만큼, 병의 디자인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막걸리와 차별화된 패키지를 만들고자 했죠.

산초 막걸리, 어떻게 마시면 가장 맛있을까요?
민준호 양조사 입장에서는 온전히 술 자체로 즐기는 것을 가장 추천해요. 얼음을 넣어서 온더록스로도 부드럽게 마실 수 있고요. 간단한 샐러드에 곁들이거나 식전주로 활용하는 것도 좋아요.
조셉 에빗에서는 산초 막걸리를 전복과 함께 페어링하고 있어요. 이 술을 직접 만들었다고 하면 고객들이 다들 놀라워하죠. 레스토랑에서 페어링하는 술에는 2가지 타입이 있어요. 단독으로 마셔도 맛있는 술과, 맛이 독특하고 흥미롭지만 한 병을 다 마시고 싶지는 않은 술이 있죠. 산초 막걸리는 한 잔이 아니라, 한 병을 다 마셔도 좋을 만큼 맛있어요. 입안에서 가볍게 퍼지고 부드러운 목 넘김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요. 술의 초록색과 산초 가루가 ‘제대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죠. 하얀 막걸리는 너무 많잖아요. 그 자체로 개성이 뚜렷한 술입니다.

 

조셉 리저우드 셰프가 들고 있는 산초 막걸리. 한지 라벨 위에는 산의 능선을 담은 이미지를 인쇄했다. 그 옆에는 더술컴퍼니가 만든 연엽주와 막걸리 ‘쌀싸’, 키위와 민트가 들어간 막걸리 ‘밤산책’도 함께 놓여 있다.
초록빛을 띠는 산초 막걸리는 목 넘김이 부드럽고, 산초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남는다.
Tasting Note

술의 맛과 향은?
막걸리 본연의 풍미에, 산뜻한 사과와 알싸한 산초의 향이 어우러져 섬세한 맛을 완성한다.

한 접시의 요리로 표현한다면?
사과 향과 부드러운 질감이 어우러진 애플파이.

이 술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와인처럼 음식 없이, 단독으로 한 병을 즐길 수 있는 완벽한 ‘테이블 막걸리’.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가벼운 맛이지만, 술 자체의 풍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

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산의 정수.

 


CREDIT INFO

editor신문경

photographer김잔듸·임수빈

취재 협조더술컴퍼니 thesoolcompany.com, @thesoolcom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