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랑’ 박상미의 여름 한 상

2025-08-05     리빙센스

화사랑 박상미의 
40년 음식만큼 깊어진 살림의 취향

1983년부터 ‘화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요리를 해온 푸드 아티스트 박상미. 2025년, 요리책《화사랑》을 세상에 내놓으며 스스로에게 40년 여정의 졸업장을 건넸다. 음식만큼이나 단단하게 쌓인 그녀의 살림 취향을 엿보기 위해 청운동의 집을 찾았다.


수 십년을 함께 있다가 최근 10년을 아들 집에서 보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그녀의 빈티지 그릇장. 

35년 된 빌라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긴 시간 쌓아온 취향의 조각들이 조용히 말을 거는 듯했다. 하얗게 정리된 공간 위에 절제된 빈티지 가구와 소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집. 새것의 단정함과 오래된 것의 온기가 절묘하게 공존했다. 푸드 아티스트 박상미가 이곳에서 살림을 꾸려온 지 10년. 그리고 바로 이 집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단 책 《화사랑》을 완성했다. 40년의 요리 인생에 마침표를 찍는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졸업장이기도 하다. 이날은 ‘음식만큼이나 맛있는’ 그녀의 살림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평소 그녀가 가장 아끼는 김정옥 도예가와 변승훈 작가의 그릇들.

세월의 손길이 닿은 빈티지가 좋아요.
“오래된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물건들이 참 좋아요. 처음엔 한국 빈티지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양 빈티지의 매력에도 푹 빠졌죠. 제 손에 들어올 땐 이미 수십 년, 어떤 건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온 것들이에요. 그 시간이 제 손에서 다시 흘러간다는 게,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예쁘잖아요. 제 눈엔 정말 예뻐요.”
박상미의 집에는 시간이 만든 아름다움이 곳곳에 숨어 있다. 안방 침대 옆의 옷장은 그녀가 평생 입어온 한복을 보관하는 공간. “문짝에 붙어있던 창호지를 떼고, 안쪽으로 옮겨 붙였어요. 나무살이 너무 예뻐서요.”
2층 딸아이 방에도 나무살이 인상적인 가구가 하나 있다. “그건 제가 직접 골동품 종이를 구해서 덧댔어요. 그런 손길 하나하나가 빈티지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줘요.” 거실 한가운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커다란 그릇장도 이야기가 깊다. “수십 년간 제가 아껴온 가구인데, 최근 10년 동안은 아들 집에 보관해두었어요. 올해 다시 데려왔죠. 제 손때가 많이 묻은 물건이에요. 안에 든 그릇들도 제가 가장 아끼는 것들이고요. 다른 사람은 손도 못 대요. 깨질 일이 있으면... 그건 제가 깰래요. 누가 깨트리면 마음이 찢어지니까요(하하).”
빈티지가 좋은 이유는 결국 ‘이야기’ 때문이라는 그녀. “사람도 물건도 한순간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보다 긴 시간 동안 묵묵히 빛을 품는 게 좋아요. 그래서인지 여행을 가도 눈길은 늘 그 나라 빈티지 소품에 머물러요. 집 안 곳곳에 그렇게 모은 것들이 쌓여 있죠. 시간이 쌓일수록 더 정이가고, 언젠가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에 설레요. 함께 나이 들어가는 기분이랄까요.”

 

손 때 묻은 다양한 빈티지 소품들이 가득한 그릇방.
구하기 어려운 골동품 한지로 붙여 더 애착이 가는 가구는 딸 방에 놓았다.

그릇을 보면, 먼저 떠오르는 건 음식이에요.
“사람들이 종종 물어요. 어떤 기준으로 그릇을 고르냐고요. 제 기준은 아주 단순해요. 그릇을 봤을 때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사요. 그렇게 고르다 보니, 어느새 내 취향에 맞는 작가의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더라고요.”
박상미의 그릇장에는 김정옥 도예가의 작품이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책 《화사랑》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그릇들 역시 그의 작품들이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매번 전혀 다른 느낌의 라인을 보여줘요. 무엇보다 요리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라, 요리하는 제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즐거운 쇼핑이 없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장 자주 쓰게 돼요.”
최근 가장 마음에 드는 시리즈는 나뭇잎을 직접 찍어 자연의 결을 그대로 살린 ‘나뭇잎 접시’. “볼 때마다 감탄이 나와요. 아직도 새로운 그릇을 보면 요리가 하고 싶은 저 자신이 신기할 정도예요.”
거실 벽에 걸린 커다란 달항아리 역시 눈에 띈다. 분청의 대가 변승훈 작가의 작품이다. “이 작가의 그릇도 정말 좋아해요. 최근에 선보인 ‘우주 시리즈 접시’는 특히 마음에 들어요. 세 점을 나란히 놓고 보면 마치 각기 다른 행성을 바라보는 듯한 신비로움이 있어요. 기분까지 좋아지죠.”
그녀의 말처럼, 박상미의 집에서 그릇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이야기를 품은 존재들이다. 매일의 식탁이 특별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달항아리를 벽에 붙인 것 같은 변승훈 작가의 판 달항아리.
여행 마니아다운 그녀의 여행 소품들로 가득한 주방 한 켠.

 

여행은 제게 최고의 요리 공부예요.
“남편과 저는 여행을 참 좋아해요. 하지만 식당 ‘화사랑’을 처음 운영할 땐, 여행은커녕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죠.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서부터는 정말 열심히 다녔어요. 캐나다에 유학 간 딸이 저희 부부의 전속 가이드였고요.”
전 세계 어디를 가든 그 나라의 시장은 필수 코스. 식재료를 둘러보고, 현지 맛집을 찾아다니며, 여건이 되면 쿠킹 클래스에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자연스럽게 박상미의 요리에 녹아들었다. “식재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그것들이 돌아와 내 요리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어요. 덕분에 요리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더 깊고 넓게 바라볼 수 있게 됐죠.”
그녀의 도전 정신은 2015년 김용문 도예가의 튀르키예 개인전에서 빛을 발했다. 푸드 아티스트로 참여하며 선보인 요리는 다름 아닌 튀르키예 전통 음식인 항아리 케밥.
“한국에서 외국인이 김치찌개를 끓이는 것과 비슷한 도전이었죠. 그래도 반응은 정말 뜨거웠어요. 다음 날 현지 신문에 기사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참 설레는 순간이에요.”
박상미에게 여행은 단순한 ‘쉼’이 아니다. 요리라는 삶의 중심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배움의 시간이자, 새로운 시도를 위한 연료다.
“같은 나라도 갈 때마다 새로운 영감과 경험을 줘요. 제 인생에서 여행은 절대 빠질 수 없는 한 부분이에요. 그리고요, 식재료나 그릇, 소품 쇼핑의 재미도 정말 크답니다(웃음).”

Table of Summer
여름의 맛, 여름의 상.

책 《화사랑》에 실린 수많은 레시피 중, 지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던 메뉴들만 골라 여름 손님상을 차린 박상미. “손님을 초대할 땐 메뉴 구성부터 그릇 고르기, 테이블 세팅까지 하나하나 고민하는 그 과정이 참 즐거워요. 이번엔 여름 느낌 가득한 재료들로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한상을 차려봤어요.” 든든한 한 끼이자, 술 한잔 곁들이기에도 좋은 메뉴들. 박상미가 직접 꼽은 ‘여름 베스트 4’를 소개한다.

《화사랑》푸드 아티스트 박상미의 40년 계절 레시피.

 

고수 샐러드

재료
고수 1단, 자색 양파 1개, 잔멸치·견과류 한 줌씩, 다진 마늘 2쪽 분량, 풋고추·홍고추 1개씩, 어간장·레몬즙·고춧가루 1큰술씩, 볶은 참깨 ½큰술, 설탕·참기름 약간씩

만들기

  1. 고수를 손질해 씻은 후 4cm 길이로 자른다.

  2. 자색 양파를 손질하고 씻은 후 4cm 길이로 채썬다.

  3. 볼에 ①, ②를 넣고 잔멸치(가이리)와 견과류(캐슈너트, 호두, 아몬드, 마카다미아, 땅콩 다 좋다), 다진 마늘과 풋고추, 홍고추를 얇게 어슷썰어 넣는다.

  4. ③에 어간장으로 간을 하고 레몬즙, 고춧가루, 볶은 참깨를 넣고 설탕과 참기름을 아주 조금 넣어 숨이 죽지 않게 겉절이처럼 무쳐 낸다. 레몬즙이 멸치의 비린내를 잡아준다. 

“술꾼들이 배부르면 찾는 마른안주에서 착안했어요. 향이 강한 고수와 멸치, 견과류가 만나면 배는 안 부르면서 느끼함은 잡아주는 최고의 안주나 반찬이 되거든요. 거의 모든 주종과 잘 어울리며, 샐러드처럼 즐기면 돼요. 김치가 없을 때도 유용해요.”

항아리 케밥

재료
소고기 채끝, 양파, 당근, 감자, 가지, 양송이버섯,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마늘 2쪽, 올리브오일, 버터, 바질 가루, 통후추(갈아서), 베이컨 칩, 월계수 잎, 치킨스톡 2개, 사프란, 쌀, 소금

만들기

  1. 도기 항아리를 준비한다.

  2. 소고기(채끝)에 올리브오일, 후추, 바질 가루를 뿌려 재웠다가 팬을 센 불에 달궈 겉면만 살짝 익힌다.

  3. 양파, 감자, 당근, 소고기, 가지, 파프리카를 2×2cm 크기로 깍둑썰기 해 도기에 층층이 담는다.

  4. 방울토마토, 저며 썬 양송이버섯과 마늘을 얹고, 그 위에 베이컨 칩, 바질 가루, 후추, 버터, 올리브오일, 월계수 잎을 올린다.

  5. 미지근한 물 한 컵에 치킨스톡을 녹여 ④ 위에 붓고, 뚜껑을 덮어 220℃로 예열된 오븐에서 1시간 굽는다.

  6. 쌀을 씻어 불리고, 사프란도 물에 불린다. 밥솥에 쌀을 넣고 사프란 물을 붓고 올리브오일을 살짝 두른 후 소금을 조금 더해 백미 모드로 밥을 짓는다.

  7. 접시에 사프란 밥을 적당량 담고 항아리 케밥을 덜어 함께 먹는다.

 

“20년 전쯤 튀르키예 여행을 처음 갔을 때 카파도키아 동굴식당에서 항아리 케밥을 처음 먹고 너무 감동해, 한국에 돌아와서 만들어 보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레시피가 나오지만, 그때는 온전히 내 기억에 의지해 맛을 찾아내야 했죠. 그렇게 5년 정도 연습한 끝에 튀르키예 사람들에게도 해주는 자신 있는 메뉴가 되었답니다.”

연어 화덕구이

재료
연어 필렛 1마리, 게맛살, 날치알, 마요네즈, 생파슬리 약간

만들기

  1. 연어(필렛)를 종이 타월로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고 양면에 레몬즙을 고루 바른 후 후추를 약간 뿌린다.

  2. 볼에 게맛살을 잘게 찢어 담고, 날치알, 마요네즈를 듬뿍 넣고 섞어 토핑을 만든다.

  3. 준비한 연어를 오븐 용기에 담고 ②의 토핑을 듬뿍 얹어 편평하게 모양을 잡는다.

  4. ③을 예열된 화덕에 넣고 윗면이 노릇노릇해지게 굽는다. 또는 220℃로 예열된 오븐에 20분간 굽는다. 

  5. 다 익어갈 때쯤 생파슬리를 다져서 위에 뿌리듯 얹는다.

  6. 먹을 때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이 연어구이는 만들기도 간편하고 누구든지 다 좋아해서 그야말로 손님상에 딱 좋은 메뉴랍니다. 여러 명이 나눠 먹는 파티 음식으로 제격이죠. 비주얼도 폼이 나니까 꼭 손님 초대상에 올려보세요.”

건자두 새우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롤

재료
베이컨, 새우, 아스파라거스, 건자두

만들기

  1. 새우는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뺀 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물기를 제거한다. 냉동 새우는 자연 해동한 후 데친다.

  2. 아스파라거스는 6cm 정도 길이로 자른다. 위에서부터 12cm 정도만 쓴다.

  3. 베이컨은 7cm 정도로 자른다. 보통 3등분하면 된다.

  4. 건자두 1개를 베이컨으로 돌돌 말아 이쑤시개로 고정한다. 같은 방법으로 새우 1개, 아스파라거스 2개도 베이컨으로 꼭꼭 만다.

  5. 220℃로 예열한 오븐에 넣고 베이컨이 노릇해지도록 10분 정도 굽는다.

  6. 키친타월로 기름기를 닦은 후 접시에 담는다.

 

“뷔페 상차림이나 술안주로 내기 좋은 메뉴예요. 식어도 맛있어서 미리 만들어두었다가 손님이 왔을 때 구워내면 좋아요. 베이컨이 짭조름해 다른 간이나 소스가 필요 없어 만들기 간단한 메뉴랍니다.”

 


CREDIT INFO

freelance editor김수영

photographer김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