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리저우드 셰프와 떠나는 양조장 투어 4 - 담을술공방
조셉 리저우드 셰프와 떠나는 양조장 투어 4
빚어 만든 한 모금
담을술공방은 도예가 부부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흙을 빚어 항아리를 만들고, 그 안에 정성껏 빚은 술을 담아 천천히 익힌다. 긴 시간을 견뎌낸 술은, 한 모금마다 세월을 천천히 음미하게 한다.
충주의 도자기 마을에 자리한 ‘담을술공방@ dameul’. 이윤, 윤서예 부부가 운영하는 이 양조장은 증류식 소주를 전문으로 만든다. 생활 자기를 만들던 도예가 부부가 술의 세계에 발을 들인 건 어느덧 20여 년 전의 일이다. 2006년, 두 사람은 국순당의 양조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술을 배우던 중 창업주인 고故 배상면 회장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 술의 수출량은 미미했고, 국내 증류주는 대부분 수입 위스키나 중국 백주에 밀려 존재감이 약했다. 그런 상황에서 배 회장은 “좋은 술을 만들어서 한국 술의 소비량을 늘렸으면 좋겠다”라고 조언했다. 도예가라는 이들의 이력을 듣고는 “직접 증류주를 숙성할 수 있는 좋은 항아리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라는 제안도 덧붙였다. 그 말은 당시 40대였던 부부의 마음에 도전의 불씨를 지폈고, 이후 술을 숙성하는 항아리를 완성하기까지 꼬박 5년여의 시간을 들였다. 그러나 한국 증류주 시장엔 ‘숙성’이라는 개념이 생소했기에, 초반에는 홍보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2016년부터 항아리의 효능을 보여주기 위해 증류주를 빚는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주향소주’ 시리즈는 최소 3년 이상 항아리에서 숙성한 증류주다. 68도에서 70도 사이 원액을 항아리에 넣고, 오랜 시간 숙성시킨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코올이 안정화되고, 거친 맛이 정돈되어 부드러운 목 넘김이 살아나고 정제된 풍미를 갖게 된다. 23도, 41도, 55도, 3가지 도수로 선보이는 주향소주는 높은 도수임에도 깔끔하고 산뜻한 여운을 남긴다. 담을술공방은 정도正道를 걷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단맛을 내기 위한 감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쌀이 지닌 고유의 단맛과 향으로 승부한다. 술이 숙성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만큼, 부부는 항아리를 만드는 시간 역시 묵묵히 견딘다. 이윤 대표는 이 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가마 앞에서 매일 수십 개의 항아리를 구워낸다. 그런 고된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담을술공방을 이루고 있다. 이제는 이들이 만든 숙성 항아리가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담을술공방은 숙성 소주를 중심으로 한 인프라와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 있다. 국내 유명 소주 브랜드들 역시 이곳의 항아리를 활용해 자사 제품을 숙성하고 있다고. 세월을 빚어 완성한 소주. 그 안에 담은 이야기를 이윤, 윤서예 대표에게 들어보았다.
도예가였던 두 분이 양조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윤서예 저희 부부는 주로 생활 자기를 만들었어요. 수원에서 작업을 하다가 규모를 줄여 충주의 도자기 마을로 작업실을 옮기게 됐죠. 당시 시아버님께서 벼농사를 지으셨는데, 직원이 없어 식구가 줄어든 상황에서도 여전히 쌀을 많이 보내주셨어요. 마침 전국적으로 쌀 소비 촉진 운동이 일어났을 때라 취미 삼아 막걸리를 한 번 만들어보았는데, 좋은 레시피가 있었음에도 실패했죠(웃음). 취미로 술을 담그더라도 기본은 알아야겠다고 생각해서 국순당의 양조 집중 교육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 겸 노후를 위한 준비 정도로 생각했고요.
본격적인 술 빚기 이전에 숙성 항아리를 먼저 개발하셨다고요.
윤서예 지금은 별세하신 배상면 회장님께서 앞으로는 한국 술도 위스키와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숙성이 핵심인데, 한국에는 숙성용 항아리가 없다는 거예요. 회장님께서 도예가인 저희에게 직접 숙성 항아리를 만들어볼 것을 제안하셨죠.
이윤 위스키가 오크통으로 숙성되듯, 우리만의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크통이 아닌 우리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술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도자기를 연구했죠. 숙성 항아리는 2011년도에 개발을 마쳤어요. 그런데 막상 만들어놓고 보니, 아무도 안 사는 거예요. 그래서 직접 술을 만들어 이 항아리가 어떤 효과를 내는지 증명하자는 생각으로 2016년에 양조장을 열게 됐어요.
일반 항아리와 담을술공방의 항아리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윤 저희 항아리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만듭니다. 그래서 오크통처럼 미세하게 공기가 통해요. 그 공기 덕분에 술이 자연스럽게 익어가는 거죠. 일반 항아리는 유약이 발라져 있어 숙성이 효율적으로 되지 않아요. 이 기술은 현재로서는 저희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국내의 여러 양조장과 교육장에 저희 항아리를 공급하고 있어요.
이 항아리는 하루에 얼마나 만드시나요?
이윤 둘이서 열심히 작업하면 하루에 30개 정도 만들 수 있어요.
발효주가 아닌 증류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양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도 궁금합니다.
이윤 처음부터 목표가 외국 술과 경쟁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수출 가능성을 가장 먼저 고려했어요. 발효주는 유통기한이 짧고 살균하면 맛이 변하기 쉬운데, 증류주는 보존성과 맛의 안정성이 뛰어나기에 소주를 선택했죠. 또 술을 판매하려면 무엇보다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같은 맛이 나와야 하니까요.
술을 만드는 동안 생각이나 방향이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윤서예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는 것 같아요. 늘 좋은 술을 만들고, 그 자체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거든요. 처음 저희가 배상면 회장님께 배운 철학을 잊지 않고 있어요.
이윤 우리는 숙성 소주를 만들잖아요. 지금 마시는 술은 3년, 4년 전에 만들어놓은 거예요. 이렇게 오랜 시간 숙성되면서도 변하지 않는 맛을 내는 것이 중요한데요. 그래서 처음 정한 원칙과 방식, 정체성을 꾸준히 지켜오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술은?
‘주향소주’ 시리즈 중 55도. 나에게 소주는 과거 양반들이 마시던 귀한 술이다. 도수가 높고, 풍미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55도 소주는 첫맛은 날카롭지만, 곧 고소한 땅콩 맛이 입안에 은은하게 남는다. 입을 헹구지 않고 여운을 따라가면, 더 깔끔하고 고소한 맛이 느껴진다. 향은 갓 구운 빵, 발효된 밀가루의 구수한 향이 떠오른다.
맛있게 먹는 방식은?
도수가 높으므로 온더록스로 즐기기 좋다. 소주 본연의 맛을 잘 느낄 수는 없겠지만, 하이볼로 만들어도 잘 어울린다. 실온에 두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마시는 것도 추천한다. 삼겹살 같은 기름진 음식과 곁들이면 느끼함을 잡아주어 궁합이 좋을 것이다.
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진정한 소주.
호주 출신 셰프. 영국 ‘레드버리’, 미국 ‘프렌치런드리’ 외에도 다양한 나라에서 경력을 쌓았다. 한식의 매력에 빠져 한국에 정착한 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에빗@restaurantevett’을 열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직접 재료를 채집하고, 새로운 식재료를 탐색하는 일에 진심이다. 2021년 미쉐린 영 셰프 상을 수상했으며, 2020년부터 5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 스타를, 2025년에는 미쉐린 2스타를 획득했다. 2024년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하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editor신문경
photographer임수빈
취재 협조 담을술공방 @_dameul_, 윤두리도예공방 smartstore.naver.com/yund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