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언어로 다시 읽는 단독주택
낭만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다. 계절의 리듬을 생활의 규칙으로 바꿔낸 건축가 채성준 씨@sungjoon.chae의 집.
제약을 지운 리듬
“모든 사람이 단독주택에 살면 좋지 않을까요?(웃음)”
단독주택에서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한가로운 풍경 뒤로는 계절의 온도와 물의 길, 하루의 빛이 어긋나지 않도록 살피는 설계와 운영의 책임이 생활 가까이에 놓인다. 무언가 잘못되면 관리사무소 번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의 판단이 먼저 서고, 필요한 결정은 집 안에서 곧장 내려진다. 그 축적이 결국 공간의 컨디션을 만든다. 건축가 채성준 씨의 집은 그 원칙이 어떻게 공간을 만드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는 몇 가지 체크리스트로 기초를 다진 후, 사람 중심의 동선을 최적화하고 생활 리듬에 맞춰 거실을 증축하며 공간을 확장하기로 했다. 그렇게 단독주택은 자유로운 캔버스로 거듭났고, 그 첫 붓질은 가족이 오래 머무는 거실에서 시작됐다. 넓어진 거실은 일상과 손님맞이, 가벼운 작업까지 품는 다목적 공간으로 변신했다. 아이가 자라면 라이브러리나 오피스로 자연스럽게 성격을 바꿀 여지도 남겼다. 깊은 매스의 답답함은 천창으로 풀어냈다. 위에서 들어오는 자연광 덕에 낮에는 불을 켤 일이 드물고, 서쪽으로 열린 면은 직사광선을 비껴 받아 빛의 결만 길게 끌어들인다.
넓은 공간만큼 유지비가 커질 것이라는 편견도 덜었다. 공조는 천장 속에서 순환시켜 직풍 없이 공기가 고르게 퍼지게 하고, 조명은 디밍으로 장면에 맞춰 밝기만 조정했다. 난방은 필요한 구역만 선택적으로 켜는 방식으로 운영하며, 지붕에는 태양광을 올려 기본 전력을 스스로 감당하도록 설계했다. 결과적으로 규모는 커졌지만 운영은 단순해지고 부담은 가벼워졌다. 인테리어는 ‘좋은 것’ 몇 가지에 집중하고 과장된 마감은 배제했다. 맨발이 닿는 바닥은 편안한 촉감과 온기가 느껴지는 재료로, 벽은 손길이 잦아도 관리가 쉬운 마감으로 골랐다. 장식보다 사용감과 내구성을 우선한 선택이다.
이 기준은 가구에도 이어졌다.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설계의 연장선으로 접근한 것이다. 넓은 거실 초입에는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화병과 소지품을 올려둘 수 있는 나무 테이블을 두어 환대의 의미를 담았다. 거실의 폭을 감싸는 러그는 원하는 패턴으로 제작해 장면의 중심을 단정히 잡아준다. 다이닝 룸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앉아도 대화가 어지럽지 않도록 넉넉한 크기의 테이블을 만들고, 같은 선상에 놓인 벤치로 풍경을 정리했다. 기성품으로는 맞추기 어려운 길이와 균형이 이렇게 비로소 완성됐다. 이 집이 택한 길은 한 줄로 요약된다. 좋은 기본기 위에 삶이 완성되는 공간. 단독주택은 막연한 대상이 아니라 매일 완성되는 집임을 이곳은 조용히 증명한다.
초록의 숨, 집의 호흡
“계절이 바뀌면 정원의 색도, 천창으로 들어오는 빛의 결도 달라져요. 그때마다 실내와 실외가 자연스럽게 포개어지죠. 그게 단독주택을 사랑하게 만드는 지점이에요.” 이 집의 일상은 늘 자연을 곁에 둔다. 전면 통창이 안과 밖의 경계를 옅게 하여 정원이 삶의 배경이 된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정원은 더욱 특별하다. 아침마다 아이와 함께 잔디를 걸으며 꽃잎을 만지고, 자라나는 잎을 가까이에서 살핀다. 비가 그친 뒤 화로에 고인 물에 새가 내려와 목을 축이는 모습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주말이면 부부는 근처 꽃시장에 들러 그 계절에만 볼 수 있는 꽃을 사 와 화단에 심고, 정원에서 잘라낸 수국을 화병에 꽂아 실내로 이어붙인다. 위로 낸 천창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빛이 달라지는 변화를 선명히 보여준다. 유리를 넉넉히 사용한 다이닝 공간은 정원과 맞닿아 있어, 테이블에 앉으면 하늘과 녹음이 한 프레임에 담겨 자연 속에 파묻힌 듯한 식사 경험을 선사한다. 이처럼 이곳에서 자연은 풍경이 아니라 습관이다. 매일의 초록 시간이 쌓이면 집은 자연을 닮아가고, 생활은 한결 너그러워진다. 자연을 곁에 둔다는 건 결국 하루의 속도를 빛과 바람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고르는 일이다.
editor김소연
photographer김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