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신라, 이태원에서 피어나는 커뮤니티의 미학
서울 이태원으로 자리를 옮긴 갤러리신라@galleryshilla는, 이제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다. 예술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의 장’으로서, 새로운 시대의 갤러리 모델을 제안하고자 한다. 디렉터 이준엽은 “예술의 본질은 작품 거래가 아니라 맥락의 교환”이라 강조하며, 갤러리신라의 새로운 비전을 풀어놓았다.
함께 경험하는 예술을 위한 갤러리
최근 미술시장의 흐름에 대해 이준엽 디렉터는 ‘예술품의 채권화’를 언급했다. 작품이 주식처럼 끊임없이 가격 상승 압박을 받으면서, 작가와 관람객이 경험하는 본질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찍이 이러한 한계를 감지하며 “예술의 새로운 기능이 단지 채권화에 머물 수는 없다. 결국 예술의 본질은 작가와 작품, 관람객이 함께 쌓아가는 맥락에 있다.”고 말해왔다. 이러한 인식은 갤러리 신라의 운영 전략에도 영향을 미쳤다. 단순히 작품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작품을 매개로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된 것이다. “삼청동 시절에도 멤버십 ‘신라구락부’와 라운지를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접근성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이태원으로 이전한 것은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죠.” 현재 갤러리 신라는 강연과 공연, 디너 이벤트뿐 아니라 브랜드와의 협업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경험하는 예술’을 실험하고 있다.
책처럼 읽히는 공간
이태원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갤러리 신라는 6층부터 8층까지의 공간을 사용한다. 층별 구성을 어떻게 기획했는지 묻자 이준엽 디렉터는, “이스턴 에디션과의 협업, 그리고 책”이라고 답했다. 6층은 가장 드라마틱한 인상을 주는 책의 첫 페이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타나는 낮고 좁은 통로를 지나면 가장 먼저 작품이 시야에 들어온다. 관람객은 단 3초 만에 시각적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판단을 내리며, ‘이 콘텐츠를 더 보고 싶다’는 동기를 얻게 된다. 7층은 책의 중반부다. 대형 작업이 아니더라도 작가의 생각과 서사가 담긴 작업들을 배치해, 6층에서 생긴 호기심과 웅장함을 어느 정도 풀어내면서도 작가의 의중과 세계관을 더 알고 싶게 만든다. “6층과 7층의 가장 큰 특징은 좁고 낮은 통로입니다. ‘엘리스의 토끼굴’이라 부르는 이 통로는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하고, 이 경험을 거친 뒤 전시장의 높은 층고를 더욱 크게 느끼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죠.” 8층은 라운지다. 멧 갈라 디너에서 영감을 받은 이 공간에는 24인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놓여 있다. 직접 조명 대신 간접 조명만을 사용해 ‘보이지 않음으로써 더 보여주는’ 역설적 미학을 구현했다. 이번 새로운 공간의 인테리어는 디자인 브랜드 이스턴 에디션 @easternedition과 협업해 완성도를 더했다. 단순히 가구를 배치하는 차원을 넘어 작품과 공간, 가구가 하나의 맥락 안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한 것이 포인트라고. 이준엽 디렉터는 “이스턴 에디션은 제품 자체의 완성도뿐 아니라 갤러리 콘셉트에 맞춘 주문과 준비, 설치까지 전 과정에서 느껴지는 정성과 커스텀 메이드의 감각이 인상적이었다”며, 갤러리스트로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전한다. 갤러리 신라가 추구하는 조화와 미학이 이번 이스턴 에디션과의 협업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것. 이로써 갤러리 신라는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위한 무대이자, 다층적 경험에 최적화된 공간으로서의 완성미를 갖추게 됐다.
한 번쯤은 한국에서 매출 1등 갤러리가 되어보고 싶습니다.
매출은 상대적인 예술 세계에서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가장 객관적인 증명일 테니까요.
갤러리 신라가 꿈꾸는 미래
현재 갤러리 신라에서는 뉴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김치앤칩스 @studiokimchiandchips’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레이저와 엔지니어링, 프로그래밍을 활용해 ‘기술을 통한 새로운 시각적 인식’을 제시하는 이들은, 단순한 신기함을 넘어 독창적인 경험을 전달한다. 갤러리 신라의 앞으로의 계획 역시 흥미롭다. 남산과 한강에 인접한 지리적 장점을 살려 웰니스 프로그램을 올해 안에 도입할 예정이다. 운동과 전시를 결합해 ‘일상의 예술’을 완성하려는 시도다. 또한 이스턴 에디션과의 협업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가구와 가전 브랜드와의 파트너십도 확대할 예정이라고. 갤러리 신라가 추구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단순히 비싸고 유명한 작품을 보러 오는 공간이 아니라, 작품의 맥락을 함께 나누는 커뮤니티형 갤러리다. 예술이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통로를 만들고, 관람객이 자주 찾아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갤러리 신라를 가장 잘 경험하는 방법이 아닐까.
CREDIT INFO
editor송정은
photographer김잔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