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가든을 향한 걸음

2025-10-20     리빙센스

인간과 자연을 연결해 온 오랜 문화이자 예술인 정원. 최근 문을 연 국립정원문화원은 정원의 가치를 한국적 미학과 시선으로 재정립하고, 세계에 한국 정원을 선보이려 한다. 자연이 숨 쉬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정원 문화의 새로운 장이 시작된다. 

전남 담양에 새롭게 문을 연 국립정원문화원. 겹겹이 산이 둘러싸고 있어 잔잔한 정취가 흐른다.

전남 담양군의 금성산 자락에 한국 최초의 정원 전문 공공기관, 국립정원문화원이 문을 열었다. 지난 5월 임시 개관을 시작으로 9월 18일 정식 개원식을 마친 이곳은 한국적 정원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동시에 한국 고유의 정원 문화와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한다. 정원 조성과 교육, 체험과 전시, 관광에 이르는 다채로운 활동을 펼칠 계획인 국립정원문화원. 다양한 식물과 향기를 체험할 수 있는 갤러리 온실, MBTI별로 어울리는 식물을 추천하는 고즈넉한 수풀재한옥 쉼터, 곳곳에 자리한 수생 정원과 아기자기한 온실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첫 발걸음을 뗀 국립정원문화원의 비전과 방향을 한동길 원장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문의 국립정원문화원 kngcc.koagi.or.kr/intro, 061-380-1200
주소 전남 담양군 금성면 하성길 33-37금성리 국립정원문화원
운영 시간 화~일요일, 하절기3~10월 오전 9시~오후 6시, 동절기11~2월 오전 9시~오후 5시
입장료 무료


한동길 국립정원문화원장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운영본부장을 지낸 뒤, 현재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산하 국립정원문화원장을 맡고 있다.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누구나 정원 문화를 쉽게 접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국립정원문화원은 어떤 기관인가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외출이 제한되면서 자연 공간에 대한 갈증이 커졌고, 자연스럽게 정원에 대한 관심과 수요 역시 꾸준히 늘었습니다. 산림청은 더욱 많은 국민이 생활 속에서 정원을 쉽게 접하고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실내외 정원을 조성해 왔는데요. 국립정원문화원은 이런 흐름을 이어받아 정원 문화를 확산하고, 누구나 정원을 배우고 즐길 수 있도록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산하 기관입니다. 실내외 정원은 물론 심리적 안정을 돕는 디지털 정원까지 마련했으며, 정원이 인간에게 미치는 효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정원과 관련한 인재 양성에도 힘쓰고 있어요. 설계와 관리 전문 교육을 비롯해, 환경·예술·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정원을 다각도로 탐구하는 ‘정원 속의 인문학’ 등의 강연으로 정원의 가치를 널리 알릴 예정입니다.
 

정원은 우리 삶과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오늘날 정원은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회복의 대안으로도 주목받고 있죠. 나아가 공동체를 연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산책이나 명상을 할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고, 반려식물이나 작은 텃밭을 가꾸는 이들에게는 성취감과 자기표현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주민이 함께 가꾸는 마을 정원은 소통과 협력의 공간이 되고, 식물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불안과 우울이 완화되어 신체적·정서적 회복을 돕습니다. 공공 정원은 생태교육과 환경 인식을 높이는 동시에 도시재생과 문화 확산의 동력이 되며,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고 경제적 활력까지 불어넣죠. 결국 정원은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허브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국립정원문화원도 세대와 이웃이 함께 소통하고, 생태와 자연을 흥미롭게 배울 수 있는 학습 공간이자, 축제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적 즐거움을 누리는 생활 속 정원 문화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국립정원문화원은 정원의 다양한 모델을 경험할 수 있도록 여러 콘셉트의 정원을 마련했다. 정원전문관리사 교육생들이 조성한 ‘잎의 정원’ 너머로 작은 오두막이 보인다.
소담한 연꽃이 피어 있는 수생식물정원. 곳곳에 벤치를 두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꾸몄다.

문화원이 특히 집중하는 방향이 있다면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형 정원, 즉 한국 고유의 정원 철학과 미학을 담은 ‘K-가든’의 정의와 형태를 정립하는 일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각국의 특징을 담은 정원 문화를 확립했지만, 한국의 정원은 그 개념이 아직 완벽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정리된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한국형 정원이란 ‘전통 정원의 자연 친화적 문화를 계승하면서 현대적 생활양식과 디자인, 기술을 접목한 정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조경의 핵심은 외부의 자연을 끌어와 생활 공간과 연결하는 차경借景 기법인데요. 이는 우리 곁의 자연을 삶 속에 담아내려는 철학입니다. 국립정원문화원은 차경의 미학을 유지하면서도 현대 문화를 반영해 정원 문화를 발전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적인 정원 트렌드가 ‘자연주의’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정원 속에 담아왔기에 충분히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한국형 정원의 모델을 완성해 국내 조경 산업에 확산시키고, 세계로 수출하고자 합니다.
 

한국 정원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무엇보다도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 조화로움에 있습니다. 서양의 정원은 대체로 개인 주택의 뒷마당에 마련되어 있어 사적인 성향이 강하죠. 정원을 한자어로 풀면 뜰 정, 동산 원으로, 집 안의 뜰을 의미하는데, 한국의 정원은 오히려 열려 있습니다. 아파트 생활이 중심이다 보니, 한국형 정원은 공용공간에 조성되는 경우가 많아요. 개인적인 집을 이루는 공간이면서도 이웃과 함께 즐기는 지점이 한국 정원의 독특한 매력입니다. 많은 이들이 오가는 국가 정원부터, 작은 식물이 놓인 실내 정원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일상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후와 생활 방식에 맞게 끊임없이 변형되고 확장되는 것 또한 한국형 정원의 특징이라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도 한국 정원이 주목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상 깊은 사례가 있다면요?
대표적으로 세계적인 정원 박람회인 영국 ‘첼시 플라워 쇼’에서 황지해 작가가 거둔 성과가 있습니다. 황 작가는 지난 2011년, 2012년, 2023년 세 차례 금상을 수상하며 한국 정원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특히,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후원한 2023년 작품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는 지리산 약초 군락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는데, 한국 자연을 담은 이 정원은 영국 찰스 3세 국왕도 감탄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현재 전 세계 약 40개소에 한국 정원이 조성돼 있는데, 지난해 뉴욕의 한국문화원에 우리 기관이 직접 기획하고 조성한 정원은 특히 의미가 깊습니다. 설계 과정을 통해 정원이 단순히 공간을 꾸미는 개념을 넘어, 예술 작품이자 한국 문화를 알리는 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수풀재한옥쉼터에서는 MBTI별 추천 식물, 정원 꾸미기 아이디어와 반려식물 전용 가전까지 만나볼 수 있다.
쉼터 창가에 서면 국립정원문화원의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정원과 예술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요?
정원은 만든 사람의 철학과 미학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공간입니다.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내가 원하는 정원을 그려보라’고 하면 모두 다른 그림이 나오듯, 정원은 각자의 삶과 기억, 감정이 담기는 캔버스라고 생각해요. 식물을 어떤 화분에 심을지, 어디에 배치할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창작 행위가 되며, 실제 식물을 매개로 사고를 표현하죠. 게다가 식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라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변화하고 쌓여가는 모든 과정 자체가 곧 예술이라 느꼈습니다.

방문객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국립정원문화원은 한국 정원의 개념을 함께 만들어가는 실험실이자 전시장입니다. 전통 정원과 수생식물정원, 온실, 작가 정원, 가정에서 참고할 수 있는 베란다 정원 등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주어 관람객들이 보고, 배우고, 자신만의 정원에 적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원예와 조경 전공 학생들이 직접 조성하는 실습 정원과 작가 정원도 만들어, 학습과 감상의 경험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지요. 또, 정원은 시간이 길러내는 공간이기에, 철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계절에 걸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해요. 향기로운 허브와 외래식물이 자라는 갤러리 온실, 수풀재 앞 한옥정원에서 피어나는 연꽃도 아름다우니, 문화원 곳곳을 천천히 거닐며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국립정원문화원이 그려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국립정원문화원은 정원 문화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한국 정원의 세계화를 이끌어가는 국가 거점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합니다. 아파트 베란다의 화분, 학교와 도로변의 화단처럼 우리 생활 곳곳에 정원이 있듯, 국민 누구나 정원을 쉽게 즐기고 배울 수 있도록 인프라를 확충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시민 교육 및 정원 체험과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한국의 미학을 담은 K-정원 모델을 발굴하고 보급하는 것이 주요 목표입니다. 또한 기획·설계·시공 등 정원 조성의 전 과정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장기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는 아이들이 수생 정원의 연꽃 위에 직접 올라타 보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이처럼 재미있는 이벤트도 꾸준히 이어갈 예정입니다. 정원 문화 확산과 국제적 위상 제고를 함께 이루어, 한국 정원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CREDIT INFO

editor신문경

photographer임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