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정마루가 카페 쿼터에서 이어가는 시간

2025-10-24     리빙센스

재즈 드러머 정마루,  카페 ‘쿼터’에서 이어가는 음악의 시간

마치 일부러 숨어 있듯 자리한 작은 카페 ‘쿼터Quarter’. 뮤지션 정마루는 이곳에서 커피와 차, 음악을 큐레이션하며 연주와 작곡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쿼터Quarter’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와 공간을 열게 된 계기를 들려주세요.
쿼터는 음악에서 4분음표를 뜻합니다.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기호가 아니라, 음악을 이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리듬이죠. 저에게는 음악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평정심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간 이름으로 선택했어요. 단순히 카페를 넘어, 언제나 일정한 맥박처럼 사람들과 이어지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공간을 꾸밀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건물이 50년이 넘은 오래된 곳이라 통로나 계단이 불규칙합니다.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지만, 저에게는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매력이었어요. 그래서 큰 공사는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면서 마감만 손봤습니다. 흔적과 결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음악이 울릴 때, 다른 어떤 곳과도 다른 울림이 생기더라고요.

카페 메뉴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원래 드립커피를 좋아해서 메뉴에 넣었는데, 요즘은 음악 큐레이션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덜 걸리는 차를 자주 준비하게 됩니다. 하지만 손님이 원한다면 드립커피도 정성껏 내려드려요. 메뉴보다는 음악이 중심이지만, 그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곁들이는 한 잔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이나 상태를 기반으로 음악을 큐레이션하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따로 구입한 게 아니라 지난 20여 년간 모아온 음반들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그 안에는 제 추억과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손님들과 음악을 나누면서 단순히 곡을 트는 게 아니라, 제 감정과 경험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신청곡을 받아도 그대로 틀지 않고, 순간의 해석을 더해 들려드려요. 음악이 그 순간에 또 다른 이야기가 되길 바라면서요.

기억에 남는 신청곡이 있나요?
얼마 전 한 손님이 ‘바람개비’라고만 적어서 신청하셨어요. 저는 아이 아빠라서, 아이들이 바람개비만 봐도 뛰어가며 좋아하는 모습을 잘 알죠. 그 장면이 떠올라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들려드렸습니다. 손님이 원한 곡은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음악을 순간의 감정으로 해석해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 설명을 함께 나누죠. 손님이 제 선택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 경험을 오래 기억한다고 해주셨을 때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손님들에게 쿼터가 어떤 장소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집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사진처럼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그 사진을 보며 잠시 멈춰 미소 짓듯, 이곳에서의 경험이 그렇게 남았으면 합니다. 단순히 카페에 들른 기억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며 음악과 함께한 감정이 오래 남는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저도 손님들과 음악으로 소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의 기억을 음악으로 남길 수 있게요.

매일 아침 피아노 앞에 앉아 창작의 시간을 갖는 것은 정마루의 오랜 습관이다.

드러머로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음악을 처음 접한 건 중학교 시절, 클래식 기타를 배우면서였어요. 취미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음악이 제 일상의 중심이 되더라고요. 사춘기를 지나면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악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고, 그게 바로 드럼이었습니다. 드럼은 힘찬 소리를 내면서도 손에 드럼 스틱 하나만 쥐면 언제 어디서든 연주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있었죠. 어린 시절의 저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표현 도구였습니다.

그동안의 음악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요?
작년에 서울시 문화비축기지에서 단독으로 진행한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단순히 공연을 하는 게 아니라, 소리가 현상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본질과 원인에 집중해 보자는 취지였어요. 흔히 음악을 들을 때 현상에만 머무르는데, 저는 그 너머를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관객들과 함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 그 소리를 매개로 세상을 이해해 보려 했죠.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단순한 연주를 넘어, 음악이 사람들에게 사유의 공간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쿼터에서 선곡하는 음악이 본인의 음악 세계와 어떤 연결점을 갖고 있나요?
카페에서는 재즈와 클래식 비중이 크지만, 사실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손님들의 상태, 대화, 그리고 순간의 분위기에 따라 음악을 고르죠. 그 과정에서 제 취향이 자연스럽게 묻어납니다. 결국 이 큐레이션이 제 음악 세계와 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제 작업도 즉흥과 교류에서 비롯되니까요. 어떤 손님은 음악을 신청하고, 저는 그 의도를 해석해 선곡을 하면서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런 교류 속에서 저도 새로운 음악적 자극을 받습니다.

음악가이자 공간 운영자로서 하루의 루틴은 어떻게 되나요?
오전에는 아빠로서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아침을 준비하는 평범한 시간들이에요. 이후 쿼터에 와서는 피아노 앞에 앉아 짧게라도 작곡 노트를 적습니다. 그 시간이 뮤지션으로서 제일 중요한 루틴입니다. 음악적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하고, 짧은 멜로디라도 기록합니다.

손님 공간과 분리된 자리에서 그는 차를 준비하고 음악을 고른다.
테이블이 3개뿐인 이 깊은 공간은, 작은 아지트처럼 아늑하다.

특별히 애착을 갖는 음반이나 아티스트가 있나요?
희귀 음반이라기보다는 제게 인상적으로 남은 건 티벳 불경을 담은 음반이에요. 음악보다는 낭송에 가깝지만, 그 울림이 여느 음악 못지않았습니다. 아티스트로는 베토벤을 존경합니다.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방대한 음악 세계를 만들어낸 그의 집념은 늘 영감을 줍니다. 또 짧은 역사 속에서도 끝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 온 재즈 뮤지션들 역시 제게 큰 배움이 됩니다. 그들의 음악은 단순한 장르를 넘어 삶의 태도 자체를 보여주니까요.

앞으로 준비 중인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지금은 개인 앨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재즈 앨범과는 다르게, 훨씬 축약된 편성으로 솔로나 듀오 형태의 작업을 구상 중이에요. 피아노, 베이스, 드럼 같은 전형적인 편성에서 벗어나, 화성을 최소화하고 소리를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일부 곡은 이미 수정 단계에 들어갔고, 앞으로는 제가 가진 에너지를 더 밀도 있게 담고 싶습니다. 작은 편성 안에서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전할 수 있다고 믿어요.

정마루라는 이름으로 남기고 싶은 음악적·공간적 유산은 무엇인가요?
음악도, 소리도 결국은 침묵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음악 작업은 치유와 자유의지를 담는 데 집중합니다. 그것이 음악이 가진 본질적인 힘이라고 믿거든요. 언젠가 제 이름이 남는다면, 그런 가치를 담은 공간과 음악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리빙센스〉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앨범이나 곡이 있나요?
영화 OST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영화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정을 크게 흔들어주니까요. 특히 엔니오 모리코네의 작품들은 언제 들어도 깊은 감동을 줍니다. 또 쿠바 출신 피아니스트 루벤 곤잘레스의 연주도 강력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가 이끄는 밴드 ‘벨라비스타트 셰프룸’의 음악은 열정과 세련됨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요. 쿼터에서 이 앨범을 틀면 손님들의 반응이 항상 뜨겁습니다.〈리빙센스〉독자들도 이 음악들로 멋진 가을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CREDIT INFO

freelance editor김수영

photographer김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