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디자인, 일본 산업디자이너 소리 야나기

디자이너의 디자인 13

2025-11-12     리빙센스

일상에서 착안한 간결한 아름다움. 수공예의 정신과 동시대적 감각을 함께 아우르는 소리 야나기의 미학은 시대를 초월해 우리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일본의 산업디자이너 소리 야나기1915~2011는 자국 전통 미학의 뿌리 위에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형태를 쌓아 올린 인물이다. 시대를 초월한 조형과 기능성을 특징으로 한 그의 작품은,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모던 디자인을 구축하며 공예와 산업의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었다. 생활 속 소박하고 기능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민예 운동’의 주창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아들로 태어난 소리 야나기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길을 거스르고자 1934년부터 동경대 예술학교에서 미술과 건축을 공부했다.

그러나 바우하우스 철학과 모더니즘의 아이콘인 르 코르뷔지에와 샬로트 페리앙의 영향을 받으며 근대 디자인에 눈을 떴다. 1940년대 샬로트 페리앙이 일본을 방문해 디자인과 공예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시기에는, 그녀로부터 유럽 모더니즘의 정신을 직접 배우며 자신만의 감각을 다듬었다. 1952년, 야나기 산업디자인연구소Yanagi Industrial Design Institute를 설립한 야나기는 생활용품부터 가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의 창작은 언제나 손끝에서부터 시작됐다.

종이에 도면을 그리기보다 점토를 손으로 빚어 실물 크기의 시제품을 만들며 인체와 균형을 맞췄다. 이러한 방식으로 탄생한 1956년의 ‘버터플라이 스툴Butterfly Stool’은 나비의 날갯짓을 연상케 하는 곡선미로 1957년 ‘제11회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금상을 받았고, 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벤치, 기차역 등 공공시설로도 디자인 영역을 넓히며 1964년 도쿄 올림픽의 성화봉을 디자인한 그는 “진정한 디자인은 유행의 반대편에 존재한다True design lies in a realm counter to trends”고 말하며 꾸준히 수공예의 미학과 일상성에 주목했다.

1977년부터는 부친이 1936년 설립한 일본민예관Japan Folk Craft Museum의 디렉터를 맡아 예술과 전통공예, 생활의 경계를 연결하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소리 야나기의 디자인은 현재까지도 변함없는 가치를 지니며, 비트라 등 세계 유수 브랜드를 통해 생산되고 있다.

 


CUTLERY SET, 1974

식사용과 디저트용으로 구성된 스테인리스 커틀러리 세트는 전통적인 서구 식기 형태에 동양의 미감을 결합한 것으로, 야나기가 직접 시제품을 제작하고 사용하며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했다. 금속공예로 유명한 일본 니가타현에서 생산해 완성도를 더했다. 

 

ARMCHAIR, 1978

야나기의 암체어는 등받이와 팔걸이가 하나로 이어지는 곡선을 지닌다. 둥근 좌석과 사선으로 뻗은 4개의 다리는 안정감과 편안한 착좌감을 동시에 구현하며, 거실이나 다이닝 공간은 물론 카페나 갤러리 같은 공공장소에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일본의 가구 브랜드 히다 산교에서 생산하고 있다. 

 

SHELL CHAIR, 1998

가볍고 유려한 형태가 특징인 셸 체어는 텐도 목공사와 협업해 탄생했다. 단단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한 장의 사펠리Sapelli 몰드 합판을 구부려 철제 다리와 결합한 구조다. 등받이 아래쪽의 둥근 구멍은 시각적 경쾌함과 세련된 형태를 완성한다. 

 

KETTLE, 1994 

1974년 커틀러리 라인으로부터 출발한 야나기의 키친웨어 시리즈는 이후 냄비, 그릇, 칼 등 일상 속 주방 도구로 확장되었다. 그중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 주전자는 기능성과 군더더기 없는 형태의 아름다움을 결합한 야나기의 대표작.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넓은 바닥면으로 빠른 가열이 가능하다. 우수한 디자인과 실용성을 인정받아 1998년 굿 디자인 어워드Good Design Award에서 상을 받았다. 

 

BUTTERFLY STOOL, 1956 

임스 부부가 개발한 합판 성형 기술에서 영감을 받은 소리 야나기는 그 기술에 동양적 조형미를 결합해 버터플라이 스툴을 완성했다. 2장의 천연 나무 합판을 서로 맞물려 2개의 볼트와 하나의 지지대로 고정한 단순한 구조지만, 날갯짓을 하는 나비를 닮은 우아한 형태로 목재의 탄성과 긴장을 아름답게 표현한다. 현재 비트라에서 생산되고 있다. 

 

BLACK AND WHITE TABLEWARE SERIES, 1982 

간결한 블랙과 화이트로 구성된 테이블웨어 시리즈는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지향한다. 당시 대부분의 도자 식기는 회전성형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야냐기는 흙물을 석고 몰드에 부어 만드는 주조성형 방식을 택해 사각 형태로 디자인했다. 2023년 세라믹 재팬에서 재생산을 시작했다. 

 

CHAIR FOR KOTOBUKI, 1969 

일본의 고토부키 시팅KOTOBUKI SEATING사가 FRP섬유강화플라스틱 가구의 대량생산을 연구하던 시기, 야나기는 그 흐름에 동참해 인체공학적인 편안함과 미학적 완결성을 갖춘 의자를 설계했다. 슬림하고 간결한 실루엣으로, 살짝 기울어진 등받이와 쿠션을 덧댄 넓은 좌판은 몸의 곡선을 자연스럽게 감싼다. “형태는 뒤에서 보았을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야나기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ELEPHANT STOOL, 1954 

당시 신소재였던 FRP섬유강화플라스틱로 제작된 엘리펀트 스툴은 가볍지만 내구성이 뛰어난 소재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살짝 들어간 좌판과 둥글게 마무리된 3개의 다리는 야나기가 디자인에서 중시한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한 곡선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2004년부터 비트라가 친환경적인 폴리프로필렌 소재로 제작을 이어가고 있다. 

 


CREDIT INFO

editor신문경

자료 협조루밍 rooming.co.kr, 비트라 vitra.com, 세라믹 재팬 ceramic-japan.co.jp, 히다 산교 hidasangyo.com, IN’EI in-ei.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