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 그 사이, 시간을 쌓아올리는 이재하 작가
나무를 재료로 새로운 형태를 빚어내는 이재하 작가@jaehalee_. 그의 작품에는 직선과 곡선, 수직과 수평이 맞물리며 만들어내는 고유한 질서가 있다. 전통의 미학과 현대적 사고가 공존하는 그 균형을 위해, 그는 묵묵히 매일의 시간을 쌓아 올린다.
이재하 작가는?
나무라는 재료를 중심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디자이너다. 가구를 비롯해 일상의 쓰임을 지닌 오브제를 만들며, 그 안에서 구조와 조형의 균형을 끊임없이 실험한다. 작가는 한국 전통 건축의 한 요소인 ‘팔작지붕’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처마의 곡선과 단정하게 떨어지는 지붕의 직선을 가구의 비례와 선에 대입하며, 전통의 미감을 현대적 구조로 재해석한다.
그가 만드는 가구는 단순한 형태 속에 질서와 긴장을 품고 있다. 완만한 곡선과 정제된 직선이 공존하며, 나무의 묵직함은 고요하면서도 단단한 인상을 남긴다. 미적 감성과 논리적 계산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이재하 작가의 디자인 방식은 수학적인데, 3D 프로그램의 불린Boolean 테크닉을 활용해 도형의 교집합, 합집합, 여집합을 조합해 형태를 구축한다. 그 과정을 거쳐 태어나는 작품은 절제의 아름다움을 지닌다.
SIGNATURE WORK
라이프스타일 아이템 편집숍 챕터원의 시그니처 브랜드 스틸라이프Still Life와 협업한 ‘웻지Wedge’ 시리즈는 이재하 작가의 대표작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이 컬렉션은 작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구조를 이루는 재료의 모서리 부분을 부드럽게 다듬은 디자인이 특징이며, 테이블과 벽선반, 벤치, 스툴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됐다. 목재 본연의 결을 그대로 살린 표면에는 자연미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단순한 형태 안에서 직선과 곡선,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작가만의 언어는 차분한 동양적 미학이 돋보인다. 실용적이면서도 절제된 디자인 덕분에, 공간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며 오랜 시간 곁에 두기 좋다.
ARTIST’S ROUTINES
for CREATIVITY
이재하 작가의 아이디어는 언제나 머릿속에서 먼저 정리된다. 그는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때 곧바로 손을 움직이기보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그 아이디어를 꺼내지 않는다. 그 대신 출퇴근길이나 운전 중, 혹은 작품을 배송하는 시간에 조용히 생각을 다듬으며 충분한 사유의 과정을 거친다. 그 후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또한 평소 흥미로운 오브제나 가구를 볼 때면 손끝으로 가구의 뒤편이나 아랫부분을 만져보는 버릇이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에서 구조와 결합의 힌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for DESIGN
목재를 주요 소재로, 여러 재질과 제작 방식을 활용해 오브제를 구상하는 작가. 그에게 디자인이란 각자의 목적을 지니며, 사용자의 손에 닿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실용성과 필요에서 비롯된 형태에 집중한다. 작업은 언제나 기본에서부터 출발해 작은 부분에서부터 전체로 확장된다. 요소들이 이어지고, 겹치고,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움직임 속에서 형태가 만들어진다. 작은 조각이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구조를 이루는 과정에서 디자인이 탄생한다. 점과 선이 얽힌 스케치 속에서도 단순함에서 비롯된 조형의 출발점을 읽을 수 있다.
for WORK
이재하 작가의 하루는 소리와 향, 손의 감각이 교차하며 이어진다. 작업 중에는 늘 헤드폰을 쓴다.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구 제작 과정의 거친 소음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작업을 하지 않을 땐 인센스를 태운다. 향이 번지는 순간 마음이 고요해지고 깊게 집중한다. 최근 작업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은 미국 네오 사이키델릭 록밴드 MGMT의 앨범 〈Loss of Life〉. 텐션을 적당히 유지해 주면서도 몰입을 돕는다.
IN STUDIO
작업실은 흔히 볼 수 있는 공장의 모습과 닮아 있는데, 공간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뉜다. 기계 가공실, 사포로 가구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작업을 하는 샌딩실, 가구에 도료를 칠하는 도장실, 그리고 조립 및 수공구 작업을 위한 공간.
혼자 사용하고 있지만, 큰 스케일의 가구도 종종 작업하기 때문에 공간은 제법 넓다. 이재하 작가는 대체로 이른 아침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오전 시간은 집중이 잘 되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한다고.
THE ESSENCE OF A DAY
이재하 작가는 자신의 하루를 ‘몸을 쓰는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생각을 실체로 옮기며 몸과 손이 함께 움직이는 순간들. 정교하게 계산된 섬세한 선들이 맞물려 형태를 이뤄내는 과정들이 모여 작가의 하루가 완성된다.
editor신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