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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겸 서재 공간의 테이블에 마주 앉은 부부. 고양이 순자와 함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다. 아내에게 제일 먼저 말했더니 “당신이 오죽했으면 이러겠어”라며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자신도 속으로는 무척 걱정이 되겠지만 나한테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고 했다. 마지막 출근을 하는 날 아침엔 나의 뒷모습이 유난히 가벼워 보인다고도 했다. 퇴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법이라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 中

 

직접 장을 담그는 윤혜자 씨의 보물 창고인 장독대.

직접 장을 담그는 윤혜자 씨의 보물 창고인 장독대.

편성준 작가가 <리빙센스>를 위해 즉석에서 카피를 선보였다. ‘삶에는 센스가 필요하다, 리빙센스’.

편성준 작가가 <리빙센스>를 위해 즉석에서 카피를 선보였다. ‘삶에는 센스가 필요하다, 리빙센스’.

한옥을 고치기 위해 아홉 겹의 벽지를 벗겨내는 와중에 발견한 시간의 조각.  소화 14년(1939년)에 만든 신문을 발견한 부부는 이를 액자로 만들었다.

한옥을 고치기 위해 아홉 겹의 벽지를 벗겨내는 와중에 발견한 시간의 조각. 소화 14년(1939년)에 만든 신문을 발견한 부부는 이를 액자로 만들었다.

한 집에 살아도 일만 하느라 얼굴을 볼 새가 없는데. 부부가 집에서 사이좋게 같이 놀고 있다니, 천생연분이시네요. 어떻게 만나셨어요? 혜자 저희는 40대에 만났어요. 저는 재혼이고, 남편은 초혼. 성준 전 평생 결혼할 생각이 없었고, 아내는 다시 결혼할 생각이 없었는데. 2011년 4월 11일 단골 술집에서 아내를 우연히 만나 통성명을 했고, 5월 23일에 아내에게 연락이 와서 그날부터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1년이 지나 동거를 하고, 결혼을 해서 살게 됐네요. 작년 4월 제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노는 부부가 되었죠.

노는 동안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 책을 남편 분이 쓰고, 아내 분이 기획하셨다면서요. 두 분은 이전까지 어떤 일을 하셨나요? 성준 20년 넘게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어요. 제가 일을 그만두었던 당시 아내는 대형 출판사를 그만두고 직접 출판 기획을 준비 중이었어요. 혜자 저는 기자 생활을 오래했고 그다음엔 출판 기획 일을 하다가 지금도 주로 기획을 하고 있어요. 진도 씻김굿 공연과 같은 행사도 종종 맡아서 해요.

근데 한옥에서 노신다니, 있어 보여요. 마냥 놀 것 같지도 않고요. 한옥을 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성준 한옥을 고집했던 건 아니고, 주택에 살고 싶었어요. 4년 전까지 아파트에 살다가 성북동 꼭대기에 있는 작은 집으로 와서 재밌게 살았는데, 너무 언덕이라서 슬슬 꾀가 나기 시작했어요. 동네가 참 좋은데, 이 근처에 좀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골목골목을 다니다가 마침 비어 있던 이 한옥을 만났죠. 혜자 놀면서 제일 재밌었던 게 바로 이 집을 고친 거예요. 사실 집을 샀던 시점엔 기분이 되게 쫄깃쫄깃했어요. 돈은 부족하고 둘 다 놀고 있고, 대출을 받아야 하니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술을 마실 정도로 걱정도 많고, 힘들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침마다 10분씩 와서 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목수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니까 즐거워졌죠. 그때부터 조금씩 재미난 놀이들을 생각했었어요. 한옥에서 가장 좋은 곳이 마당과 툇마루니까 그런 부분들을 잘 설계하고, 이 공간을 플랫폼 삼아 여러 가지를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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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선반과 수납장을 계획한 주방. 주방을 스튜디오 삼아 요리 강의가 열리기도 한다.

모임을 좋아하는 유쾌한 부부답게 그릇 수만큼 다양한 유리잔이 있는 주방의 수납공간.

모임을 좋아하는 유쾌한 부부답게 그릇 수만큼 다양한 유리잔이 있는 주방의 수납공간.

편성준 작가의 첫 책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몽스북). 부부의 ‘쉬지 않고 노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유쾌한 부부의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작가의 따스한 진심이 전해진다.

편성준 작가의 첫 책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몽스북). 부부의 ‘쉬지 않고 노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유쾌한 부부의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작가의 따스한 진심이 전해진다.

일주일에 보통 3권의 책을 읽는다는 편성준 작가의 독서 노트.

일주일에 보통 3권의 책을 읽는다는 편성준 작가의 독서 노트.

살아보니 어떤가요, 한옥이 재밌는 놀이터가 되었나요? 성준 가장 좋을 때가 툇마루에 앉아서 하늘을 보며 노닥거릴 때예요. 전 사람들이 많이 놀러오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돈이 좀 들고 품이 들더라도 사람들을 부르곤 하는데. 한옥이라서 더 궁금해하고 오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혜자 둘 다 놀고 있는데 그렇다고 쉬고 있는 건 아니에요. 원하는 삶의 형태를 찾기 위해 놀면서 좋아하는 것을 기획해보고, 모임을 시도하는 중이에요. 성북동 소행성에서 독서 모임, 요리 수업, 동네 친구들과 비건 밥상 모임까지 3개의 정기 모임이 열려요.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마당 콘서트도 해보고 싶었고, 남편의 책이 나왔으니 북 토크도 해야겠다, 또 글쓰기 워크숍을 하면 어떨까?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기획들이 있는데 하나하나 시도해보려고 해요. 결국 이곳에 살면서, 놀면서 일도 하게 됐는데 한옥이기에 가능한 부분도 있죠.

노는 부부의 하루는 실제로 어떻게 흘러가나요? 성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7시부터 11시까지는 고등학교에 일을 나가고 있어요. 고정된 수입이 없다 보니 9월부터 희망 근로를 신청했거든요. 평소엔 워낙 일찍 일어나서 혼자 노는 걸 좋아해서 아침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책 읽고. 새벽에서 아침까지 이어가는 시간들이 좋아서 밥도 일부러 늦게 11시에 먹어요. 혜자 집에서 같이 두 끼를 먹어요. 이분은 아침을 꼭 드셔야 하는 분이라 제가 결혼하고 요리를 배웠어요. 전 무언가를 시작하면 공부부터 하는 타입이라서요. ‘좋은 음식이란 뭘까?’에 대해 공부하다가 약선 음식 전문가이면서 음식문화 운동가인 고은정 선생님에게 음식을 배웠어요. 그때부터 장과 김치를 담가 먹기 시작했고, 얼마 전 약선 음식까지 배웠어요. 최근에는 ‘음식독서강사 양성’ 과정을 남편과 함께 수강해서 관련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렇게 놀면서도 소소한 일들이 생기더라고요. 가만히 있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지식을 쌓다 보면 생각지 못했던 기회가 열리기도 하는 것 같아요. 소소하지만, 소소한 대로.

놀면 뭐가 제일 좋나요? 대놓고 자랑 좀 해주세요. 혜자 소소한 약속들을 지킬 수 있어서 좋아요. 남편과의 데이트 약속 같은 거요. 전에는 당일 다 되어서야 “나 오늘 못 갈 것 같아”라고 하는 게 부지기수였죠. 친구들과 주말에 놀러가자, 만나자고 했던 작은 약속을 지켜가며 소소한 일상의 주도권을 내가 가져간다는 점이 좋아요. 성준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약속들을 자주 깨버렸는데, 다 지킬 수 있죠. 평일 저녁의 공연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며 지레 포기하고, 아무 일도 안 생기면 ‘에잇! 안 생겼네!’ 하고 말고. 광고 쪽 일이 그래요. 급하게 일이 들어와서 막 만들어내야 하니 ‘이게 다른 약속보다 가치가 있는 일인가?’를 따질 새가 없어요. 일부터 해야 돈이 나오니까.  

거실 폴딩도어 너머 공간이 편성준 작가의 작업실.

거실 폴딩도어 너머 공간이 편성준 작가의 작업실.

편성준 작가님은 카피라이터로 직장에 다니면서도 틈틈이 글을 써왔고, 놀면서도 글을 쓰고 계시는데요. 글쓰기가 그렇게 즐거우신가요? 성준 일을 손에서 못 놓는 체질이에요. 직장에 다니면서는 주말에도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써서 올리면서도 죄책감을 느꼈어요. 다른 걱정을 하는 것보다 깨작깨작 글 쓴 걸 만지고 있을 때가 제일 즐거워요. 그게 힘들지 않은 거예요. 첫 책을 쓰면서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는지, 회사를 그만둬도 괜찮다, 바보같이 살아도 큰 일이 안 난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여기에 하나 더! 작은 바람이 있어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내 이야기로도 콘텐츠가 되겠네? 나도 글을 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해요. 약간의 아이디어만 추가하면 글이 재밌어질 수 있거든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반드시 놀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리 준비가 필요할까요? 혜자 잘할 수 있는 것 한 가지,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 있으면 일단 안전하죠. 좋아하는 다른 일을 해보겠다면 그 기술을 하루라도 좀 빨리 배우세요. 제가 좀 더 이른 시기에 음식을 배웠다면 밥집을 해볼 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살이라도 빨리, 야금야금 시작하세요! 그래야 길게 놀죠. 성준 그다음엔 결단이 필요하겠죠. 사는 게 대부분 자전거 타듯 계속해서 앞으로만 나아가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니까. 멈춰 서서 돌아보는 용기가 필요해요. 제 책의 추천사를 써주신 이명수 심리기획자, 김탁환 소설가, 장석주 시인 세 분 모두 멈춰본 경험이 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가게 된 분들이거든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 무언가가 있어야 다른 행운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노는 것 말고, 정말 쉴 때는 무엇을 하세요? 완벽한 휴식 시간! 혜자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되도록 움직이지 말자면서 호텔 안에서만 하루 종일 있었어요. 호텔 안의 모든 음식점을 다니고, 풀사이드에서 책을 읽고 자고. 쉰다는 건 내 맘대로 시간 관리를 하는 거죠.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고 싶은 걸 제때 하는! 성준 보통은 쉰다면 번아웃이 되어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잖아요. 그때 돼서 쉬는 건 쉬는 게 아니라 회복, 입원이죠.

두 분은 정말 사이가 좋아 보여서. 이 질문을 해보고 싶네요. '이상적인 배우자상'은 뭘까요? 성준 타인에 대한 연민이 있는 사람. 나만 잘 살겠다는 시야가 좁은 사람 말고요. 지금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공감하고 위로해주고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요. 성격은 권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모든 CEO들은 성격이 급하다고 해요. “나 성격 급한 사람이야!” 하면서. 이건 거꾸로 말하면, 급할 수 있다는 거예요.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결국 성격보다는 마음이라는 거죠. 혜자 그런 상대가 따로 있다기보다, 서로에게 맞춰가며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 결혼인 것 같아요. 무작정 굴복하라는 건 아니지만, 잘못했으면 빨리 사과하고! 사과를 안 하고 시간을 보내면 감정이 막 쌓여요. 그래도 서로 케미가 맞으면 재밌어요. 저희는 이런 식이에요. 제가 “이사 왔어, 이름 지어봐” 하면 남편이 “성북동 소행성!”, “토요일에 독서 모임 만들었어. 이름을 뭘로 할까?” 물으면 또 남편이 “독하다 토요일!” 이렇게 주고받으면서 놀아요.

 

CREDIT INFO

editor 김의미 기자

photographer 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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