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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 2~3시에 일어나 새로운 작업을 구상한다는 신상호 작가.

세계적인 도예가 신상호의 스튜디오는 경기도 양주의 한적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경치 좋은 국도를 따라가다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면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대문이 보이는데, 알록달록한 도자기를 모자이크처럼 붙인 대문이 인상적이다. 마치 동물의 얼굴처럼 보이는 도자기 모자이크 대문을 지나면 여러 동의 갤러리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신상호 작가의 스튜디오 겸 자택이자 갤러리이다. 작은 축사가 있던 공터를 1976년부터 50년 동안 아내와 함께 손수 가꿔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갤러리에는 작가가 평생 작업해온 작품들, 작업실에는 현재 한창 작업 중인 작품들, 컨테이너처럼 생긴 작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는 평생 모아온 수집품들을 전시해두어 찬찬히 둘러보려면 족히 몇 시간은 걸릴 정도. 대학 시절부터 청자, 백자, 분청사기를 빚으며 세계적인 도예가로 명성을 쌓아왔지만 늘 혁신을 꿈꿔왔기에 그는 도예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현대적인 도자 작품 활동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온 신상호 작가의 작품은 영국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과 대영박물관, 프랑스 세브르 국립도자박물관, 미국 시라큐스의 애버슨 미술관 등 전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흙이라는 소재를 통해 예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신상호 작가. 양주에 위치한 스튜디오에 마크 테토가 방문해 거장의 작품 세계와 관련해 대화를 나누었다.

흙으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상호 작가가 제작한 창틀과 다양한 오브제들.

흙으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상호 작가가 제작한 창틀과 다양한 오브제들.  

M 작가님 안녕하세요! 스튜디오가 크고 멋지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규모가 큰 갤러리와 작업실이 모여 있는 줄 몰랐어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에요! 멀리까지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여기는 내가 1976년부터 정착해서 직접 건물을 올리고 가꿔온 곳인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렇게 규모가 커졌네요(웃음).

M 작가님의 작품들이 자연과 건물과 함께 어우러져 있으니 정말 멋있네요. 제가 서울에서 근무하는 건물에도 작가님의 작품이 있고, 근처의 다른 건물 외벽에도 작가님의 구운 그림 작품이 설치되어 있어서 오갈 때마다 보면서 감탄했는데, 이곳은 더 멋진 것 같아요. 여기는 저만의 공간이니까 제 마음대로 꾸몄죠. 작품도 많고, 수집한 것도 많고요. 지금은 젊은 작가들이 와서 작업할 수 있는 레지던스 공간을 마련하고 있어요. 지원이 필요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요.

M 그래서 이곳에 건물들이 많은 거군요. 여기에서라면 많은 신진 작가들이 좋은 영감을 받아갈 것 같아요. 작가님도 미술을 시작할 때 주변의 도움을 받으셨나요? 유년 시절이 궁금해요. 저는 반항기가 다분했던 소년이었고, 미술대학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집에서 난리가 났었어요. 장남이 환쟁이가 되는 건 안 된다고 하셨고, 전공을 도예로 선택했을 때도 어떻게 옹기쟁이를 할 수 있냐고 노발대발하셨어요. 당시만 해도 옛날이었죠.

M 도예는 어떻게 전공하게 된 건가요? 그때만 해도 도예과가 따로 있었던 건 아니고 ‘공예학과’로 모여서 이것저것 다 배우는 시스템이었어요. 그러다 이천에 도예 실습을 갔는데 그냥 너무 좋았어요. 흙을 만지고 모양을 만드는 게 저랑 잘 맞았나 봐요. 그래서 방학을 하자마자 집을 나와서 그 가마터에 가서 살았죠. 한 40일 정도 지나니까 부모님께서 찾아오셨는데, 더위에 제대로 입지도 않고 흙에 파묻혀 있는 절 보고 어머니는 “네가 왜 여기 와서 이러고 있냐”고 눈물을 흘리셨고, 아버지는 그날 바로 그 가마 공장을 사주셨어요(웃음). 부모님께서 부유한 편이었거든요. 그 바람에 갑자기 내가 그 가마의 주인이 된 거예요. 아마도 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면 끝까지 가보라는 뜻이셨던 것 같아요. 거기서 전통 도예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지만, 가마를 운영하면서 돈을 잘 벌지는 못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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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작가의 작품이 진열된 갤러리가 보인다.

작품을 제작하는 것만큼이나 수집에도 공을 들이는 신상호 작가. 전 세계를 돌며 희귀한 물건들을 모아 전시를 열기도 했다.

작품을 제작하는 것만큼이나 수집에도 공을 들이는 신상호 작가. 전 세계를 돌며 희귀한 물건들을 모아 전시를 열기도 했다.

 

 

M 학생 신분으로 가마를 운영할 수 있었던 건 정말 좋은 기회였겠어요. 학교에서는 현대적인 걸 배우고 이천 가마공장에서는 전통 도예를 배웠는데, 제가 한국 사람이니까 전통을 알아야 현대적인 것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죠. 전통 스타일로 도자기를 구웠지만 유약의 색을 다르게 하고 디자인이나 조각도 방식을 새롭게 했는데, 그게 일본에서 반응이 좋았어요. 그 덕에 대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일본을 왕래하면서 도자기 굽는 일을 했고 그때 소위 대박이 났어요.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가스 가마를 수입한 사람이 저예요. 전통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우면 완성품 중에 20% 정도만 쓸 만하지만, 가스 가마는 온도가 일정하기 때문에 성공률이 95% 정도 됐어요. 훨씬 효율적이었죠.

M 도자기를 하다가 그 후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작업을 하셨는데,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공은 도예이지만 저는 한가지만 하면 지루해서 못 하는 사람이에요. 전통 도자를 배웠지만 늘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고, 새로운 걸 접하는 걸 원했죠. 1984년 코네티컷 주립대학교에 교환교수로 갔는데, 그때 세계적인 도예가들을 만나고 좋은 자극을 받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을 시도해볼 수 있었어요. 그 경험을 통해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릴 때 제 스튜디오에서 세계적인 도예가들을 초청해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한국 최초였고, 한국의 현대 도예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요.

M 아프리카 예술에도 심취하셨다고 들었어요. 한 15년 동안 아프리카에 심취되어 있었죠. 1995년 영국의 로열 컬리지 오브 아트에 초대받아서 갔는데 당시 학교 미술관에서 아프리카 예술과 관련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어요. 처음엔 별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관람하는 내내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원시미술의 예술성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경험한 순간이었죠. 그동안 내가 해왔던 건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원시 예술을 직접 경험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바로 다음 날 비행기 표를 끊고 아프리카 콩고로 날아갔어요. 그 후에는 아프리카를 옆집 드나들 듯이 다녔죠. 거기서 계속 살고 싶었을 정도로요. 제 작품 중에 동물 조각상이나 과감한 색과 패턴은 모두 아프리카 예술의 영향을 받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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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의 한 동에 설치한 가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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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수집한 흙으로 만든 토기들. 제작된 지 천 년도 넘은 물건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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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수집한 물건들로 만든 건물과 작품들이 어우러진 스튜디오.

늘 혁신을 꿈꿔왔기에 그는 도예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현대적인 도자 작품 활동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온 신상호 작가의 작품은 영국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과 대영박물관, 프랑스 세브르 국립도자박물관, 미국 시라큐스의 애버슨 미술관 등 전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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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의 앞마당에 작가가 제작한 동물 형상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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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인 타일과 분청사기들을 갤러리에 전시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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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을 돌며 수집한 물건들. 벽에 걸린 것은 오래된 시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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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에서 구한 많은 물건이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설치작품으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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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지붕 위에 작가의 동물 작품들이 나란히 서 있다.

오래된 책들이 꽂혀 있는 작가의 스튜디오.

오래된 책들이 꽂혀 있는 작가의 스튜디오.

 

 

M 작가님 작품에서 보이는 색상이나 과감한 얼굴들은 저도 좋아하는 부분인데 아프리카 예술의 영향을 받을 거였군요. 그 외에도 가구나 타일 같은 작품도 제작하셨죠? 흙이라는 소재의 장점을 다른 소재의 장점과 결합해보는 것에 흥미가 많아요. 흙, 쇠, 나무 모두 각각의 소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융합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도예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해보고 싶었어요. 그런 것들을 이어보면 가구가 될 수 있고, 조각이나 그릇이 될 수 있고… 무궁무진하죠. 타일도 한 번 붙이면 깨야만 떼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떼어낼 수 있는 타일도 개발했어요. 특허도 여러 개 갖고 있고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시도해볼 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봐요.

M 도예로 시작해서 다양한 영역에 도전하는 일이 어렵진 않으셨나요?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많았어요. 제 작품이 인정받아서 잘 팔리는 건 좋지만, 팔리는 작품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고 상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잘된다고 계속 그것만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더 이상 자기복제만을 하면서 작업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다행히 저는 한가지만 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생각도 많아 끊임없이 도전하는 편이었어요. 실패하는 걸 좋아하고요. 많은 사람이 성공하길 바라지 실패하길 바라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실패하면 똑같은 행동을 다시 반복하지 않죠. 그리고 더 많은 걸 깨닫고, 더 많은 걸 느끼고요. 거기에서 또 다른 게 나오게 돼 있어요. 그래서 나는 실패나 성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실행하는데, 그게 나의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M 도전의식 덕분에 작가님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던 삶이었나 봐요. 다행히 지금까지는 이렇게 저렇게 해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할 수 있었어요. 평단에서 반응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따라오는 걸 보면서 힘을 냈어요. 도예가 전통 방식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적인 무언가를 찾아 노력하는 것을 보고 희망을 느꼈습니다.

M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계세요? 2017년부터 ‘나무 시리즈’라는 작품을 해오고 있어요. 한여름이었는데 작업장 앞에서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나무의 울창한 잎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더라고요. 제가 이곳에 처음 정착했을 때 심은 느티나무 묘목이 어느덧 자라서 그렇게 큰 나무가 된 거죠. 시골 어느 곳이든 크고 좋은 동네에 가면 커다란 느티나무들이 서 있거든요, 사람들이 그 아래에 모여서 담소도 나누고 맛있는 걸 나눠 먹기도 하고요. 제 스튜디오에도 그런 나무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심었어요. 처음엔 주변에서 뭐 하러 그런 나무를 심느냐고 했지만, 나는 환갑 때 나무 앞에서 잔치를 할 거라고 호언장담했거든요. 그런데 일흔 살이 넘으니까 이 나무가 보인 거죠. 나뭇잎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까, 그동안 이 나무가 나를 가만히 지켜봐 준게 정말 고마웠어요. 그래서 ‘이제 나머지 인생은 너만 보고 너만 그리다 갈 거다’라고 나무하고 약속했어요.

M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내 작품은 3가지 코드가 있다고 생각해요. 원초적인 것, 지적인 것, 그리고 기술. 원초적인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 안에 있는 것이고요. 지적인 것은 뭐든 보고 배워야 좋고 나쁜 걸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자기 작품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고. 물론 부단히 노력했을 때 그런 판단력이 생길 수 있지요. 그리고 거기에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해요. 그럴싸한 예술보다는 어떻게든 기술을 터득해서 해보고 싶은 걸 구현해내는 게 진짜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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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호 작가가 작품에 구현해낸 강렬한 색감에 매료되었다는 마크 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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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불이라는 재료가 지닌 다양한 성질을 이용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치고 있는 신상호 작가.

마크 테토(Mark Tetto)

마크 테토(Mark Tetto)

JTBC 〈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 생활 11년 차, 북촌의 한옥 마을에 거주하며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매일 누리고 있다. 경복궁 명예 수문장을 역임하고, 한국 공예품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 중 한 명. 매달 〈리빙센스〉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CREDIT INFO

editor 심효진 기자

photographer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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