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훈 시인이 만난 문인의 서재 6

 

돌보다 무거운 나비

소설가 은희경은 주로 낯선 환경에서 소설을 쓴다. 낯선 환경이 낯설지 않다. 마치 유목민이 게르를 치고 살아가듯이 그녀의 집필 공간은 노마드의 공간이다. 물론 집에 서재가 있고 한때는 작업실을 두기도 했지만,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 정체된 느낌이 들고 집필 욕구가 솟아나지 않는다고 했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있는 카페 구석에 노트북을 두고 풍경을 보면서, 해찰도 하면서 집중적으로 글을 쓴다. 그녀를 창이 넓은 어느 카페에서 만났다. 사람들이 있고, 책이 있고, 음악이 있는. 무엇보다 은희경이 있는 공간이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 먼 길이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아득하다. 작가에게 정년이 없다는 말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에서 타오르는 창작의 불길을 의미한다. 그녀는 모닥불처럼 여전히 따뜻하게 타오르고 있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 먼 길이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아득하다. 작가에게 정년이 없다는 말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에서 타오르는 창작의 불길을 의미한다. 그녀는 모닥불처럼 여전히 따뜻하게 타오르고 있다.

또 못 버린 물건들

“이번에 낸 산문집 «또 못 버린 물건들»은 처음으로 집 서재에서 썼어요. 집에 있는 물건들에 대한 글이어서 가능했어요. 외출을 저어하게 하는 코로나19의 향도 있었겠지만 다정하고 편안하게 썼어요.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쓴 소설과는 달라요. 저는 소설을 쓸 때 독하게 파고들면서, 끊임없이 파고들면서 써야 하는 버릇이 있어요. 낯설게 쓰기라고나 할까, 그런 생각 때문에 작업실이나 집 안의 서재에 머물지 않는 것 같아요. 집에서 벗어나 내 공간을 확보하고, 그 공간에서 작업을 하면 그게 바로 작가의 서재가 되는 거죠. 집에서는 소설 원고 검토나 교정을 보거나, 뭐, 행정적인 작업을 한 달까. 그런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녀는 소설 창작집 외에 산문집은 낸 적이 없었다. 그전에 «생각의 일요일들»이라는 책을 냈지만, 이는 이병률 시인의 권유로 SNS에 실은 글을 모은 것 이고, 새 집필 작업을 통한 작품집이 바로 «또 못 버 린 물건들»이다. 소설가가 소설만 쓴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황순원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아예, 소설 이외에 다른 글을 쓰지 말라고 당부하다. 하긴 소설만 잘 쓰면 된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은희경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유연해졌 다고나 할까, 조금 망설이다가 그냥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새의 선물»은 그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100쇄를 찍은 책으로 그녀를 온전히 창작에 전념하도록 도와준 선물 같은 책이다. 그 아래는 가장 최근에 낸 산문집이다. 물건에 대한 글이 가볍지만 깊이 있는 공감을 하게 한다. 첫째와 막내가 서로 포옹하고있는 것 같다.
«새의 선물»은 그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100쇄를 찍은 책으로 그녀를 온전히 창작에 전념하도록 도와준 선물 같은 책이다. 그 아래는 가장 최근에 낸 산문집이다. 물건에 대한 글이 가볍지만 깊이 있는 공감을 하게 한다. 첫째와 막내가 서로 포옹하고있는 것 같다.

 

늙음은 변화한다는 것

몸과 정신의 관계는 동전의 앞뒤와도 같다. 고승이나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인간은 몸에 의해 정신이 움직이고, 정신과 공간에 의해 몸이 움직인다. 감옥에 있거나 절에 있다면 죄인이거나 수도승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래서인지 몸이 늙어 간다는 것은, 정신도 같이 퇴보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꼰대’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몸이 늙어가도 정신이 더 싱싱하게 살아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우리는 현자, 혹은 위대한 인물이라고 부른다. 때로는 그러한 노인이 시대를 더 젊은 정신으로 이끌기도 한다. 소설가, 예술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모든 것이 변해 간다”는 김광석의 노래처럼, 너를 알고, 사랑하고, 예술을 하면서 인간은 변해 간다. 늙음은 그 변화의 일부일 뿐이다. 늙음을 경계해야 할 것은, 몸과 마음의 경화현상이다. 더는 책도, 생각도, 노력도 하지 않으면 경화현상이 일어난다. 그것은 인간을 초라하게 만든다. 이런 현상에서 은희경은 벗어나 있다. 그것이 그녀가 소설을 쓰는 힘이다. 그녀는 지금을 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 그것이 중요한 일이다. 과거에 얽매여 있다면 독자들은 외면 할 것이다. 그녀의 독자가 많은 이유는 같이 호흡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 간혹, 인터뷰어가 젊게 산다고 하는데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호기심이 많아요. 과연 ‘이 세상이 어떻게 될까’란 궁금증부터 내 '몸'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젊다기보다는 동시대인으로, 지금 사는 사람들, 이 시대의 사람으로서 쓰는 거죠. 젊은 감각? 그런 거 없어요. 다만 경계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옛날 생각으로 사유하고 쓰는 거예요. 현재의 감각으로 쓰려고 해요. 가족관계, 사랑, 타인의 삶 등등 말이죠.”

 

세월의 먼지를 털어내면서

그녀에게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은희경은 행복해 보다. 행복에 ‘비결’이라는 것이 있을까?
“글이 잘되면 행복해요(웃음). 기분이 ‘업’되죠. 글이 잘 안 되면 속상해요. 울 때도 있어요. 작가가 되고 나서, 행복과 행운이 찾아온 것 같아요. 세상에 저는 빚을 지고 있어요. 독자의 사랑, 문단의 평가, 동료와의 관계 등등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는 축복 받았어요. 물론 쓰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 하지만 그것도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 작가는 사회현상에 대해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저는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어요. 타고난 성품도 있지만, 소설가로서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어떤 프로파간다나 선언문을 쓰는 것보다는, 소설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더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소설을 쓰건 그건 작가의 말이고, 사유의 표현이죠. 그것만 하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죠. 그 일에 충실한 거죠. 저의 정치적인 견해는 저의 생각이에요. 그것도 제 소설 속에 다 녹아들어 있죠. 그럼 뭐가 더 있을까? 소설을 더 생각하고 더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 차를 마시고 있는 작가의 손이 소품처럼 보인다. 따뜻한 사랑을 매만지고 있는 것 같다. 차가 식는다. 인간도 변한다. 하지만 찻잔은 여전하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문다는 뜻이다. 찻잔도 깨지면 칼날이 되니 조심해서 다루는 손길이 느껴진다.
1. 차를 마시고 있는 작가의 손이 소품처럼 보인다. 따뜻한 사랑을 매만지고 있는 것 같다. 차가 식는다. 인간도 변한다. 하지만 찻잔은 여전하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문다는 뜻이다. 찻잔도 깨지면 칼날이 되니 조심해서 다루는 손길이 느껴진다.

아는 것에 관해 편하게 쓴다

세월이란 공간 속에 머무는 먼지 같은 것이 아닐까? 오랜 세월 함께한 물건 위에 눈처럼 쌓여 있는 먼지, 먼지를 걷어내면 물건은 그대로 있다. 은희경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세월이 먼지처럼 쌓여 있지만, 그것을 그녀는 항상 털어내고 글을 쓴다. 그 먼지를 털어낸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보통은 먼지가 쌓여 형체를 가릴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한다. “어, 이건 내가 아닌데?”
그녀는 고전과 더불어 현대 작가들에 대한 촉각도 날이 서 있다. 최근에는 아일랜드 작가인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라는 작품을 잘 읽었고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1991년생 잉글랜드 작가의 작품에서부터 1914년생 체코 작가 보후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도 좋게 읽은 작품이다. 그녀의 역동성은 독서를 통해서 잘 나타난다. 이것이 현재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아닐까 싶었다. 어린 작가의 작품에서 자극을 받고, 더 싱싱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 이런 태도에 먼지가 쌓일 일이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차가 다 식었다. 차가 식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은 적당한 시간이었다는 이야기다. 적당한 시간, 그 시간만큼 세월이 갔다. 한 두어 시간 정도. 처음 은희경을 만난 것은 남진우 시인의 소개로, 성북동 문학동네 출판사 근처의 허름한 식당이었다. 거기에 젊고 아름다운 여성 작가 2명이 있었다. 은희경, 전경린. 두 사람은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은 작가들이었다. 은희경이 1회 수상자고, 전경린이 2회 수상자이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작가로 성장하고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변치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말씨와 행동이다. 물론 몸은 변했을 것이다. 그녀는 ‘몸’에 대한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작가에게 연필은 손톱과도 같다. 연필을 깎는 것은, 손톱을 깎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펜은 작가의 손의 연장선에 있다. 그녀가 연필 들기가 무겁고 힘겨워질 때까지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 인연, 가벼운 것이 무거워지면 헤어지기 마련이다.
작가에게 연필은 손톱과도 같다. 연필을 깎는 것은, 손톱을 깎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펜은 작가의 손의 연장선에 있다. 그녀가 연필 들기가 무겁고 힘겨워질 때까지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 인연, 가벼운 것이 무거워지면 헤어지기 마련이다.

 

“ 인스턴트가 몸에 안 좋다고들 하잖아요. 그 이유가 인스턴트는 영양소가 단순하다는 겁니다. 하나만 계속 먹으니까, 여러 영양소를 원하는 몸이 안 좋아진다는 거지. 그 음식이 특히 나빠서가 아니라는 거에요. 정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몸의 건강을 생각하듯, 정신 역시 여러 가지 요소를 받아들이고, 녹이고 하면서 녹슬지 않는 거지요. 이 소설은 여러 해 전부터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몸이라는 주제가 너무 넓고 커서 힘들었는 데, 시간이 지날수록 구체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몸이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잖아요. 각자의 삶이 다른 것은 가지고 있는 몸이 달라서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몸이죠. 그런데 억압하는 어떤 규율들이 우리를 획일적으로 만들어 버려요. 요즘은 ‘몸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것 역시 제가 소설가로서 착상한 몸에 대해 대답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박완서의 단편 <마른 꽃>이 생각났다. 늙은 몸에 대한 이야기다. 과부 노인의 연애 이야기인데 이런 구절이 있다. “연애감정은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했다.” 그리고 늙은 몸에 대한 선생 특유의 잔인하도록 솔직한 묘사가 있다. 몸 이야기는 은희경을 통해 어떻게 나올까, 벌써 기다려진다. 카프카의 «변신»도 벌레로 변신한 인간 몸에 관한 이야기다. «오이디푸스» 역시 ‘눈동자’와 내면의 눈이라는 몸 이야기다. 최인훈의 «광장» 도 어디 갈 곳이 없는 이 땅의 몸 이야기다. 곰곰이 생각하니 그리스 신화 역시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낸 신의 몸, 즉 인간의 몸 이야기가 아닐까?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은 우리 몸인 구강 구조로부터 탄생했다. 어쩌면 몸 이야기가 곧 소설이다. 이 발상이 어떻게 작품으로 탄생할지 정말 궁금하다.
그녀는 소설을 쓸 때 “아는 것에 관해서만 편하게 쓴다”라는 원칙을 정했다. 편하게 쓴다고 해서 안이하게 쓴다는 게 아니라, 어깨에 힘을 빼고, 대작을 쓰려는 욕심을 버리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바로 그런 태도가 실로 대작을 탄생시킨다. 황석의 «장길산»은 중편 정도의 소설을 쓰고자 어깨에 힘을 뺀 결과물이다. 소설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마도, 소설가 자신도 잘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쓰는 동안에 변하고, 쓰는 동안에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져온 산문집 속 소품들이다. 안경,펜, 그리고 돌. 돌은 출판사에서 독자들에게 굿즈로 만들어 증정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놀랐다고 한다. 사람들은 돌에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구체적인 형태와 질감은 상상력과 온기를 준다. 그것이 좋은 것이다.
그녀가 가져온 산문집 속 소품들이다. 안경,펜, 그리고 돌. 돌은 출판사에서 독자들에게 굿즈로 만들어 증정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놀랐다고 한다. 사람들은 돌에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구체적인 형태와 질감은 상상력과 온기를 준다. 그것이 좋은 것이다.

 

엄마의 유품인 반지를 끼고
은희경의 문학에는 소품들이 있다. 그녀의 문학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산문집에서 밝혔듯이 엄마의 유품인 반지는 가끔 낀다고 한다. 자신이 소설을 쓰겠다고 했을 때, “30대 중반의 여자가 애들은 어쩌려고”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반지를 끼면서 ‘잠들기 전에, 잠이 안 올 때, 더 강해지고 싶을 때, 외로움 따위는 인간의 천분이 아니라고 자신을 설득하면서’ 엄마와 함께 견디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아끼는 물건이 있다. 그것이 작고 초라해도 자신의 몸과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작가의 펜이 그렇다. 펜은 단순한 필기도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떤 경우는 그 작가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은유의 물건이다. 하지만 그녀는 물건을 다루는 방식이 ‘은희경’답다. 가볍고 경쾌하지만, 이 시대의 삶의 본질을 응시하는 혜안이 있다. 술잔, 감자 껍질 깎는 칼, 만화경, 돌, 스타킹 등등 정말 그녀의 소설, 아니 소설이라는 건축 공간에 등장 하는 소품들이 이토록 진지하고 나만의 명품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주 오래전에 <동아일보>에서 작가의 애장품이라는 지면을 마련하고 젊었던 나와 건축가 등 3명의 애장품을 공개한 적이 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던 정음사 판 시 집 두 권을 준비했다. 릴케와 엘리어트다. 다른 분들의 애장품은 참 비싸고 멋진 것들이었는데, 솔직히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이런 기억을 끄집어낸 이유가 있다. 그녀의 소품들은 모두 그녀의 손때가 묻은 자잘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집처럼 말이다. 그녀의 글을 보면서 나의 소품을 보니 그 범위 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도 많은 문인이 이런 성향이 아닐까 싶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그들은 명품을 소유하기보다는(물론 명품 도 소유하면 좋다), 자잘한 소품을 명품으로 간직하는 사람들이다. 거기에 그때의 체취와 혼이 스며들어 있으니까.

그녀는 경쾌하고 밝다. 그 환한 모습은 내면의 어둠을 담보로 한다.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창조해 낸다.  그것이 작가가 아름답게 사는 이유다. 
그녀는 경쾌하고 밝다. 그 환한 모습은 내면의 어둠을 담보로 한다.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창조해 낸다.  그것이 작가가 아름답게 사는 이유다. 

 

독자에게 선물 같은 존재

은희경은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나비다. 그녀의 경쾌하고 세련된 걸음걸이는 화려한 곳으로 가지 않는다. 나비가 여행에 지친 사람의 어깨에 잠시 내려 앉듯, 고단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소외되고 가엽고, 어쩌면 불쌍한 사람들의 손 등에, 가슴에, 혼에 내려앉는다. 그래서 그녀는 독한 내면을 품고 있는, 참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독자들에게 선물과도 같다. 그녀의 소설 «새의 선물»이 작년에 100쇄를 찍었다. 100번을 찍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많이 팔렸다고? 아니다. 잘 팔렸다는 것이다. 아주 잘 팔린 책이다. 단행본의 수명이 월간지보다 짧다고 하는 풍토에서 그녀의 책은 왜 작가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잘 설명하고 있다. 독자들은 항상 기다리고 있다. 좋은 작품을 말이다. 책이 잘 팔리는 작가가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걸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아시다시피, 동료 작가들만 봐도 좋은 작품인데도 잘 팔리지 않는 소설들이 참 많죠(웃음). 참 많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문운이랄까, 행운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고마운 일이죠. 물론 어떤 경우에도 작품은 남죠. 나중에 평가받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당대에 평가 받고 사랑받는 일은 중요하죠. 그것이 작가의 집필 욕구를 왕성하게 하고, 또 반성하게도 하니까요. 생활도 할 수 있게 하고, 독자의 사랑이 참 고맙지요.”

외국에서 머물 때 가져온 자동차 번호판. ‘워싱턴’이라는 문자가 낯설지 않다. 이 번호판처럼 그녀도 세계적인 작가로 도약하기를 기원한다.
외국에서 머물 때 가져온 자동차 번호판. ‘워싱턴’이라는 문자가 낯설지 않다. 이 번호판처럼 그녀도 세계적인 작가로 도약하기를 기원한다.

 

이 겸손한 말에 나는 그녀가 쓴 소설의 문장으로 대꾸한다. “사랑은 누가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오는 운명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사랑하고 안 하고는 취향이며 뜨겁게 사랑하는 것은 엄연한 능력이다.” 독자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녀의 능력이다. 앞으로 좋은 소설로 그녀를 만나기를 바라면서 카페의 넓은 창문을 바라보았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들이 내려와 앉아 있다.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는 나무에는 아마도 새순이 돋을 것이다. 그 때 저기에 있는 새는 어디로 날아갈까? 새는 앉았던 그 자리의 꽃으로 피는 것이 아닐까?

 

원재훈

등단한 지 36년이 됐다. 그보다 긴 시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썼다. 1988년 가을 «세계의 문학»에 시 <공룡시대> 발표를 시작으로, 시집 «낙타의 사랑»,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라 하네», 소설 «만남», «망치», 산문집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착한 책»을 비롯해 동화, 번역서 등을 냈다. 문학 관련 TV와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국악방송 <행복한 문학> MC로도 활약하며, 언제나 시의 쓸모를 말하고 있다.

 


CREDIT INFO

editor이승민

words원재훈

photographer김시진

장소 협조지혜의숲0507-1335-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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