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집과 낭만 37
가족의 취향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징글징글하게 닮아 있는 취향에 대하여.
부산에 왔다. 고향이 부산이라 두어 달에 한 번은 부산에 온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서울이 고향인 서울 사람들은 말한다. 고향이 부산이라 부러워요. 해운대도 가고 광안리도 가고, 바닷가에 가서 회도 먹겠네요. 첫 문장을 보자마자 이런 생각을 한 서울 출신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건 여러분 머릿속 부산이 해운대와 광안리와 회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부산은 넓다. 내가 청춘을 보낸, 그리고 부모님과 동생이 살고 있는 부산은 ‘동래’ 지역이다. 부산에서 가장 내륙에 있는 동네다. 여기서는 바닷가를 볼 수도 없다. 바다 냄새도 날 리가 없다. 가장 가까운 해안가는 해운대다. 차로는 30분이 걸린다. 막히면 1시간이다. 이 동네 대표 음식은 해산물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파전이다. 동래는 몰라도 동래파전은 다들 들어보셨을 것이다. 파전에 오징어가 들어가긴 할 것이다만, 부산은 너무 남쪽이라 오징어가 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시라. 지방 누군가가 서울 사는 여러분에게 말한다. 서울 사신다니 너무 부러워요. 매일 한강에서 산책도 하고 명동칼국수도 먹겠네요. 예로 든 게 왜 명동칼국수냐고? 부산 출신인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서울스러운 음식이라 그렇다. 대전 사는 사람이 매일 성심당 빵을 먹고 사는 건 아니다. 전주 사람이 매일 비빔밥을 먹는 것도 아니다. 잠깐, 혹시 대전 사람들은 정말로 매일 성심당 빵을 먹는 건 아닐까. 잘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거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어떤 도시에 살든 다들 배민으로 백반을 시켜 먹고 파리바게뜨 빵을 사 먹고 그렇게 산다. 오늘 나는 부모님과 메기매운탕을 먹었다. 바다생선이 지겨워서 민물생선을 먹었다. 부산 사람들은 회식할 때 회를 잘 먹지 않는다. 부산 사람들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역시 소고기 사주는 사람이다.
사실 부산에 온 것 같지도 않다. 부산에 머무르는 내내 나는 부모님 집과 동생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부모님 집도 아이파크다. 동생 집도 아이파크다. 서울 내 집도 아이파크다. 나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온 게 아니다. 2시간 반 걸려 아이파크에서 아이파크로 왔다. 차라리 래미안이나 자이였다면 여행 온 기분이라도 났을 것이다.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디자인한 해운대 아이파크였다면 바다를 바라보며 휴양 온 기분이라도 냈을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해운대 아이파크는 지나치게 비싸다. 지나치게 비싸다는 말은 쓸모없이 비싸다는 소리다. 나는 창문도 열 수 없는 거주용 건물에 대한 편견도 있다. 물론 비싸서 살 수 없으니 창문도 열 수 없는 건물 따위 싫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다. 손이 다다를 수 없는 포도는 다 시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서울 내 집에 머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물건이 지나치게 많은 탓이다. “아이고, 이놈의 집구석은 물건이 너무 많아가지고 사람 앉을 자리도 없네”라고 불평하신다. 거짓말이다. 아무리 물건이 많아도 사람 앉을 자리는 있다. 물론 나는 어머니의 불평을 이해한다. 앉을 자리는 있지만 기댈 자리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서울 올라오시는 걸 꺼린다. 집구석이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오래 머물기가 힘들어서다. 어머니의 불평은 계속된다. “참 이상하지. 나랑 니 동생은 미니멀하게 비우는 걸 좋아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물건을 이고 지고 사는 건지 모르겠다.” 역시 거짓말이다.
사실 나의 수집광으로서의 인생은 부모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무역선 선장이던 아버지는 세계 곳곳을 돌며 구입한 온갖 쓰레기, 아니 물건들을 집에 들고 오셨다. 지금은 국제 거래 자체가 금지된 코끼리 상아로 만든 코끼리도 있었다. 박제한 악어도 있었다. 1980년대에는 상아로 만든 이국적인 오브제나 박제한 동물을 거실에 전시하는 게 유행이었다. 집이 컸다면 아버지는 박제한 호랑이라도 들고 들어왔을 것이다. 나에게는 지론이 하나 있다. 모든 사람의 인테리어는 자신이 어린 시절 이상적으로 생각한 집의 모습을 닮는다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잘 생각해 보시라. 여러분 집은 어린 시절에 꿈꾸었던 집의 현대적인 변용일 가능성이 크다. 프로이트라면 분명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여러 번의 이사를 거치며 집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 모든 아버지의 유산을 내다 버리는 데 집중했다. 한국인은 이사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민족이다. 어린 시절 살던 집에 아직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인은 이사를 할 때마다 과거를 지운다. 모든 헌것은 버리고 새것으로 새집을 채우는 것은 거의 국민적 스포츠나 다름없다. 물론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 어린 시절 거실의 구석을 장식하고 있던 등나무로 된 정수기 같은 것이 그렇다. 1980년대에는 유리로 된 물통을 등나무로 고정한 정수기가 유행이었다. 물통 안에는 물을 깨끗이 정수한다는 조약돌이 들어 있었다. 조약돌 따위가 물을 제대로 정수했을 리는 없다. 어쨌든 모두가 보리차를 끓여 먹던 시대에 등장한 나름의 신문물이었다. 그런 건 갖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어머니는 다른 것도 버렸다. 코끼리도 버리고 악어도 버렸다. 아, 나는 이 글을 쓰며 한탄하는 중이다. 그 물건들이 부모님 집에 아직도 있었다면 신문지로 꼼꼼하게 포장해서 서울로 당장 들고 올라갔을 것이다. 이제는 구할 수도 없는 물건들이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옛 물건들을 버리는 것을 꽤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내 아버지는 가정의 일은 딱히 간섭하지 않는 전형적인 뱃사람 출신 경상도 남자였다. 서울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경상도 남자들은 일도 가정도 제멋대로 휘두르길 좋아하는 마초라는 것이다. 맞다. 마초는 맞다. 하지만 경상도 남자들은 지나치게 마초라 오히려 가정의 소사小事에서는 손을 떼는 편이다. 그들에게 집안일은 남자가 손댈 일이 아니다. 마초가 너무 마초가 되면 오히려 덜 피곤한 마초가 된다. 어쨌든 아버지의 말 없는 허락하에 우리 가족의 역사는 하나씩 사라졌다. 박찬욱 영화 속 벽지를 닮은 화려한 패턴의 초록색 소파도 사라졌다. 그걸 지금까지 갖고 있었다면 지금 서울 내 집의 영국 할머니 집스러운 맥시멀리즘은 정말이지 완벽하게 완성되었을 것이다. 하도 어린 시절이라 무엇이 중하고 귀한지 몰랐던 나를 원망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남은 것이 있다. 부모님이 결혼하면서 혼수로 장만한 자개장이다. 어머니는 끝내 이것만은 버리질 못했다. 지금은 통영이 된 충무의 나전칠기 장인이 만든 이 자개장을 나는 정말 좋아했다. 컴퓨터도 없고 아이패드도 없던 시절에는 티브이와 책 말고는 아이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자극할 만한 물건이 별로 없었다. 나는 어머니 방의 자개장을 보며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공작새 커플을 중심으로 논 오리와 참새 등 온갖 조류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전복 등 빛나는 조개류 껍데기를 가공해 만든 이 자개장은 스펙터클이었다.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1980년대에는 혼수로 자개장을 해가는 것이 유행이었다. 친구나 친척 집에 가도 자개장은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뭐가 더 좋은 것인지는 구분이 가능했다. 어머니의 자개장은 작품이었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자개장은 본 적이 없었다.
나전칠기의 시대는 갔다. 나전칠기의 고장이던 충무에는 소수의 기능장들만 남았다. 레트로가 유행하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자개장이 다시 인기라는 기사를 몇 번 본 적은 있다. 그렇다고 자개장이 다시 예전처럼 유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과거의 것은 과거의 것이 되어 결국 사라진다. 다행히 어머니의 과거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직도 어머니 방에서 찬란하게 날갯짓을 하며 빛나고 있다. 나는 어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물론 이건 문학적 표현이고, 그냥 구두로 계약을 했다. 어머니에게 더는 필요 없어지는 순간 자개장은 내가 물려받기로 했다. 계약을 하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니 집 거실에 있는 진열장이 마음에 들더라.” 1970년대 덴마크 빈티지 사이드보드다. 어머니의 취향은 나의 현재로 향하고 나의 취향은 어머니의 과거로 향한다. 가족은 참으로 징글징글하게 서로를 닮는다.
김도훈 @closer21
오랫동안 <씨네21>에서 영화 기자로 일했고, <GEEK>의 패션 디렉터와 <허핑턴포스트> 편집장을 거쳐 《이제 우리 낭만을 이야기 합시다》라는 책을 썼다. 평생(?)에 걸쳐 수집한 물건들과 아름다운 물건들이 공존하는 그의 아파트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김도훈 나라다.
editor심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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