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브루탈리스트〉를 보고 나서 떠오른 몇 가지 의문들. 이를 해결하고자 두 명의 건축가를 만났고, 긴 대화 끝에 마침내 실마리를 찾았다.
Matter of Brutalism
어떤 영화는 누군가의 세계를 한 뼘 더 넓혀준다. 최근 내게 영화〈브루탈리스트〉를 본 시간이 그런 강렬한 경험으로 기억된다.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관왕을 달성한 이 영화는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 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40년대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건축가인 라즐로는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자신의 건축 철학을 지키고자 끊임없이 투쟁하지만 시대와 권력, 자본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번번이 무너진다. 그럼에도 끝내 그가 지켜낸 것, 그리고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상영관을 나온 이후에도 여전히 ‘거친 텍스처’ 정도로만 기억되는 브루탈리즘. 이 사조는 어떤 배경 속에서 탄생했을까? 브루탈리스트는 그렇다면 어떤 이들로 정의되는가? 답을 찾기 위해 국내 건축계의 권위자인 김인철, 박태홍 두 건축가를 만났다.
인터뷰를 위해 두 분께도〈브루탈리스트〉를 보고 와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영화는 어떻던가요?
김인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봤습니다. 건축을 소재로 한 영화라길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건축을 매개로 한 드라마더군요. 왜 건축가를 주인공으로 설정했을까 곱씹어보니, 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 사회의 풍경을 설명하는 데 건축이라는 매개가 적절했기 때문이겠지요. 신흥 부자들이 생겨나고, 그들이 건축가를 불러 일을 맡기면서 생기는 긴장과 갈등.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화자로 건축가가 필요했구나 정도로 받아들였습니다.
박태홍 저도 비슷하게 느낀 것 같네요. 드라마라는 건 결국 극적인 인물의 삶이 중심에 있지 않습니까? 감독이 건축가라는 직업을 택한 것도, 2차 세계대전 이후 건축가가 처한 입장이 얼마나 드라마틱한지를 보여주려는 의도였을 겁니다. 영화는 클라이언트와 건축가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긴장감이 상당하지요. 위대한 건축가의 일대기를 담은 전기영화라기보다는, 결국 클라이언트와의 갈등이 주된 이야기의 축을 이루더군요.
말씀처럼 영화 속 라즐로와 깊게 얽히는 인물인 클라이언트 해리슨가이 피어스 분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건축가로서 실제 현장에서 마주쳤던 클라이언트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으셨는지요.
김인철 주인공이 때로는 무력해 보일 정도로, 건축가의 역할을 규정하는 존재가 바로 클라이언트인 해리슨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건축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지요. “내가 오너이니 네가 무엇을 하든 결국 내 뜻에 맞춰야 하고, 예산을 넘어서도 안 된다”라는 식입니다. 건축이라는 일 자체가 영화 속 제작 과정과도 닮아 있습니다. 수많은 조력자가 필요하고, 엄청난 돈이 들어가며, 그 과정에선 자연히 제작자의 목소리가 크게 개입되기 마련입니다.
박태홍 해리슨은 분명 악역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일종의 구원자 같은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의 아들 필립조 앨윈 분이 라즐로 토스에게 아버지의 서재 수리를 의뢰했지만, 해리슨이 나타나 분노하며 그를 내칩니다. 나중에는 바닥까지 떨어진 라즐로를 다시 끌어올리는 것도 결국 그 사람이죠. 우리 건축계에서는 내쫓는 사람은 많아도, 다시 손을 내밀어주는 이는 드뭅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보다 현실이 더 냉혹한 것 같아 씁쓸했죠.
그래서 더더욱 해리슨이 다른 건축가를 불러 설계 변경을 시도하려 하자, 라즐로가 그를 데리고 구석으로 가서 소리치는 장면에서 속이 시원하던걸요. “이 건물에서 못생긴 건 다 네 탓이야Leslie is a bastard!”라고. 건축가가 아님에도 영화 내내 둘의 관계를 보며 어떤 무력함과 불편함이 느껴졌거든요.
박태홍 건축가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건축가는 매춘부다.” 미국의 저명한 건축가이자 평론가 필립 존슨이 한 말이지요. 영화 속에서 라즐로가 설계 초안을 브리핑할 때 해리슨이 보여주는 태도만 봐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거만한 자세. ‘내가 시키면 너는 들어야 한다’는 태도. 그 말이 겹쳐지는 순간이 영화의 첫 장면, 라즐로가 처음 미국에 도착해 창녀를 사는 장면이죠. 그걸 보며, 감독이 건축가라는 존재의 아주 나약한 면을 참 잘 보여주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해리슨과 라즐로의 관계는 다시 뒤집히게 되죠.
영화 속 라즐로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바우하우스 출신 헝가리계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마르셀 브로이어를 떠올리는 분도 많더군요.
박태홍 흡사한 면이 많죠. 바우하우스에서 공부를 했고, 강철 파이프로 만든 의자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바우하우스가 지향했던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죠. 수공예 장식을 버리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디자인. 영화 초반에 라즐로가 사촌형의 가구 공장에서 파이프 의자를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후에 그의 서재에도 파이프 프레임의 체어가 놓여 있지요.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를 연상시키는 장면입니다. 영화 후반부, 해리슨의 어머니를 위한 문화센터 장면에서는 루이스 칸의 건축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김인철 특히 목탄 드로잉 장면에서 더더욱 그렇게 다가왔죠. 루이스 칸이 주로 파스텔로 스케치를 하곤 했으니까요. 또 유대인 건축가라는 점에서 프랭크 게리나 모셰 사프디도 떠올랐습니다. 영화 중반부부터 주무대가 되는 해리슨의 어머니를 위한 문화센터에서는 안도 다다오의 색채도 엿보였고요. 다만 안도 다다오의 콘크리트는 너무 매끄럽고 정제돼 있어 유럽에서 시작된 브루탈리즘과는 결이 다릅니다. 콘크리트를 매끈하게 가공한 일본적인 브루탈리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건축가로서 영화 속에서 조금 아쉬웠던 점도 있었을까요?
박태홍 라즐로가 해리슨에게서 다시 일을 의뢰받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해리슨이 라즐로에게 그가 미국으로 넘어오기 전 지었던 건물에 대한 칭송을 하죠. 그런데 “강이 범람해도 내 건물은 남아 있을 것이다”라는 대사는 건축가의 기술적인 부분만 강조한 것 같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앞서 서재를 설계하던 장면처럼, 창의성을 더 부각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남향이라 빛이 너무 강해 암막을 쳐놓은 서재 공간을, 사선으로 떨어지는 문이 달린 책장으로 해결해 내는 모습. 그게 바로 건축가의 혁신성과 문제 해결 능력이죠.
브루탈리즘이 어떤 배경에서 생겨난 건축 사조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인철 영화가 1947년부터 시작되잖아요. 제 출생 연도이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의 많은 건축가들이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주인공 라즐로 토스처럼요. 그러면서 유럽이 주도하던 건축의 흐름 또한 미국으로 옮겨가게 됐지요. 그 당시는 산업혁명으로 건축의 규범이 합리와 기능주의로 전환되는 시기였어요. 결국 그 장식을 걷어내고 본질로 돌아가자는 움직임 속에서 모더니즘이 등장했고, 이후 브루탈리즘이 태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오히려 묻고 싶네요. 건축가가 아닌 입장에서 브루탈리즘이 무엇이라고 알고 있습니까?
우선 노출콘크리트와 거친 질감을 그대로 드러낸 투박한 형태가 떠오르는 걸요.
김인철 대개 그렇지요. 하지만 그 거친 표면 속에 담긴 의도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축은 결코 모양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공간을 만드는 일이지요. 형태는 그저 공간을 감싸는 껍질일 뿐입니다. 브루탈리즘이 태동하기 전,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나친 장식주의로 인해 공간의 본질이 가려질 정도였습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피에타 조각상이지요. 공간보다 장식이 앞서던 시대였던 겁니다. 결국 그 장식을 과감히 걷어내고 본질로 돌아가자는 움직임 속에서 모더니즘이 태동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남긴 “장식은 시간과자원의 낭비이며, 문명의 진보에 해가 된다”는 말도 그때 나오게 된 겁니다.
그 변곡점에 철근 콘크리트가 등장한 걸까요?
김인철 맞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도시화가 본격화되면서 철근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가 등장했지요. 그 시기에 르 코르뷔지에 같은 인물이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왜 그가 위대한 건축가로 평가받는지 아십니까? 당시 콘크리트는 대리석 같은 장식을 얹기 위한 바탕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장식 없이, 구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대표작 ‘유니테 다비타시옹’ 역시 처음에는 “도대체 저게 뭐냐”는 호된 비판과 함께 미분양 사태까지 겪어야만 했죠. 하지만 결국 그 건물은, 당시로서는 얼마나 과감하고 혁신적인 시도였는지를 증명해 주며 아직까지도 칭송을 받아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브루탈리즘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오해도 많은 것 같습니다.
박태홍 브뤼트Brut라는 용어가 영어권으로 넘어가면서 일종의 오역이 되었죠. 현재의 많은 오해들이 그때 생겨났습니다. ‘거친’을 뜻하는 브루탈과, 르 코르뷔지에가 의도했던 개념인 브루탈리즘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의미예요. 후자는 정확히 말하자면 ‘본연의’에 가깝습니다. 화장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생얼이랄까요. 대개는 거친 텍스처만 떠오를 겁니다. 이 글을 통해 그런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김인철 ‘브루탈’이라는 단어는 거칠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건축에서는 장식을 걷어낸 순수한 형태, 본질을 의미해요. 장식을 걷어낸 순수한 형태로 공간이라는 건축의 본질을 드러냈다면 그것은 브루탈리즘입니다.
결국 진정한 건축가는 모두 브루탈리스트일 수밖에 없군요.
김인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건축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이번 설계는 오브제 같다”는 말입니다. 공간은 없고 형태만 있다는 뜻이거든요. 건축은 결국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본질을 향해 가는 작업입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지어진 당시의 의도와 가치가 여전히 유효한 건물을 남기는 것이 진정한 건축가의 역할이지요. 언젠가 철거될 운명에 놓인 건물을 짓기보다는, 응당 변하지 않는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선시대 건축에서도 브루탈리즘을 느낄 수 있다고요?
박태홍 충남 서산의 개심사에 가면 나무가 자란 그대로를 기둥으로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재를 가공하지 않고 사용하여 본질을 해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역시 브루탈리즘적이죠. 또한 브루탈리즘 건축은 반드시 콘크리트여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철, 유리, 대리석, 심지어 나무까지도 브루탈리즘의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이후 산업화가 더 진행되며, 콘크리트 외에도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네오 브루탈리즘’이라는 흐름이 생겨난 것도 그런 맥락이지요.
최근 브루탈리즘이 건축계에서 다시 떠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이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김인철 모든 건축 양식은 발전과 정점을 지나면 자연스레 쇠퇴하고, 다시 새로운 해석이 덧붙여지기 마련입니다. 르네상스 시대가 지나면서 과도한 장식에 지루함을 느낀 이들에 의해 모더니즘이 탄생했고, 그 안에서도 다시 반작용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했지요. 시대마다 장식과 해석은 달라지고, 결국 새로운 얼굴을 갖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브루탈리즘 역시 1950년대를 지나왔으니,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브루탈’이 태어날지… 지켜봐야겠지요.
박태홍 요즘의 브루탈리즘은 하나의 유행, 혹은 트렌드에 가깝다고 봅니다. 건축가마다 ‘나는 이 재료를 이렇게 극대화해 보겠다’는 식의 시도로 나타나곤 하지요. 물론 재료 본연의 물성에 더 집중하고, 그것을 드러내려는 의도는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사회적 울림과 무게감을 지니는 건축양식으로까지 자리 잡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아주신다면?
박태홍 저와 김인철 선생님 모두 같은 장면을 꼽았습니다. 라즐로와 해리슨이 이탈리아 카라라 대리석 산지를 찾아가 거대한 원석 앞에 서는 신이죠. 그리고 그 앞에서 해리슨이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영화를 보며 누군가는 ‘돌덩이를 보고 왜 우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너머의 본질과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순간, ‘아, 이것이 아름다움이구나’라는 감각이 오는 거죠. 텅 빈 공간에 놓인 빈 벽조차도 경의롭게 바라볼 줄 아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브루탈리스트의 시선입니다. 대부분은 재단 위에 십자가로 된 그림자가 쏟아지는 장면을 꼽지 않을까요?(하하)
Brutalism-inspired
재료가 갖고 있는 고유의 물성을 순수하게 드러낸 것. 그 점에서 브루탈리즘 정신을 나름의 방식으로 계승한 과거와 오늘날의 가구를 소개한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콘크리트일 필요는 없다.
CARBOARD – WIGGL STOOL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골판지 스툴. 흔한 카드보드 소재를 층층이 쌓아 독창적인 형태를 완성했다. 종이의 유연함과 탄성을 조형적으로 풀어내어 시각적 재미까지 준다. 특유의 표면 질감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 Vitra
도널드 저드의 대표작 중 하나. 불필요한 장식을 완전히 덜어내고, 평면과 직선만으로 구성된 형태가 오히려 강렬한 존재감을 만든다. 목재 고유의 무게감과 질감을 살리면서, 간결함 속에서 완벽한 균형과 비례를 느껴볼 것. Judd Foundation.
WOOD TRACE-TABLE-22-01
권원석 작가의 작품. 옛것에서 찾은 소재와 형태, 기법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가공을 최소화한 목재를 사용해 크고 단순한 형태 안에 기능성을 담았다. 제작 과정에서 드러나는 결절과 흔적이 지닌 ‘우연의 조형미’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권원석
STELL - CESCA CHAIR
자전거 핸들바에서 영감을 받아 튜브 스틸을 가구 프레임으로 사용한 마르셀 브로이어의 대표작. 가볍고 유연한 구조에 라탄 소재의 좌판과 등받이를 더해 따뜻함과 자연스러움까지 담았다. 현대 가구 디자인의 아이콘 같은 작품이다. Knoll.
CLAY - MUSHROOM STOOL
흙 작업 특유의 변수와 우연성을 작품의 일부로 수용했다. 손자국과 유약의 흐름, 갈라짐 등 자연스러운 변형을 그대로 드러낸다. 오브제와 가구의 경계에 놓인 형태. 김무열.
OOD – AALTO CHAIRCHAIR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의자. 핀란드산 나무의 결과 색을 그대로 살려 따뜻함과 자연스러움을 담았다. 목재 고유의 질감과 유기적인 곡선이 조화를 이루며,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전한다. Artek.
ALUMINUM, WOOD - CYLINDER STOOL물성에 집중하여 다양한 실험을 펼치는 서정화 작가. 그가 2020년 선보인 실린더 스툴. 알루미늄과 목재의 대비를 실험한 작업으로, 차갑고 견고한 금속 위에 자연스러운 파손의 흔적을 남겨 두 재질의 대비와 시간의 흔적을 함께 보여준다. 서정.
ACRYIL - BLACKWIND LINE
형태 변형이 자유로운 아크릴의 특성을 살려 이처럼 자연물에서 볼 법한 유기적인 곡선을 만들었다.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나뭇잎 홀더. 쉘위댄스.
GLASS – AALTO VASE
핀란드 디자인의 상징. 알바 알토가 1936년에 디자인한 유기적 형태의 화병으로, 자연의 물결과 곡선에서 영감을 받았다. 유연한 곡선을 표현하는 데 용이한 유리의 성질을 잘 활용해 만든 작품.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클래식한 오브제다. Iittala
CORK – CORK FAMILY
재스퍼 모리슨이 디자인한 스툴. 천연 코르크 특유의 따뜻한 질감을 살렸고, 단순한 형태 안에 미세한 텍스처와 자연스러운 패턴이 담겨 오히려 더 특별한 매력을 준다. 가볍지만 견고해 실용성도 뛰어나다. Vitra.
ALUMINUM - MMK TROLLEY
알루미늄 본연의 텍스처를 고스란히 살린 트롤리. 선과 면의 자유로운 조합, 겹겹이 쌓아 올린 절곡 금속 패널 등 단순한 조형 요소만으로 완성한 디자인. 무심한 듯 담백하지만, 그 안에 담긴 완결성과 비례감이 돋보인다. MMK
WOOD - LOUNGE CHIAR 02
재가 지닌 순수함을 극대화한 디자인. 유행은 바뀌어도 나무는 늘 한결 같다. 그처럼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가치가 빛바래지 않는 영속성을 담았다. Zara Home
LIMESTONE - SIDE TABLE 01
스페인 중부에서 채취한 캄파스페로 석회암으로 제작됐다. 각각의 피스마다 고유한 무늬와 색감을 지니며, 베이지 컬러 위에 은은하게 스며든 광물질과 화석의 흔적이 자연이 만든 독창적 미학을 완성한다. 빈센트 반 두이센과 자라홈의 협업 라인. Zara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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