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생활자들
우리는 하나의 직업, 하나의 이름으로 자신을 정의하곤 한다. 하지만 여기, 단 하나의 정체성에 머물지 않은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백희성 @keab_architecture
아시아인 최초로 프랑스의 최고 권위 건축상인 ‘폴 메이몽 건축가상’을 수상했으며,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의 건축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기억을 담은 건축’을 철학으로 하는 킵(Keab) 건축사사무소를 이끌고 있다. 건축 외에도 창작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데, 에세이 《환상적 생각》과 최근 출간한 장편소설 《빛이 이끄는 곳으로》를 통해 건축과 문학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창의적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Q. 백희성 대표님은 건축가이자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나요?
저는 ‘소설 쓰는 건축가’라고도 하고, ‘기억의 건축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람, 사물, 도시의 기억을 공간으로 풀어내고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소중한 기억이 새롭게 지어질 건물에 새겨진다고 상상해 보세요. 마치 내 몸에 꼭 맞게 재단한 옷처럼, 입는 순간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듯 편안하게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Q. ‘건축은 기억의 재구성’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으시죠? 기억이 건축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먼저 기억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는 겉모습이 너무나 닮아 있어 누가 누구인지 쉽게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각자의 성격은 분명히 다르죠. 거의 동일한 유전자를 지녔음에도 성격이 달라지는 이유는 바로 ‘경험’ 때문이에요. 경험은 우리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죠.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경험이 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경험은 스쳐 지나가듯 사라지지만, 어떤 경험은 깊이 새겨져서 우리의 가치관이 되고 삶의 일부가 됩니다. 이렇게 선택된 경험이 바로 ‘기억’입니다. 만약 기억을 기반으로 건축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전 세계 인구가 82억 명이라면, 우리는 82억 개의 기억으로 건축을 표현할 수 있겠죠. 기억을 재구성해 공간을 만들면, 그것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고유한 이야기를 품은 장소가 됩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82억 개의 독특하고 특별한 기억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저희를 늘 설레게 하죠.
Q. 누군가의 기억을 공간에 녹여내는 작업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은퇴한 소방관의 기억을 담은 갤러리 카페 공감선유가 있습니다. 어느 날, 머리가 하얗게 쇤 한 소방관이 저희를 찾아오셨어요. 은퇴를 앞두고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하셨죠. 저희는 은퇴 자금으로 카페를 창업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생 물로 사람을 살려온 내가 은퇴 후에도 사람들에게 이로운 길을 생각해 보니, 역시 물과 함께하는 것이더군요. 그런데 내 머릿속에서 물과 연결되는 길은 오직 카페뿐이었습니다.” 그분은 젊었을 때 광고회사를 꿈꿨지만, 우연히 소방공무원 공모를 접하고 소방관이 되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소방관으로 일하며 한가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내가 원하는 길과 운명이 가리키는 길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운명의 길을 따라가면 조금 고될지 몰라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우리는 그의 삶을 공간으로 풀어냈어요. 물이 휘감아 언덕으로 오르는 3개의 건물을 짓고, 공간의 배치를 비틀어 시선이 향하는 방향과 실제 걸어야 할 길이 엇갈리도록 디자인했죠. 마치 그의 꿈과 운명이 엇갈렸던 것처럼요. 또한 1분이면 오를 수 있는 언덕을 미로처럼 빙빙 돌려서 20분 이상의 긴 언덕길로 만들어서 운명의 고됨을 표현했습니다. 20분으로 길어진 언덕길 덕분에, 우리는 꽃밭을 만나고 파도처럼 늘어진 대나무 숲을 만나고 볕으로 가득 내리쬐는 소나무 숲을 보게 됩니다. 느리지만 돌아온 길에서 우리는 자연을 하나하나 자세히, 귀하게 보게 됩니다. 그렇게 소방관 인생의 기억을 공간으로 만들었죠. 이 외에도 아버지와 아들의 부성애를 담은 식당 서예정식, 아픈 아이들의 꿈을 담은 놀이터 숙소 도담터 등, 다양한 기억을 공간으로 풀어냈어요.
Q. 건축과 문학은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입니다. 두 분야를 함께 작업하면서 어떤 공통점을 느끼나요?
건축과 소설을 창작하는 과정은 ‘만든다’는 점에서 완벽히 같다고 느껴집니다. 건축은 흔히 전문적인 지식이나 자격증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저희 외할머니께서는 손수 집을 지으셨죠. 돌을 쌓고, 나무를 다듬고, 흙을 바르면서 자신의 공간을 만드셨어요. 저는 건축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예요.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죠.
Q. 《빛이 이끄는 곳으로》는 국내 최초의 건축 팩션(Fact와 Fiction의 합성어)으로 소개되었는데요. 사실적인 건축 이야기와 허구적 서사를 유기적으로 엮어내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파리의 어느 건축물에 담긴 이야기를 논문으로 쓰려고 했어요. 어느 정도 완성된 후, 이야기를 나눠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려 찾아갔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논문에 그들의 가족 이야기를 담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죠. 사적인 이야기가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어요. 설득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파리에는 관광객이 지나치게 몰려들어 현지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어요. 마치 파리 올림픽을 하면 집값과 물가가 치솟고, 모든 것이 불편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시민들은 이미 “올림픽은 집에서 보세요. 절대로 파리에 오지 마세요”라고 말할 정도로, 외부의 관심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만약 내 집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한복판에 있다면,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죠. 결국 논문 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소설 형식으로 풀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 조언을 받아들여 논문이 아닌 소설을 쓰기로 했죠.
Q. 논문을 소설로 전환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곧 소설 쓰기가 얼마나 가혹하고 어려운 과정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여정이었죠. 첫 번째 원고를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요청했는데,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원고를 읽는 내내 너무 형편없었어. 이건 소설이 아니야.” 저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조언을 해주었죠. “좋아하는 소설가의 책을 다섯 권 정독해 봐. 그러면 작가의 시선에서 글이 보일 것이고, 행간에 숨겨진 메시지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 조언은 완벽하게 적중했습니다. 기욤 뮈소의 페이지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글 구조, 옴베르토 에코가 던지는 이슈와 이를 수습하는 방식,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정교한 사물 묘사까지, 각 소설가가 가진 독창적인 글쓰기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 후 원고를 무려 여덟 번이나 다시 썼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수정 끝에 《빛이 이끄는 곳으로》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Q. 건축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2가지 작업을 균형 있게 유지하기 위해 어떤 루틴을 가지고 있나요?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공평한 것이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뿐이죠.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많은 분이 제가 시간을 아주 효율적으로 활용할 거라고 생각하시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게으름은 제 본성이죠. 아침에 일어나 짧은 시간 동안만 글을 쓰고, 이후에는 본업인 건축 작업을 진행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서 집필한 내용도 천천히 쌓여가죠. 아침에 글 쓰는 작은 습관 덕분에 건축과 글쓰기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Q. 문득, 백희성 대표님께 ‘빛이 이끄는 곳’은 어디일지 궁금해집니다.
저는 ‘기억의 건축’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때로는 왜곡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죠. 저는 앞으로도 사람들의 기억을 담는 건축, 도시가 간직한 기억을 표현하는 건축, 사물에 담긴 기억을 소환하는 건축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책도 기억을 주제로 쓸 예정이에요. 먼저 옷에 얽힌 기억을, 그다음에는 도자기에 담긴 기억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저에게 빛이 이끄는 곳은 매일 아침과 저녁, 기록으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행복, 불행, 기적, 감사함... 그 모든 감정과 이야기가 담긴 노트를 보며 내일 어디로 향해야 할지 깨닫게 됩니다.
상업 공간에 개성과 이야기를 불어넣는 디자인 작업을 이어오며, 공간이 지닌 감각적 깊이를 탐구해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주방이 단순한 기능을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되는 곳이길 바라며 주방 가구 브랜드 MMK를 설립했다. 동시에 앰비언트 음반 〈Cyberica LP〉를 선보이고, 조각 설치와 사운드 전시〈The Smallest Space〉를 여는 등, 디자인뿐만 아니라 예술적 활동도 함께 이어가고 있다.
Q. 공간 디자이너를 거쳐 브랜드 MMK 대표, 작곡가, 아티스트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나요?
“안녕하세요, 박기민입니다”라고 소개합니다(웃음). 자리를 함께하는 사람들과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저를 소개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편이에요. 공간 디자이너로, 브랜드 대표로, 혹은 음악과 예술 작업을 하는 창작자로 소개하곤 하죠. 하지만 최근에는 MMK에 가장 몰입하고 있어서 “MMK의 박기민 대표입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네요.
Q. 개성 있는 상업 공간을 디자인하며, 브랜드의 감성과 이야기를 공간에 담아내는 작업을 해왔죠. 그런 경험들이 MMK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상업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늘 고민했던 건 ‘어떻게 하면 브랜드의 정체성을 온전히 사용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였어요. 브랜드가 가진 감성과 이야기를 공간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방이라는 공간이 참 특별하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주방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공적인 공간이 될 수 있는 곳이에요. 가족이 모여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손님과 함께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죠. 주방은 단순히 요리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이 가능성에 매력을 느꼈고, 주방이라는 공간이 가진 힘을 더 깊이 탐구해 보고 싶었죠.
Q.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새로운 키친 문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요. 시간이 흐른 지금, MMK가 만들어온 키친 문화는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문화’라는 단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한자로 풀어보면 ‘글文이 된다化’는 뜻을 가지는데, 글이라는 건 곧 사고의 축적이자 사람들의 인식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 요소잖아요. MMK가 만들어가는 키친 문화도 단순히 공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주방을 대하는 태도와 경험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저는 주방이 단순히 요리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중심이 되는 곳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가족이 모이고, 대화가 오가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죠. 자연스럽게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 안에서 더 풍성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야말로 MMK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키친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대표님의 삶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는 주방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네요.
일주일에 일곱 번 정도 직접 요리를 해요. 주로 점심을 챙겨 먹는데, 오랜 시간을 들여 요리하기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도록 찌거나 간단하게 조리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제 주방은 ‘누드 타입 키친’ 디자인을 적용해서 만들었어요. 공간이 아주 넓지는 않지만, 가로로 길게 뻗은 누드 라인 디자인을 적용해, 시각적으로 더 확장된 느낌을 주도록 했죠. 여기에 거울을 활용해 개방감을 더욱 극대화했어요. 덕분에 공간이 훨씬 더 여유롭게 느껴지고, 주방에 서 있는 순간 자체가 편안하고 쾌적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Q. 디자인하면서 “청각적 감각이 시각적으로 무한한 영향력을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를 강하게 깨달았던 순간이 있었나요?
우리의 오감 중 청각과 시각은 서로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해요. 어떤 공간에 들어섰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각적인 인상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요소만으로 결정되지 않거든요. 저 역시 디자인 작업을 할 때는 몰입을 위해 주로 미니멀한 전자음악을 듣습니다. 또한 명상할 때는 앰비언트 음악을 들으면서 호흡과 정신을 음악의 흐름에 맞춰 조율하죠. 이러한 경험들이 공간과 소리의 연결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Q. 최근 진행한 전시〈The Smallest Space〉에서는 조각 설치와 사운드 작업을 결합했죠.
이번 전시의 주제는 ‘가장 작은 우주’였어요. 전시를 통해 개인의 미시적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어요. 앞으로도 아티스트로서 공간과 소리를 결합한 작업은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에요.
Q. 음반〈Cyberica LP〉를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는 무엇이었나요?
‘Cyberica’는 ‘Cyber’와 ‘Africa’의 결합어예요. 인류의 기원인 아프리카의 원초적인 리듬과 현대 디지털 신시사이저의 사운드를 융합한 작업인데요. 단순히 2개의 사운드를 섞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음악적 실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특정한 공간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들리길 기대하기보다는, 듣는 이가 자유롭게 해석하며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음악도 공간처럼 정해진 의미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 따라 무한히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Q. 디자인, 음악, 전시 활동. 이 3가지가 서로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 연결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디자인이 시각적인 리듬을 만들고, 음악이 청각적인 공간을 창조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시는 철학적 사고를 보다 깊이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죠. 앤디 워홀이 “좋은 비즈니스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라고 말했듯이, 저는 예술이 단순히 개인적인 창작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확장될 때 더 큰 가치를 갖는다고 믿어요.
Q. 대표님은 일과 행복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우리가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일이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성장할 수 있는 과정이 된다면 훨씬 더 행복한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어요. 제가 생각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은 크게 3가지예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 그리고 그 일이 의미를 지닌다고 느끼는 것. 이 3가지가 조화를 이루면, 일이 단순한 의무를 넘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이 3가지를 모두 충족한다고 느낍니다.
Q.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새로운 영역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건축을 통해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조각작품 같은 건축물을 남기고 싶어요. 단순히 기능적인 건축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존재하면서 사람들에게 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그런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습니다.
의과대학을 다니다가 프랑스 요리가 좋아 돌연 학업을 내려놓고 무작정 프랑스로 떠났다. 그곳에서 요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열정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쌓아온 미식의 경험을 책 《한입이어도 제대로 먹는 유럽 여행》, 《프랑스식 자취 요리: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담아냈다.
Q. 의사이자 요리사, 작가이기도 한데요.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나요?
평소 주변에 저를 소개할 때는 그냥 의사라고 합니다. 국어사전에서 ‘직업’을 찾아보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하니까요. 주 5.5일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매달 정해진 날짜에 봉급을 받는, 그리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역시 의사라는 직업입니다. 좀 더 친해지면 그제야 사실 요리를 좀 할 줄 알고, 글도 좀 쓴다고 말하긴 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구태여 드러내려 하지는 않아요. 가벼운 관계에서 질문이 많아지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거든요. 반면 해외여행 중에 한국인을 만나면 굳이 의사라고 밝히지 않고 그냥 요리사라고 둘러대기도 합니다. 뭐, 거짓말은 아니니까요(웃음).
Q. 의대에 진학하면 보통 정해진 커리어를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길에서 이탈해 요리를 배우러 프랑스로 떠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일반적인 선택은 아니었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특히 부모님의 반대가 무척 심했어요. 의대는 공부량이 엄청나게 많고, 시험과 공부가 끝없이 반복되다 보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하는 고민이 끊이지 않았어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집이나 카페에서 틈날 때마다 책을 읽었는데, 책 속의 세계는 열람실의 좁은 세계보다 훨씬 다채롭고 거대하더라고요. 어느 순간,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왔고, 어디든 좋으니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강렬한 갈망이 생겼죠. 결국, 그 갈망이 저를 프랑스로 향하게 했어요.
Q. 왜 프랑스였을까요? 수많은 요리 중에서도 프랑스 요리에 매료된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프랑스 요리가 세계 최고니까요”라고 말하면 너무 오만하게 들리겠죠? 20대 초반, 데이트를 위해 작정하고 예약한 레스토랑이 알고 보니 프렌치 레스토랑이었어요. 그곳에서 먹은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서 계속 프랑스 요리를 먹으러 다녔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게 되었어요. 만약 그때 제 머리를 띵하게 했던 요리가 이탈리아 요리였다면, 혹은 스페인 요리였다면 전혀 다른 결말에 이르렀겠죠. 인생은 우연이 결정한다니까요.
Q.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요리는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두 역할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혹시 의사라고 하면 심폐소생술을 하고 수술하는 드라마〈중증외상센터〉의 백강혁을, 요리사라고 하면 매 라운드마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의 셰프들만 떠올리는 건 아니겠죠?(웃음) 저도 대학병원 출신이지만 지금은 경증 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1차 의료를 하고 있고,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이 있지만 지금은 집에서 가벼운 집밥 요리를 합니다.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의사와 요리사의 역할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의사는 하나의 큰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존재라면, 요리사는 그 하루하루를 채워주는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Q. 두 직업을 통해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리사라는 직업을 통해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묻는다면, “하나하나의 사소한 동작이 모여, 그 끝엔 완성이 있다” 같은 조금 멋진 답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조금 달라요. “힘든 상황에서 유머를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니까요(웃음). 의료라는 행위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주변의 의료진과 함께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때로는 힘든 순간이 찾아오지만, 그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웃을 수 있다면 훨씬 더 버틸 만해지거든요. 퇴근할 때 ‘오늘도 이만큼이나 해냈네’라고 느낄 수 있는 것도 결국 그런 과정이 있기 때문이죠.
Q. 다채롭게 살아온 시간들이 결국 책으로 남게 되었는데요. 그런 경험을 기록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요?
스물아홉 살 때의 일이에요. 동기들은 대부분 어엿한 의사가 되었지만, 저는 바리스타로 일해보고, 호텔 매니저 생활도 해보고, 주말마다 와플을 하루에 1000개씩 구웠다가 빵도 좀 써느라 여전히 신분이 의대생이었거든요. 20대가 끝나가는데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다는 사실이 큰 압박으로 다가왔어요. 그동안 꾸준히 해온 게 뭘까 돌아보니,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는 걸 깨달았죠. 요즘이었으면 미식 인플루언서라도 되었겠지만, 그때는 그런 개념조차 없었어요. 그래서 20대가 끝나기 전에 이걸 흔적으로라도 남겨야 헛살지 않았다고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쓴 첫 번째 책이 《한입이어도 제대로 먹는 유럽여행》입니다. 그 책이 계기가 되어 이후 《프랑스식 자취 요리: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 《싫어하는 음식: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 같은 책들도 이어서 쓰게 되었죠.
Q. 책에서 “오늘 하고 싶은 일이 내일도 하고 싶으리란 보장이 없다. 어쩌면 오늘 하지 않은 일은 평생 하지 못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든 하면 흔적으로 남지만 하지 않으면 후회로 남는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어요. 오늘 하고 싶은 일을 실천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저는 직접 경험해 봐야만 깨닫는 편이라, 무엇이든 우선 부딪혀 봅니다. 매일 그날의 본능에 충실하며 하고 싶은 일을 실천해 보죠. 뭐든 직접 해보면 그 안에서 호불호가 생기고 미세한 취향이 생기더라고요. 인생을 즐기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기만 하면, 세상의 즐거움을 발견해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해요.
Q. 앞으로 한 번 더 방황을 한다면, 어떤 경험을 해보고 싶은가요?
방황은 충분히 할 만큼 한 것 같아요(웃음). 이제는 안정과 정착을 바라고 있어요. 곧 아이도 태어나는데, 더 이상의 방황은 곤란하죠. 이렇게 말하면서도 결국 성향이라는 건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지만요. 예전부터 꿈꿔왔지만 현실 앞에서 잠시 접어두었던 것들이 있어요. 카페, 와인 바, 레스토랑, 의원을 한곳에서 운영하는 공간을 만드는 꿈이었죠.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돈벌이는커녕 스트레스만 늘어날지도 모르지만, 끝내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꿈이 없으면 사는 게 너무 무료하지 않겠어요?
editor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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