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 빛이 머문 자리, 파리에서 만난 한국 공예
파리 10구 오트빌 거리에 자리한 아델 컬렉션 쇼룸에서는 아엘시즌과 한국 공예작가 26인이 함께한 전시〈결–빛이 머문 자리〉가 한창이다. 이곳에서 공예는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공간을 짓는 구조가 되고, 감각을 머무르게 하는 언어로 작동한다. 잠시 멈춰 선 순간, 공예의 결은 빛처럼 스며들고, 그 여운은 일상의 결 속에 잔잔히 이어진다.
9월 초, 파리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파리 10구 오트빌 거리에 자리한 아델컬렉션(Adèle Collection, @adele__collections) 쇼룸 앞에는 부드러운 가을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고, 그 빛을 따라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한국 공예의 결과 파리의 정취가 고요히 겹쳐져 번져 나갔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주최하고, 창작플랫폼 아엘시즌(AL_SEASON, @al_season)과 아델컬렉션이 함께한 이번 전시 〈결-빛이 머문 자리(là où la lumière reste)〉는 26명의 한국 공예 작가가 참여한 대규모 기획전이다. 도자, 섬유, 목공, 한지, 금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의 감각은 빛과 결합하여 하나의 서사를 완성했다.
이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작품들이 단순히 전시장에 놓인 오브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얇고 투명한 직물은 빛을 여과하는 막이 되고, 옻칠의 표면은 빛을 반사하고 투과시키며 공간에 깊이를 더했다. 유리와 금속은 경계를 형성하거나 시선을 이끄는 장치로 자리했고, 작은 오브제들은 벽과 파티션을 대신해 공간의 층위를 세밀하게 짜냈다. 이곳에서 만난 공예는 더 이상 눈으로만 바라보는 대상이 아닌, 공간을 짓는 언어로 제 역할을 해낸다.
전시 오프닝 당일, 시작은 차회(茶會) 퍼포먼스로 시작됐다. 따뜻한 차의 온기와 은은한 향, 그리고 공예적 오브제가 어우러지며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차분히 하나로 엮어냈다. 그날 저녁 열린 오프닝 파티에서는 한국과 프랑스의 관람객들이 함께 어울리며 공예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한국 공예의 섬세함과 우아함, 그리고 고유한 품격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빛이 머문 자리’라는 부제처럼, 이번 전시는 관람객에게 잠시 멈추어 머물고 싶은 순간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 여운은 전시장을 나선 뒤에도 오랫동안 삶의 결속에 은은하게 이어질 것이다.
INTERVIEW
김미연 아엘 시즌 대표, 전시 예술 감독
작가, 대표, 감독 등 다양한 직함을 갖고 계시죠. 이번 전시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으셨는지 소개 부탁드려요.
이번 전시에서 저는 예술감독으로서 전반적인 기획과 방향을 총괄했습니다. 공예가 단순히 쓰임의 차원을 넘어, 공간 속에서 어떻게 언어화될 수 있는지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전시 오프닝에서 차회 퍼포먼스를 기획한 이유와 품은 메시지가 궁금합니다.
차회 퍼포먼스는 단순히 ‘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전시의 시간성을 몸으로 체감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차의 온도와 향이 천천히 공간에 스며들면서 관람자의 동선과 시퀀스가 자연스럽게 조직되고, 오브제와 빛, 관객 사이에는 현상학적 접촉이 발생하길 바라면서요. 이는 전시가 제안하는 ‘결은 구조이고, 감각은 머무른다’라는 메시지를 체험적 장면으로 확장하는 장치이자, 감각적 층위를 경험으로 전환하는 실험이었습니다. 나아가 아엘시즌은 이번 전시가 관람객의 시각을 넘어 청각과 후각, 촉각까지 자극하여 오감으로 기억되고 긴 여운을 남기기를 기대합니다.
‘결’이라는 전시 제목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저에게 ‘결’은 단순한 표면의 무늬가 아니라, 구조에 더 가깝습니다. 나이테처럼 시간을 품고, 한지 섬유처럼 관계를 엮으며, 직물처럼 짜여 형태와 쓰임을 만들어냅니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결’을 유통, 생활, 공간의 문법 속에 다시 작동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빛이 머문 자리’라는 부제도 매우 인상적이에요. 공예와 빛의 관계를 어떻게 보시나요.
‘빛이 머문 자리’에서 빛은 재료의 미세한 결을 드러내는 매개입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할 때, 자연광이 확산되고 표면에서 반사와 투과, 산란되는 과정을 세심하게 설계하여 관객이 특정 지점에서 잠시 머무르는 순간을 의도적으로 설계했습니다. 그 짧은 정지의 시간에 감각이 응축되고 그 잔향이 전시를 넘어 일상의 기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공예를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감각으로 제시”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그 감각을 풀어내고자 했는지 설명 부탁드려요.
저는 공예를 전시장에서 단순히 ‘보이는 오브제’로 제시하기보다, 현재 진행형의 감각을 구현하는 공간적 요소로 다루고자 했습니다. 전통의 물성과 기법을 존중하면서도 전시장 안에서는 작품을 다시 구성해 공간을 짓는 부품처럼 작동하도록 맥락화했습니다. 예를 들어, 직물 작업은 얇고 반투명한 막이나 간격을 둔 패널처럼 빛을 여과하는 장치로 활용했고, 도자와 금속, 옻칠 작업은 투과성 있는 파티션이나 하중을 받지 않는 벽면처럼 공간의 층위를 형성하는 요소로 배치했습니다. 이처럼 공예가 ‘오브제’를 넘어, 공간의 언어를 구성하는 적극적인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접근은 아델컬렉션이 지향하는 자연 소재와 정인 정신의 맥락과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에 참여한 26명의 작가는 신진부터 장인, 스튜디오 기반 작가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추고 있는데요. 작가 선정 기준이 있었나요? 이들과의 협업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작가 선정 기준은 2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흙과 옻칠, 섬유, 유리, 금속 등 각 재료에 대한 이해력이 충분한지, 그리고 그것을 작품 속에서 설득력 있게 다루고 있는지였습니다. 둘째는 작품이 전시장 안에서 환경적, 구조적 요소로 확장될 수 있는 공간적 잠재력이 있는가였죠. 설치 과정에서는 모형과 현장 피팅을 반복하며 공간의 리듬을 세밀하게 조율했습니다. 특히 빛에 반응하는 표면들이 관람자의 시선을 유도하고 머무르는 지점을 만들어내던 순간이 가장 인상 깊게 기억에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공예는 과거의 유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늘의 생활 속에서 감각을 짓고, 관계를 매개하는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전시장서 각자의 시선과 시간, 그리고 동선이 만들어낸 당신만의 ‘빛이 머문 자리’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INTERVIEW
도미니카 로슬론, 아델 컬렉션 프로듀서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델컬렉션팀의 도미니카 로슬론(Dominika Roslon)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프로듀싱과 전반적인 진행을 담당했습니다.
차회 퍼포먼스가 전시의 오프닝으로 진행됐죠. 첫인상은 어땠나요? 현지 관객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저의 첫인상은 ‘호기심’이었습니다.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의외의 방식이자, 전시에 사색적이고 차분한 톤을 불어넣는 시작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운 몰입의 순간이었고, 파리 관객도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곧 그 우아함과 의례적 차 퍼포먼스에 호기심과 존중을 보였습니다. 전시에 들어가는 독특하고도 의미 있는 진입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엘시즌과 협업 전시를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아델컬렉션은 아엘시즌 창립자 김미연 대표와의 인연을 통해 이번 전시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녀의 독창적인 비전과 탁월한 장인정신을 알리고자 하는 열정이 저희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죠. 저희는 오래전부터 한국 공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프랑스 클라이언트들에게 소개할 기회가 찾아왔을 때, 문화와 디자인을 잇는 다리를 놓는 중요한 협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공예와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라고요.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요?
한국 공예와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모든 작품에서 느껴지는 세심한 디테일과 장인정신이었습니다. 작가들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인 표현 방식을 기꺼이 수용하고 있었고, 그 균형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도 굉장히 풍요롭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전시 중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오프닝 당일,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서 조용히 서서 경외심을 가지고 감상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입니다. 그 순간 공예가 문화와 사람을 잇는 힘을 가장 크고, 깊게 실감했습니다. 한국 공예는 자연과 전통, 그리고 장인정신의 대화예요. 재료와 섬세한 기술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editor송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