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인 흔적과 색채 속에서 따스한 호흡이 피어난다. 그 순간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머문다.

이사라와 무우 나나호시. 현실과 환상, 감정과 기억이 겹쳐진 두 작가의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섬세한 파동처럼 번져갔다.

현대백화점 천호점 아트앤에디션 갤러리&카페에서〈상상의 메아리〉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무우 나나호시@nanahoshimuu와 한국의 이사라@artist_saralee, 두 작가의 세계가 나란히 빛을 드러냈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자라났지만, 같은 해에 태어난 이들의 작품은 놀랍도록 닮은 결을 지녔다. 무우 나나호시 작가는 큰 눈을 가진 캐릭터 ‘링클Rinkle’을 통해 우주와 바다를 그려낸다. 깊은 색채와 층위로 몽환적인 세계를 펼쳐내며, 환상적인 이미지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를 담아내 관람객에게 위로를 건넨다. 이사라 작가는 자신이 구축한 유토피아적 공간 ‘원더랜드’로 사람들을 초대했다. 반짝이는 눈망울의 소녀와 럭키베어가 등장하는 장면은 순수와 희망의 감각을 불러일으켰고, 겹겹이 쌓고 긁어낸 흔적은 독특한 결을 남겨 작품에 생생한 깊이를 더했다. 서로 다른 언어로 그린 세계였지만, 두 작가의 그림은 이처럼 같은 온도를 품고 있었다. 희망과 위로, 따스한 색이 스며든 장면들은 전시장 안에서 겹쳐지며 하나의 울림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아트앤에디션 갤러리&카페라는 공간과 만나며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작품 감상과 구매가 가능하고, 더 나아가 커피를 곁들여 여유롭게 머물 수 있는 이곳은, 백화점 안에서 누구나 예술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었다. 아트앤에디션이 제안하는 ‘일상 속의 예술 소비’는 관람 경험을 한층 확장시켰다. 전시는 끝났지만, 늦여름의 공기를 환히 물들였던 두 작가의 세계는 여전히 작은 메아리처럼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다.

작가들의 평면 작업과 더불어 아기자기한 입체 작품도 전시장 곳곳을 채웠다.
작가들의 평면 작업과 더불어 아기자기한 입체 작품도 전시장 곳곳을 채웠다.
예술과 휴식이 중첩되는 순간, 갤러리는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는 풍경이 되었다.
예술과 휴식이 중첩되는 순간, 갤러리는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는 풍경이 되었다.

 

 

INTERVIEW
WITH 무우나나호시, 이사라작가

 

 

동화적이면서도 네오팝적인 작품으로 동심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사라 작가.
동화적이면서도 네오팝적인 작품으로 동심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사라 작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또 지금 작업을 이끄는 힘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무우 나나호시 어릴 때부터 돌이나 나무에 그림을 새기며 작가를 꿈꿨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광고 아트디렉터로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느낀 허무함과 인간의 희생을 통해 자연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다시 그림으로 돌아왔어요. 제 세계관의 중심은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라이프(Life), 라이트(Light), 라이크(Like), 링크(Link)’라는 4가지 테마를 바탕으로, 불교의 윤회사상처럼 인간, 시간, 자연이 서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작품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그리고 사랑을 더 소중히 여기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별과 우주, 색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무우 나나호시 어릴 때부터 별을 보면서 소원을 많이 빌었어요. 그래서 제 그림 속에 나오는 별자리는 제 바람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분들의 소원도 함께 품고 있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변함없이 빛나는 하늘을 보면서 큰 위안을 받았고, 그런 변치 않는 자연처럼 인간의 관계도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어요. 또 색을 고를 때는 제가 기분이 좋아지는 색을 주로 사용해요. 검정이나 빨강처럼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색은 일부러 잘 쓰지 않으려고 하고요. 같은 색이라도 조금씩 다르게 변주하면서 캔버스 안에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려 합니다. 그래서 특정한 기법보다는 색이 주는 감정과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작가님의 작품 세계는 ‘원더랜드’라는 환상적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요. 원더랜드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사라 ‘원더랜드’는 꿈과 사랑, 행복이 가득 넘치는 공간이에요. 원더랜드를 꿈꾸는 것이 제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제 마음속 바람과 비밀이 유쾌하게 펼쳐지는 공간이기도 하죠. 흔히 원더랜드라고 하면 즐겁고 마냥 행복한 공간을 떠올리지만, 제 세계관 속 원더랜드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어요. 열심히 일할 것, 나 자신을 아름답게 가꿀 것,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한 순간으로 만들 것 등, 모두가 제가 살아가는 삶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죠. 저는 행복을 얻기 위해선 의무와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더랜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이런 규칙들이 반드시 준비되어야 한다고 여겨요.

작품을 통해 일상에 묻혀 있던 감수성과 내면의 결을 조용히 드러내는 무우 나나호시 작가.

작품에서 빛나는 선과 패턴을 만들어내는 스크래치 기법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사라 원더랜드 세계관에서는 소녀의 눈을 통해 각자의 원더랜드로 이동하게 돼요. 일종의 블랙홀이죠. 이러한 반짝이는 소녀의 눈망울을 표현하기 위해 아주 날카롭고 섬세한 칼을 사용해 표현해요. 계속해서 반복되는 섬세하고 얇은 스크래치는 마치 예전 우리 조상들이 늦은 밤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달님에게 비는 행위와 비슷한 것 같아요. 원더랜드 작업을 하며, 저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저의 행위가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행복을 비는 행위에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를 통해 두 작가님의 작품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공명하거나 교차한다고 느꼈나요?
무우 나나호시 이사라 작가님의 색감과 따뜻한 세계관이 제 작업과 이어져 있다는 걸 곧바로 느꼈어요. 어제 대화를 나누며 우리들의 나이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집에 TV를 두지 않는 생활 방식처럼 작은 습관에서도 닮은 부분이 많다는 걸 발견했죠. 결국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 자체가 자연스레 겹쳐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사라 무우 작가님의 표현 방식은 저와 다르지만, 밝고 부드러운 색감을 통해 한눈에 행복감을 전하는 작품들을 보며 저 역시 비슷한 세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평면과 입체 작업을 동시에 이어가는 공통점도 흥미로웠고요. 같은 세대의 일본과 한국의 여성 작가로서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들이 이번 전시에서 교차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있었죠.


CREDIT INFO

editor김소연

photographer김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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