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스미는 권순관

16년 차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노리플라이의 멤버 같은 수식어를 잠시 지워냈다. 맑고 커다란 마음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음악가 권순관만이 남았다.


2000년대 후반 등장한 밴드 노리플라이는 현재 인디팝이라 불리는 장르 의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들이라 평가받는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청 춘의 설렘 그 자체를 표현해 낸 듯한 가사까지. 그들의 음악을 기억하지 못 하는 당대의 청춘은 없으리라. 노리플라이의 주옥같은 곡들을 작사·작곡 한 권순관은 2013년부터 싱어송라이터로서 그의 음악을 대중에게 들려주 는 중이다. 그의 정체성과 맞닿은 악기인 피아노가 그 중심에 있다. 섬세한 음색으로 가장 보통의 감정을 노래하는 그의 음악은 깊은 성찰이 담겨, 듣 는 이를 위로하고 또 웃게 한다. 몇 년간의 공백기를 뒤로하고 올해 벌써 2개 의 싱글을 발표한 그를 직접 만났다.


프레임이 강조되는 블랙 엣지에 다채로운 컬러 조합이 가능한 센츄리 모듈러 키친은 MMK.
프레임이 강조되는 블랙 엣지에 다채로운 컬러 조합이 가능한 센츄리 모듈러 키친은 MMK.

 

권순관의 대답

Q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순관님의 피아노 소리를 듣다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슬퍼서가 아니라 갑자기 울컥하더라고요.

좋은 거죠? (웃음) 감사합니다. 제가 피아노로 화려한 플레이를 하진 않는데, 여러 음을 조합해서 어떤 분위기를 만드는 걸 잘하는 편이에요. 제가 만든 분위기에 사람의 감정이 이끌리도록 하는 건 언제나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아요.

Q SNS를 통해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은 편이죠. 어떤 성격이에요?

MBTI로 말하자면 INFP예요. 주변에선 너무 즉흥적이고, 갑자기 어딘가에 꽂히면 아무것도 못 보는 성격이라고 하죠. 그래서 노리플라이의 리더인 욱재가 저를 많이 잡아줘요. 욱재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라, 저를 보면 카오스를 보는 것 같대요.

Q 최근 ‘곁에 있을게’라는 곡으로 돌아왔어요. 어떤 음악인지 소개해 주세요.

2년 전부터 노리플라이의 노래로 준비한 거예요. 당시 코로나19 시즌이기도 했고, 어떤 무대를 만들까 고민하다 위로의 마음을 담아서 ‘곁에 있겠다’는 감정에서 출발했어요. 기본적으로는 여름에 가볍게 들을 수 있는 노래였으면 했고요. 보컬로 참여한 예빛 씨가 녹음실에서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이 곡의 주인이 예빛이었구나’라는 걸 명확히 알았어요. 그만큼 잘 어울리는 목소리여서, 굉장히 행복한 작업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긴 곡이 나왔습니다.

Q 권순관은 ‘천재 작곡가’로도 잘 알려져 있죠. 곡이 항상 뚝딱 나오는 줄 알았어요.

항상 그러면 참 좋겠어요(웃음). 오래 걸리는 곡들이 있습니다. 저의 음악 성향이 원래 무거운 편이고, 노리플라이 3집도 굉장히 무거운 곡들로 구성했다고 생각해 그걸 덜어내려고 노력했는데요. ‘가볍고 싶다’는 마음이 외려 어렵더라고요. 자꾸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습관 때문이에요.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이런 시기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곁에 있을게’ 이후 조금쯤 가벼워지는 법을 익혔죠.

Q 듣는 입장에선 노리플라이도, 뮤지션 권순관의 음악도 그리 무겁게 와 닿진 않았는데요. 항상 곡에 의미를 담으려 하시는 편인가요?

노리 플라이 3집 , 그리고 저의 2집 때부터 곡에 삶의 철학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내가 알게 된 것들이 음악에 반영됐으면 해서 음 하나, 가사 한 줄에도 성찰을 담으려 했어요.

Q 대개 그 시기의 곡들이 지닌 키워드가 사랑이었죠?

맞아요.

Q 혹시 지금 사랑을 하는 중이신가요?

연애 중이냐고요? 꼭 연애가 사랑은 아닌 것 같아요. 한때는 부모와 형 제, 연인을 향한 마음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언젠가부터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사랑을 완성하기 위함’이라고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는 단지 세상의 한 조각이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의미에서요.

Q 조금 더 큰 의미의 사랑을 말씀하시네요. 아빠가 된 이후의 감상인가요?

제 주변을 더 돌아보니 아이들이 생각났어요.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 고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거든요. 내가 뭘 하지 않아도요. 그것만으로도 제 삶에 있었던 많은 결핍들이 채워지는 경험을 하게 돼요. 넓은 의미에서 저는 부모님, 연인, 친구에게 노력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해 왔는 데요. 그 자체로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참 특별한 일인 것 같 아요. 나 자신이 그냥 이대로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고.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더 큰 사랑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들었어요.

각기 다른 치수의 모듈과 조합이 가능한 벽선반 MFW 503과 703, 원의 4분의 1 형상을 기분으로 독특한 균형감을 연출한 쿼터 체어는 모두 MMK
각기 다른 치수의 모듈과 조합이 가능한 벽선반 MFW 503과 703, 원의 4분의 1 형상을 기분으로 독특한 균형감을 연출한 쿼터 체어는 모두 MMK

 

Q 올해 벌써 2개의 곡을 발표했죠. ‘랑데뷰’와 ‘곁에 있을게’에서 모두 물의 이미지가 짙어요. 작업을 하는 동안 어떤 경험을 했나요?

최근 한 달 정도 이스라엘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곳에서 만난 텔아비브 해변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죠. 드넓은 지중해 너머로 지는 석양을 1시간 동안 바라보고, 또 어떤 날엔 그 해변가에서 러닝을 하며 윤슬을 봤어요. 그 끝없는 아름다움을 보니 굉장한 해방감이 들더라고요. 그 이미지를 상상하며 작업했더니 물의 이미지가 짙어졌어요.

Q 순관 씨가 작업을 하는 루틴이 있나요?

매일 곡을 스케치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잘 안 되는 날도 있지만, 일단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아무음이 나 눌러봐요. 연주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무드가 있고, 그러다 보면 떠오르는 멜로디가 있어요. 마치 글을 쓸 때처럼 괜찮은 게 나오면 조금씩 진행시켜 보는 거죠. 그러다 완전히 잊고 며칠을 지내요. 시간이 지난 후에 들어도 곡이 괜찮으면 다시 작업을 시작합니다. 한참 묵혔다가 다시 돌아 보게 되는 곡들도 있어요. 그래서 전 항상 작업을 해야 하는 시점에 아이폰 에 녹음된 파일을 먼저 찾아보곤 해요.

Q 노리플라이의 멤버와 싱어송라이터 권순관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노리플라이에서 저는 조금 더 대중적인 음악을 하려고 해요. 청춘이 지닌 푸릇한 에너지를 담으려고 노력하죠. 3집을 발표할 때엔 좀 더 깊어져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하고 ‘Beautiful’이나 ‘여정’ 같은 노래를 만들 었지만요. 지금은 다시 우리가 원래 잘하던 걸 하고 싶어요. 꿈을 향해 도전하는 거요. 시간이 흐르고 우리도 나이를 먹었지만 마음은 여전하거든요. 싱어송라이터 권순관으로서는 저의 클래식한 면모를 많이 담아내려고 해요. 특히 피아노를 주로 사용하죠. 피아노 한 대로 보이싱(여러 음을 조합해 사운드를 만드는 방식)을 해 다양한 장면을 떠올리게 되는 음악을 선보이려 고 해요.

Q 여전히 꿈을 꾸고 싶다는 16년 차 뮤지션이라니. 시간이 많이 흘렀고, 노리플라이도 40대가 되었습니다. 이전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전엔 완벽 주의 성향이 짙었어요.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많았고요. 그래서 좋은 피드백이 돌아오면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우쭐하기도 했어요. 다 치기 어린 생각이었죠. 이젠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할 일을 꾸준히 하고 있으면 여러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고, 그건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절대 아니라고요. 음악을 만드는 것도 그래요. 제가 만드는 게 아니라… 그냥 오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저는 매일 내게 올 음악을 위한 그릇을 준비할 뿐인 거죠.

 

Q 다른 마음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기세가 한풀 꺾인 건 코로나19를 겪으면서예요. 2020년 앨범을 내자마자 코로나19가 창궐했어요. 공연은 취소되고, 방송은 관객 없이 해야 했죠.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그렇게 큰 역병이 도는 중에 제 앨범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흥행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조차도 제 앨범을 다시 듣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잘못 만들었다는 자책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걸 견디니 많은 걸 내려놓게 됐어요. 그제야 당시 내 노래로 위로를 받았던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 더라고요. 누군가에겐 마음 깊은 곳까지 전달됐던 음악인 걸 깨닫고 외려 그 시간이 감사해졌어요. 모든 일엔 적당한 시기가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Q 흥행 이야기를 하니 궁금해집니다. 이미 인디 신의 전설 같은 뮤지션이지 만 K-팝 스타와 작업해서 글로벌 히트를 치는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한가요?

그것 또한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웃음). 사실 성시경 선배와 ‘영원’이란 곡을 작업하고 나서 약간 기대를 했었는데요. 차트에 한참 동안 랭크되는 그런 곡이 되진 못했어요. 그때 또 배운 것 같아요.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였던 성시경 선배와의 작업이 성사됐으니 그걸로 됐고, 뭘 더 바라진 말자고요. 무엇보다 갑자기 제가 스타일을 바꿔서 글로벌 히트곡을 만들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전 그냥 제가 가는 길을 꾸준히 가는 거죠. 아, 하기 싫다는 건 아니에요. 하면 좋죠(웃음).

Q 마침내 팬데믹도 끝났어요. 얼마 전 3년 만에 (‘뷰민라’) 공연에도 섰다고요. 관객과 다시 만나니 어땠나요?

아, 너무 떨리더 라고요. 고향에 온 것 같기도 하고요. 무대에 오르면 항상 느끼는 게 있어 요. 제가 무대에 오르고 음을 하나 내기 시작하면 갑자기 사방이 고요해지는 순간이 있는데요. 그때부터 첫 소절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요. 그런 다음 아주 천천히 찾아오는 안도감을 느끼며 노래를 이어 나가죠. 그렇게 몇 곡을 부르고 나면 정말 관객과 연결된 느낌이 들어요. 무대에서도 관객의 표정이 잘 보이거든요. 어떤 날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지죠. 그래서 어떤 공연은 2시간이 넘게 이어져도 끝나고 하나도 안 피곤해요. ‘뷰민라’도 그랬죠.

Q 지금까지 수많은 곡과 가사를 써왔어요.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곡 하나와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가사를 알려주세요.

아까 글로벌 히트곡 이야기를 하셨으니까(웃음) 최근 Z세대 해외 팬들이 즐겨 듣는 ‘투나잇(Tonight)’ 을 추천할게요. 가사는 저의 솔로 1집 앨범에 수록한 ‘그렇게 웃어줘’에 쓴 “꿈을 얘기하던 네게서 끝없는 바다를 봤어”라는 부분이요. 이별을 하는 입장에서 상대가 넌지시 한 꿈 이야기에 끝없는 바다를 봤던 제 경험이기도 하고, 그 구절이 항상 기억에 남아요.

Q 그 또한 우주적이고 거대한 사랑인 거죠?

아니요? 이건 지나간 사랑이죠.

Q 어느덧 가을입니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해 주세요.

앨범을 통째로 추천해도 되나요? 미국의 싱어송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의 곡 ‘Death with Dignity’가 수록된 2015년 발매 앨범 을 추천해요. 저는 가을이면 막연히 기타 소리가 듣고 싶어져요. 이 앨범은 빈티지한 보컬 사운드와 기타가 어우러져 마치 옛 노래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데요. 마치 가을 그 자체를 소리로 표현한 것처럼 느껴져요


CREDIT INFO

freelance editor박민정

photographer김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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