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집과 낭만 41

늙은 고양이는 더 이상 캣 타워에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키게 될 캣 타워에 대하여.

 

고양이가 더는 캣 타워에 올라가지 않는다. 나이를 먹었다. 열여덟 살이다. 인간 나이로 환산하면 여든여덟 살이다.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건 서울에 갓 취직해서 올라온 때였다. 아니다. 나는 고양이를 키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부모님은 개를 키웠다. 요크셔테리어였다. 1990년대였다. 그 시절은 요크셔테리어가 그렇게 인기가 좋았다. 대체 왜 좋았는지 모를 일이다. 요크셔테리어라는 개는 개라고 부르기 어색할 정도로 작다. 작은 주제에 겁은 또 없다. 거만하기 짝이 없다. 애교도 없다. 신경질은 일상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꼭 내 자신을 묘사하는 것 같아 조금 민망해졌다. 나도 작다. 겁이 없다. 애교도 별로 없다. 다음 생에는 절대 개로 태어나서는 안 된다. 분명히 나는 요크셔테리어 따위로 다시 태어나고야 말 테니까 말이다.
하여간 그놈의 요크셔테리어는 집단 동물 특성상 가족을 서열로 나눴다. 아버지 외에는 누구 말도 듣질 않았다. 어머니는 분했다. 백화점 펫 숍 진열장 안에서 쥐새끼처럼 떨면서 누워 있던 놈을 데리고 온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놈의 구원자였다. 소용없었다. 요크셔테리어는 머리가 아주 좋은 개는 아니다. 지난 세월의 처지 따위 기억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혹은, 못 하는 척했을 수도 있다. 그놈 밥을 주고 똥을 치우고 병원에 데려가는 일은 모두 어머니 몫이었다. 나는 놈이 오자마자 군대에 갔던 터라 우리 사이는 조금 어색했다. 그래도 매일 산책은 내가 시켰다. 산책이라고 할 것도 없다. 목줄을 하면 아예 움직이지도 않고 저항했다. 한 손으로 들고 아파트 단지 내를 걸었다. 내가 걸었다. 놈은 의기양양하게 세상을 내려다보며 산책을 즐겼다. 자기 덩치보다 스무 배는 큰 개가 다가와도 죽일 듯이 짖었다. 겁도 없고 버릇도 없고 대체 이런 짐승을 왜 키우기 시작한 걸까.
아니다. 사실 요크셔테리어는 우리 집의 구원자였다. 마도로스 출신 경상도 아버지는 말이 없는 남자였다. 그 아들인 나도 말이 없었다. 그 아들의 동생도 경상도 남자라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말 없는 경상도 남자 셋을 데리고 사느라 답답해 죽을 판이었을 것이다. 개를 키우기 시작하자 모든 게 달라졌다. 가족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주제는 항상 개였다. 아버지가 귀가를 해도 우리 집안 사람들은 무뚝뚝하게 “오셨어요” 한마디밖에 하지 않았다. 개는 아버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이미 존재를 눈치채고 문 앞으로 달려가 모양만 남은 하찮은 꼬리를 떨어질 것처럼 흔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한 손으로 들어 올리는 순간, 그놈은 그날 뭔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을 한 다른 가족 멤버를 향해 맹렬하게 짖기 시작했다. 동생이 말했다. “저 새끼 저거 전생에 아빠 첩이었을 거야.” 어머니도 수긍했다. “첩이 아니고는 저럴 리가 없지.” 우리 가족은 그놈의 요크셔테리어를 사랑했다. 참, 이름은 뽀삐였다. 그 시절 한국 요크셔테리어의 1/3은 다 뽀삐라고 불렸을 것이다.
개는 열 살을 채우고 죽었다. 작은 개는 그래도 오래 산다던데, 뽀삐는 오래 살지 못했다. 작아도 너무 작았다. 옆집 요크셔테리어 덩치의 절반밖에 되질 않았다. 그렇게까지 작아 버리면 오래 살기는 힘들다. 나는 뽀삐가 죽은 날 아파트 화단 구석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뽀삐는 나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는 뽀삐를 그렇게까지 좋아했던 모양이다. 동물은 키워서는 안 된다. 동물은 사람만큼 오래 살지 못한다. 혹은 지나치게 오래 산다. 나는 TV에서 큰 땅거북을 키우는 사람들이 등장할 때마다 걱정에 잠을 이루질 못한다. 반려용 작은 거북은 20년 정도를 산다. 땅거북은 100년을 산다. 사람은 대체로 100년을 살지 못한다. 그렇다면 반려인이 죽은 뒤 거북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렇다. 나는 쓸데없는 남 걱정이 심한 타입의 인간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반려동물은 사람만큼 오래 살지 못한다. 길어 봐야 20년이다. 덩치가 큰 개는 10년 남짓이다. 고양이는 개보다 아주 약간 오래 산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15년에서 20년이다. 그런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언젠가 닥치고야 말 이별을 껴안고 산다는 의미다. 인간은 그런 고통스러운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그런 고통스러운 짓을 하고야 마는 존재다. 뽀삐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홍대 뒷골목에서 고양이와 마주쳤다. 두 손바닥만 한 새끼 고양이가 어디선가 튀어나오더니 길을 막았다. 온몸을 내 다리에 비비적거렸다. 나는 저항했다. 아니다. 저항하기에는 지나치게 귀여웠다. 나는 귀여운 모든 것에 약한 타입의 인간이다. 길바닥에 주저앉으니 고양이가 무릎 위로 올라왔다. 나는 고양이에 대한 상당한 편견이 있던 인간이었다. 고양이는 개와 달라서 사람한테 정을 안 준다고 했다. 고양이는 독립적이어서 애교 따위는 부리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에는 길고양이라는 말도 없었다. 도둑고양이였다. 그러니 나는 고양이를 키운다는 생각 따위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놈의 고양이가 나를 무너뜨렸다. 이놈의 고양이를 들고 주변 옷 가게로 갔다. “혹시 이 고양이 키우는 분 계신가요?” 모든 옷 가게 주인이 말했다. “안 그래도 저희 모두 그 고양이 밥도 주고 물도 주고 하는데 키울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었어요. 데려가 주시면 너무 좋죠.” 옷 가게마다 고양이 밥그릇과 방석이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는 죽었을 것이다. 혼자 살아남으려면 뻔뻔해져야 한다. 놈은 몇 달 전 갑자기 동네에 나타나 뻔뻔하게 이 가게 저 가게 가리지 않고 문을 박차고 들어가 우렁차게 밥을 내놓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뻔뻔하기 짝이 없던 요크셔테리어 뽀삐가 떠올랐다. 뻔뻔한 놈들은 강해서 뻔뻔한 것이 아니다. 약해서 뻔뻔한 것이다. 뻔뻔해야 살아남으니까 뻔뻔한 것이다. 도리 없었다. 나는 이 뻔뻔한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갔다. 뻔뻔한 고양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 살고 있었다는 듯이 소파에 올라가 털을 고르기 시작했다. 내 인생은 망했다. 고양이는 너무 빨리 죽을 것이다. 너무 빨리 죽어 나를 또 울게 만들 것이다. 나는 스스로 인생 최고의 고통을 집 안에 들인 것이었다.
이놈의 고양이는 죽지도 않는다. 열여덟 살이라니. 이놈의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고양이를 키우는 많은 친구가 생겼다. 그들 고양이는 이미 다 죽었다. 열다섯 살이 고양이의 평균수명이라고 했다. 다들 열다섯 살 정도에 죽었다. 내 고양이는 죽지 않았다. 죽을 생각도 없다. 심지어 동안이다. 고양이가 무슨 동안이냐고? 아니다. 어떤 고양이는 확실한 동안이다. 심지어 건강하다. 사람 나이로 여든여덟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 그러자 나는 감각이 없어졌다. 내 고양이의 나이를 감지하는 감각이 없어졌다. 내 고양이는 그냥 나의 아이였다. 영원히 늙지 않는 아이였다. 나는 내 고양이가 내가 늙어 눈을 감는 날 함께 눈을 감을 것처럼 살아왔다. 그렇다. 나는 나를 속여왔다. 철저하게 속여왔다. 내 고양이는 언젠가 죽을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죽을 것이다. 스무 살을 넘는 고양이는 잘 없다. 스물다섯을 넘는 고양이는 드물다. 서른 살을 넘는 고양이는 기네스북에 오른다. 나는 내 고양이가 기네스북에 오르기를 바란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는 올해 초부터 캣 타워에 오르지 않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캣 타워다.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스튜디오 얼라이브’의 캣 타워는 완벽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캣 타워라는 존재는 오랫동안 고통이었다. 미학적으로 눈뜨고 볼 수 있는 캣 타워를 만드는 회사가 없었던 탓이다. 오랫동안 캣 타워는 고양이를 위해서는 구입하고 싶지만 인테리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필수적 흉물의 위치를 지켜왔다. 이젠 다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늘면서 캣 타워도 진화했다. 이 캣 타워를 창문 앞에 설치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타워 위에서 햇볕을 쬐는 고양이를 지켜보는 것은 내 삶의 가장 거대한 낙 중 하나였다. 그런 고양이가 더는 캣 타워에 오르지 않는다. 늙어서다. 관절이 예전 같지 않아서다. 침대에서 뛰어 내려갈 때도 고양이는 어느 날부터 택시에서 내리는 노인 같은 소리를 냈다. 나는 침대 옆에도 높은 방석을 하나 배치했다. 거길 딛고 내려가면 관절이 좀 덜 아플 테니까 말이다. 이제 내 고양이는 높은 곳을 올라가지도, 높은 곳에서 내려가지도 않는 고양이가 됐다. 고양이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캣 타워를 팔지 않을 생각이다. 고양이는 똑똑하다. 캣 타워가 사라지는 순간, 자신의 노화를 내가 눈치챘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마음에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러니 캣 타워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고양이가 떠나더라도 나는 캣 타워를 팔지 못할 것이다. 고양이는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 지키지 못할 소리다.

김도훈 @closer21
오랫동안〈씨네21〉에서 영화 기자로 일했고, 〈GEEK〉의 패션 디렉터와 〈허핑턴포스트〉 편집장을 거쳐 《이제 우리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라는 책을 썼다. 평생(?)에 걸쳐 수집한 물건들과 아름다운 물건들이 공존하는 그의 아파트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김도훈 나라다.

 


CREDIT INFO

editor심효진

words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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