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기억이 피어나는 정원

오일파스텔 특유의 따뜻하고 동화적인 분위기, 그리고 순수함이 담긴 정재인 작가의 특별한 에디션을 만났다. 작가 정재인과 아트 플랫폼 ‘아트앤에디션’이 협업해 선보이는 이번 프로젝트의 ‘The Timeless Garden’은 감정과 기억이 피어나는 정원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오일파스텔 특유의 따뜻하고 동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전시 공간 속 정재인 작가.
오일파스텔 특유의 따뜻하고 동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전시 공간 속 정재인 작가.
가로와 세로가 6.5×4.5cm 사이즈의 작고 사랑스러운 ‘GARDEN’.
가로와 세로가 6.5×4.5cm 사이즈의 작고 사랑스러운 ‘GARDEN’.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인 정재인 작가는 오일파스텔, 아크릴, 오브제, 거울, 유리 등 다양한 재료로 자연과 일상, 그리고 감정의 결을 동화적인 시선으로 풀어낸다. 그녀는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믿음 아래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순간과 사물 속에서 따뜻한 위로를 찾아내고 공유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 〈The Timeless Garden〉은 작가의 내면과 기억, 감정의 잔상을 ‘정원’이라는 형태로 형상화한 전시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이 오가는 감정의 시공간 속에서, 작가는 우리가 잊고 있던 감정 하나하나를 꽃처럼 피워낸다. 오일파스텔 특유의 질감과 선명하고 포근한 색감, 무심한 듯 다정한 터치, 작가의 작품에 자주 보이는 말을 탄 기사와 공주, 고양이, 토끼, 새, 꽃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순수하고 동화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어 마음 깊은 곳에 위로와 따스함이 자리한다. 특히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국내외 현대미술 작가들의 판화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아트 플랫폼 아트앤에디션과의 협업 덕분이다. 정재인 작가의 대표 작품을 2가지 이상의 재료 또는 기법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판화 기법으로 제작한 5종의 한정판 작품은, 원화 못지않은 소장 가치를 지닌다. 작가를 만나 그녀의 작품 속에 담긴 기억과 감정, 그리고 위로의 언어에 대해 물었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시공간 속 작가 특유의 사랑스러운 색감과 꽃이 가득 그려진 ‘DINING IN AN FIELD OF BLOSSOMS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시공간 속 작가 특유의 사랑스러운 색감과 꽃이 가득 그려진 ‘DINING IN AN FIELD OF BLOSSOMS
전시 벽면에는 5개의 에디션 중 하나이자 이번 전시 중 가장 반응이 뜨거운 꽃이 가득한 원형 거울이 벽에 걸려 있다.
전시 벽면에는 5개의 에디션 중 하나이자 이번 전시 중 가장 반응이 뜨거운 꽃이 가득한 원형 거울이 벽에 걸려 있다.

〈The Timeless Garden〉 전시에서 ‘정원’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원’은 저의 현재 감정은 물론,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상상까지 모두 담겨 있는 공간이에요. 저는 제 내면의 감정을 하나의 ‘정원’이라는 틀 안에 담아 그림으로 표현하곤 하는데요. 제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배경과 주인공이 같은 시공간에 있지 않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말을 탄 기사’나 ‘LAKE GARDEN’ 같은 작품을 보면, 그림 속 정원은 현실에 존재할 법한 공간처럼 보이지만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공주가 배를 타고 노를 젓거나, 중세 유럽풍 모자를 쓴 기사 등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시공간이 등장하죠. 제 작업관과 비슷한 영화로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를 좋아하는데요. 주인공이 과거로 넘어가서 예전 자신이 만나고 싶었던 작가를 만나잖아요. 제 그림 속 정원도 현실과 환상이 오가는 시공간이라는 점에서 공감이 되더라고요. 잊히지 않은 감정이나 존재, 행복을 꿈꾸던 상상의 공간을 정원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전시의 주제를 ‘감정과 기억이 피어나는 정원’이라고 정하게 되었고요.

작가님의 작품에는 유독 꽃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에게 꽃은 인생과 가장 닮은 존재예요. 씨앗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지고, 결국 사라지는 과정이 인간의 삶과 많이 닮았다고 느끼거든요. 꽃마다 색도, 모양도 다르고, 그 안에 담긴 의미도 제각각이죠.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꽃을 떠올리는 것처럼, 꽃은 기쁨과 위로, 축하와 격려 등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작품에 가장 많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고요.

그중에서도 특히 애정하는 꽃이 있다면요?
단연 장미예요. 장미는 강렬하고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여려 보이지만 강단 있는 모습이 매력적이거든요. 어쩌면 제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거울 속 제 얼굴을 보면서 종종 장미처럼 강렬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거든요. 또 장미는 사랑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 작품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꽃이에요. 그다음으로는 블루 컬러의 화려한 꽃봉오리가 매력적인 델피니움, 그리고 노란 미모사도 자주 그리는 편이에요.

이번 에디션 중 하나인 ‘DELPHINIUM’.
이번 에디션 중 하나인 ‘DELPHINIUM’.
 아름다운 색감의 꽃이 그려진 화병
 아름다운 색감의 꽃이 그려진 화병

 

작가님의 작품은 오일파스텔 특유의 질감과 사랑스러운 색감도 인상적이죠.
맞아요. 특별히 어떤 소재를 고집하진 않지만 제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과 기억들은 완벽한 선이나 형태보다는 따뜻한 질감과 순수하면서도 풍부한 색감으로 전하고 싶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오일파스텔을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는 거 같고요.

작품에 영감을 주는 장소가 있다면요?
작업실이 성수동에 있어서 근처 숲을 자주 찾아가요. 또 제가 사는 집은 아파트지만 작은 정원이 있어서, 초록한 식물들과 꽃, 나비를 보며 일상 속에서 영감을 많이 받죠. 가장 최근에는 5월 초에 다녀온 등산길에서 큰 영감을 받았어요. 초록 들판에 막 피어 오른 꽃들이 정말 아름다웠거든요. 그 풍경을 본 순간, 그림으로 바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감을 받는 아티스트가 있다면요?
데이비드 호크니요. 지금 시대에 가장 다양한 재료로 끊임없이 실험하고 시도하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80이 넘은 나이에 아이패드로 드로잉을 하는 모습, 너무 멋있잖아요. 이처럼 늘 새로운 방식을 계속 탐구하고 탐색하는 모습은 저에게 정말 큰 자극이 되거든요.

이번 아트앤에디션 협업에 대한 반응도 굉장히 좋다고 들었어요.
아트앤에디션과의 판화 협업은 관람객들과 보다 섬세하고 깊은 감정의 교류가 가능했던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에디션은 거울 2종과 판화 3종인데요. 제 그림의 오일파스텔 질감과 색감을 정말 그대로 재현했어요. 알고 보니 바른손카드의 50년 인쇄 노하우와 특허 기술 덕분이더라고요. 예전에도 거울에 직접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벗겨지는 게 아쉬웠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완성도를 한껏 높인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또 일상 속에서 그림을 향유할 수 있는 오브제라는 점에서도 의미 있고요.

앞으로의 작품 계획이 궁금해요.
좀 더 다양한 크기의 작품에 도전하고 싶어요. ‘꽃을 든 소녀’나 ‘GARDEN’ 같은 작품처럼 가로세로 10cm 이내의 작고 아담한 그림은 물론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대형 작품도 그려보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제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그 안에는 공주, 말을 탄 기사, 하피스트, 토끼, 새들이 꽃과 함께 춤추는 풍경이 펼쳐지겠죠? 얼마 전 등산길에 올랐다가 영감을 받은 초록한 들판 한가운데 피어난 한 송이 꽃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웃음).


CREDIT INFO

editor송정은

photographer김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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