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FARMERS
이 모진 세상에서 쉬어갈 곁을 내주는 다정한 존재가 있다는 것.
밴드 브로콜리너마저라는 한 그루의 위안.
식물은 존재 자체로 큰 위안을 준다. 만약 식물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그런 점에서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은 유독 나무와 많이 닮았다. 데뷔 때 받은 스포트라이트와는 별개로 20년 가까이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행보는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소나무의 우직함을 연상케 한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이들을 포용할 그늘을 갖게 되는 나무처럼, 더 다양한 연령대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음악의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청춘을 노래한 초창기 앨범에 이어, 3집 앨범 수록곡 ‘서른’에서는 인생의 정점이라 말하는 시기에 느낀 혼란스러움을, 1년 뒤 발표한 싱글 ‘너를 업고’에서는 부모의 마음마저 담아냈다. 멤버 대부분이 40대에 접어든 시기에 만든 4집 앨범에서는 어느새 ‘닳아가는 삶’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이런 공통분모 외에도 듣는 이들을 위한 공간을 음악 안에 안배한다고 말하는 프론트맨 덕원의 말에서 사람들에게 쉬어갈 자리를 내어주는 고목의 너른 품이 느껴졌다. 치열한 세상에서 갈 곳 잃은 사람들에게 숨 쉴 구멍이 되어주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 덕원, 잔디, 류지, 동혁 네 사람은 세상을 뒤바꿀 강렬한 성취보다는 매일 먹는 밥 한 끼의 귀중함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일상을 잘 돌보아야 한다는, 작지만 큰 진리를 삶에서 실천하려 애쓴다.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잘 자며 준비했다는 4집 앨범이 더더욱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5년 만의 정규앨범 발매를 앞둔, 내년이면 20년 차에 접어드는 장수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그들을 닮은 무던하고 다정한 식물로 채워진 공간 ‘슬로우파마씨’에서 보낸 따뜻한 시간들.
Q. ‘2024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후기부터 여쭤볼게요. 특히 동혁님은 멤버로 합류한 이후에 처음 오른 무대라 유독 긴장이 됐을 것 같습니다.
동혁공연 전에 긴장하는 편은 아닌데, 그날만큼은 아무래도 다른 무대들에 비해 훨씬 부담됐던 게 사실이에요. 페스티벌이 끝난 후 이틀 내내 몸살과 배탈로 앓아누웠거든요.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긴장한 줄도 모르고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로 에너지를 불태우고 왔습니다.
잔디 관객석에 잠깐 다녀왔는데 10분만 서 있었는데도 열사병이 온 것처럼 어지럽더라고요. 그래서 관객분들의 건강이 좀 염려됐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서 보니 잘 즐기고 있는 듯 보여 안심하고 공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덕원 ‘이렇게 더워서 괜찮을까?’라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 대한 걱정도 하게 됐죠(웃음).
Q. 새롭게 영입한 네 번째 멤버, 동혁님을 멤버들이 소개해 주세요.
덕원 살림 감각이 뛰어난 멤버입니다. 집을 미니멀하고 예쁘게 꾸며놨어요. 정리 정돈도 수준급이고요. 나머지 셋과 성향도 꽤 달라요. 저와 잔디, 류지가 일명 ‘대문자 P즉흥형’인 데 반해 동혁이는 MBTI 끝자리가 J계획형죠.
류지 꽈배기를 하나 사러 가도 예약을 하고 갈 정도로 계획적이에요. 셋은 극단의 즉흥형이라, 때론 어떤 상황이 해결이 안 되고 혼돈에 빠질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걸 정리해 줄 때가 많아요.
잔디 팀 내에서 학위를 소지한 유일한 음악 전공자입니다(웃음). 기타나 베이스 등 미처 몰랐던 부분을 색다른 접근법으로 조언해 줄 수 있는 멤버라 막내임에도 여러모로 많이 의지하고 있습니다.
Q. 5년 만의 정규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어요. 4집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았나요?
덕원 ‘닳아가는 과정’입니다. 이 주제가 떠오른 건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22년이었어요. 매끄럽게 잘 굴러가는 바퀴도 언젠가는 표면이 마모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것처럼 삶을 영위하다 보면 닳아가는 과정 역시 필연적으로 따라오죠. 그렇다고 하여 완전무결한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거든요. 그런 것들이 이번 앨범 전반을 지배하는 이미지입니다. 닳아가는 감각과, 하지만 그럼에도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예요.
Q. 지난 앨범과 새 앨범 간에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요?
덕원 음악의 형식적인 부분보다는 마음가짐의 차이에 관해 설명드리고 싶은데요. 음악 비전공자로 밴드를 우연히 시작한 터라, 3집까지는가진 능력을 상회해서 소화해야만 했기에 늘 여유가 없었어요. 경험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능력치 이상을 보여주려다 보니깐요. 하지만 4집은 일상을 잘 영위하면서 가진 에너지의 80%만 사용하고 작업했다는 점에서 저에게도, 팀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지닌 앨범입니다.
잔디 또 하나 특이한 점이라면, 보통은 편곡 과정에서 녹음을 다 마치고 나서 라이브를 하게 되거든요. 이번에는 2년간 오른 여러 무대에서 먼저 곡을 선보인 다음에 앨범에 담을 곡을 녹음하는 수순으로 진행했어요. 2022년도에 처음 공개한 ‘다정한 말’라는 곡부터요. 그 덕에 음원을 들어보셔도 라이브스러운 느낌이 담겨 있을 거예요.
Q. 4집 수록곡 중 유독 유의 깊게 들어봐 줬으면 하는 가사가 있다면요?
덕원 ‘영원한 사랑’의 시작 부분에 흘러나오는 “끝없는 오해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말하고 듣고자 하는 것들이 상대방에게 곡해되지 않고 전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오해는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걸 말하는 가사인데 비슷한 주제를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라든가 ‘보편적인 노래’에서 다루기도 했었죠.
Q. ‘영원한 사랑’이라는 제목에서 어떤 아이러니함마저 느껴지네요.
덕원 끝과 끝이 반복되어 이어지는 걸 음악 용어로 루프라고 해요. 하지만 루프를 아무리 잘 만들더라도 반복되는 음의 끝과 처음이 완벽하게 같진 않거든요. 어쩔 수 없이 미묘하게 튀는 부분이 생겨나죠. 끝과 끝을 묶음으로써 영원을 만들고자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는 것. 인생에서도 완벽함이 있다고 믿는 순간 사람은 괴로워하고 쉽게 망가지거든요.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영원을 완성하는 건 영원한 완벽함은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죠.
Q. 이번 앨범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팁이 있다면요?
덕원 스포일러를 보고 나서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감상하다 보면, 이전알아채지 못한 장치를 발견하고 또 다른 재미를 얻기도 하잖아요? 예전에 발표한 곡에서 가사를 일부 인용하는 작업 방식도 즐기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유심히 들어봐 주시면 좋겠네요.
Q. 요즘 들어 더 와닿는 브로콜리너마저의 곡이 있나요?
덕원 ‘천천히’. 키가 높게 잡혔다는 단점이 있지만(웃음), 지금 들어봐도 전반적으로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류지 4집 앨범에 담긴 ‘되고 싶었어요’. 이상하게 그 곡을 되게 좋아하는데요. 이유는 다양하지만 특히 후반 파트에서 잔디 언니의 건반에서 나오는 저음 소리가 이상하게 심장을 울려요.
잔디 저도 ‘되고 싶었어요’. 하나를 더 꼽자면 같은 앨범에 실린 ‘윙’이요. 라이브 에너지가 굉장히 좋은데, 특히 기타와 드럼이 함께 치고 들어오는 부분이 마음에 들죠.
Q. 잔잔한 멜로디에 덤덤하게 부른 곡들이 많은데도 때론 듣는 이에게 격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브로콜리너마저 음악의 매력인 것 같아요.
덕원 작업할 때 최고점을 정한 다음에 깎아나간다기보다는, 탄탄한 최저점을 구축하려 해요. 대단한 무언가를 처음부터 내놓는 것이 아니라요. 바탕을 잘 깔아놨다면 그 뒤로는 듣는 사람의 몫으로 그저 남겨두고요. 그래야만 노래에 생각할 여지를 주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 같거든요.
Q. 그렇게 내어준 ‘공간’ 덕분일까요? 음악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는 분들이 많은 이유가요.
잔디 그것 역시 저희가 무언가를 했다기보다는 들어주는 분들의 몫인 것 같아요. 곡과 듣는 사람 사이에 우리는 모르는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기 때문이 아닐까요?
덕원 코미디 법칙 중에, “관객보다 내가 먼저 웃으면 재미없어진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그런 느낌과 비슷해요.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는 의도를 곡에 담는 순간, 오히려 그런 일이 이뤄질 가능성은 더 낮아지죠. 그렇다면 쓸데없는 헛소리를 빼는 게 더 나아요.
Q. 잔디님은 정신건강의학과 간호사셨다고요. 경험을 살려 전공자로서 브로콜리너마저 음악의 정신건강의학적 이로움에 대해 분석해 주신다면? (웃음)
잔디 전공자끼리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누군가에 대해 판단하는 표현을 하지 말자. 비록 그것이 칭찬일지라도요. 매번 칭찬을 받는 아이는 언젠가 다시 또 그런 말을 듣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올까 불안감에 휩싸여요. 저희 곡은 어떤 현상을 판단 내리기보다는 간접적으로 바라보는 느낌이 강하죠. 그런 게 정신 건강과 맞닿아 있는 지점 같고, 또 제 지도교수님이 강의에서 저희 곡 ‘바른생활’을 틀면서 이런 얘기도 하셨대요. “약을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을 잘 자고 밥을 잘 먹는 생활을 유지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바른생활’의 가사가 딱 그렇거든요.
Q. 밴드를 만나면 늘 묻게 되는 질문입니다. 밴드 붐은 오고 있다고 느끼나요?
덕원 붐이 오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 말 자체가 “그런 흐름이 오지 않으면 음악을 안할 거냐”라는 이야기로도 때때로 들리거든요. 유행에 편승하여 들어왔다면, 또다시 빠져나가기도 쉬울 테니깐요. 트렌드가 된다면 그것 역시 고마운 일이겠지만, 그런 것 없이도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요.
Q. 요즘 삶의 화두를 알려주세요?
류지 건강 관리요.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마음의 평화도 결국 체력에서 나오니깐요.잔디 개인의 삶을 잘 살아가야만 음악 활동도 잘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여유를 더 가지려고 노력해요. 물론 그러는 게 쉽지만은 않네요.
Q. 앞으로 어떤 사람, 어떤 뮤지션으로 나이 들고 싶어요?
덕원 헛소리하지 않는 사람이요. 그러기 위해서 사리에 맞는 이야기를, 사리에 맞는 상황에 해야겠죠.
동혁 어떤 뮤지션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어른으로 남고 싶은지는 분명해요. 판단하지 않는 사람.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 내가 더 알고 있다는 식으로 사고하기가 쉬워지는데 그런 부분을 살면서 늘 경계하려 해요.
잔디 정신 건강을 공부했지만, 그걸 삶에 다시 녹이는 건 굉장히 다른 부분인데요. 그런 모순이 없이 내가 알고 있는 방향과 실제 삶을 일치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이죠.
류지 인생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Q. ‘졸업’의 가사처럼 “이 미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남겨준다면?
동혁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자. 생각을 하지 말고 생활을 하자. 물을 마시고 청소를 하자. ‘바른생활’의 가사예요.

'브로콜리너마저'가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는
<리빙센스>의 스포티파이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ditor권새봄
photographer김연제
장소 협조 슬로우파마씨@slow_pharmacy
스타일링 박정용
메이크업 최선화선화인
헤어박지현선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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