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리저우드 셰프와 떠나는 양조장 투어 2
A Taste of Mars
화성이란 지역을 술 한 잔에 담아내는 양조장이 있다. 이곳에서 자란 포도로 술을 빚고, 더 깊은 맛을 향한 실험을 거듭하는 마스브루어리. ‘한국적인 포도 술’이라는 경로를 개척하며, 전통주가 나아갈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조셉 리저우드 셰프와 함께하는 양조장 투어, 그 두 번째 목적지는 바로 경기도 화성시의 한적한 마을. 이곳에 자리한 ‘마스브루어리화성양조장’에서 지역의 포도와 술이 빚어내는 이야기를 만났다. 붉은 행성 ‘화성(Mars)’과 경기도 ‘화성(華城)’, 2가지 의미를 지닌 이 양조장은 화성만의 술을 빚는다. 마스브루어리의 김기명 대표가 만드는 술은 와인도, 막걸리도 아닌 ‘한국식 포도 술’이다. 전통 누룩과 쌀로 빚은 탁주에 포도를 함께 발효시키며, 은은한 포도 향과 자연스러운 단맛, 산뜻한 신맛이 조화를 이루는 특별한 맛을 완성했다. 마스브루어리는 술을 실험하는 과정을 숨기지 않는다. 당도와 산도, 알코올 도수를 직접 점검하며, 가장 맛있는 술을 연구하는 것이 김기명 대표의 일상. 방문객들이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꾸민 공간은 과학자의 실험실을 닮아 있다. 술을 빚는 방식 역시 독특하다. 전국 각지에서 공수한 누룩을 마치 조미료처럼 활용해 블렌딩하며 풍미를 조율한다. 지역별로 누룩의 특징이 다르므로 항상 10가지 이상의 누룩을 비축하고, 술마다 다른 조합을 시도하며 새로운 맛을 발굴한다고. 무엇보다도 마스브루어리는 ‘화성’이라는 지역성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오직 화성 포도만을 고집하며, 누룩과 쌀, 포도로 미세한 당도와 산도를 치밀하게 계산해 한 병의 술을 완성한다. 김기명 대표의 술에서 화성이라는 이름은 포도의 향과 맛으로 다시 태어난다. 조셉 셰프는 김기명 대표가 빚은 술을 시음하며 “화성을 담은 맛”이라고 표현했다. 지역성과 실험정신이 어우러진 술과 함께, 김기명 대표와 조셉 셰프는 지역성과 포도 술의 맛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식 포도 술이란 무엇인가요?
시작은 노을 탐방이었어요. 경기도 서쪽 노을이 워낙 아름답잖아요. 아내와 노을을 보러 다니다가, 그 빛을 담은 술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화성시는 포도로 유명한 지역인데, 정작 포도로 만든 술은 이 지역에 많지 않았어요. 술을 빚어 화성 포도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보통 포도로 만든 술로 와인을 떠올리지만, 해외 와인과 차별화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룩과 쌀을 기반으로 한 한국식 전통 술에 화성 포도를 함께 발효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이 지역에만 124가지나 되는 포도 품종이 있거든요. 청수, 샤인머스캣, 캠벨 등 다양한 포도를 품종별로 연구하고, 각각에 어울리는 술을 빚고 있어요. 포도즙을 그냥 짜 넣으면 색이 쉽게 사라지기 때문에 착즙법을 새로 개발했습니다. 누룩과 결합했을 때 포도마다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직접 술을 빚어가며 맛을 공부하고 있어요.
마스브루어리의 대표 제품 로제, 제로, 사워, 재즈는 각각 어떤 개성을 담고 있나요?
‘로제’는 가장 먼저 만들고 싶었던 술입니다. 개발까지 1년 정도 걸렸고, 화성의 노을빛을 담아내는 게 목표였죠. 저온 착즙한 송산 포도 원액을 넣고 발효해 진한 포도 향과 깔끔한 맛을 살렸습니다. ‘제로’는 포도를 넣지 않았기에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요. 누룩과 쌀만으로 포도의 풍미를 표현했죠. ‘사워’는 산미를 강조한 술이에요. 청수 포도의 신맛에 집중하기 위해, 맥주의 사워 효모를 첨가해 90일간 발효했어요. 전통주에서도 청수 포도로 산미를 살릴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재즈’는 가장 최근에 출시한 술로, 유일하게 탄산을 넣었습니다. 보르도 와인과 해창 막걸리 등 5가지 술을 블렌딩해 칵테일을 만들어온 레스토랑 셰프에게서 영감을 받았어요. 반건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아파시멘토(Appassimento)’ 공법에서 주조 아이디어를 얻어 포도를 끓이고 누룩을 더해 복합적인 맛을 냈습니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조금씩 다른 맛을 보여주는 술이에요. 이 밖에도 우리 브루어리에서 운영하는 클래스에서 전통주와 과일을 결합한 술을 많이 만들고 있어요.
술을 만들면서 지키는 기준이 있다면요?
오직 화성 포도만을 사용합니다. 지역 특산주 면허를 가지고 있어 인접지의 재료까지 쓸 수 있지만, 화성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있어요. 클래스에서는 복숭아, 사과, 유자 등 다양한 과일주도 실험하고 있는데요. 판매하는 것은 오직 화성 포도로 만든 술뿐이에요. 브루어리에서는 지역 재료로 만든 음식과 페어링하는 오마카세 주점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유자 술을 너무 많이 찾아서 가끔은 면허를 바꾸고 싶을 정도예요(웃음).
술의 신맛을 강조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지금은 신맛의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처음부터 술의 산미를 선호했던 것은 아닙니다. 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다양한 술을 마셔 보다가 한국 전통주의 단맛에 지쳤어요. 반면 맥주나 와인에서는 산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제품들이 많아요. 사워 비어라든지, 신맛을 강조한 내추럴 와인처럼요. 때때로 주질 관리가 잘 안 되었을 때 전통주에서 산미가 발생하기도 하는데요. 그런 어쩔 수 없는 산미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제어된 신맛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또 한국 음식은 염도가 높고 매운맛과 단맛이 강한 경우가 많아요. 그런 강한 맛의 음식과 술을 함께할 때, 술의 맛이 평범하면 음식의 맛에 묻히기 쉽습니다. 어느 정도 산미가 있어야 음식과도 잘 어울리고, 술과 음식이 서로를 끌어올리는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 만들었던 ‘사워’는 너무 산미를 강조하다 보니 당시엔 대중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기도 했죠. 술에서 산미를 어느 정도 살려야 맛있을지, 그 기준점을 찾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아직도 가장 완벽한 균형을 찾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어요.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주세요.
음식과의 페어링이 중요합니다. 술과 음식, 서로를 지루하지 않게 해주고, 시너지를 만들죠. 예를 들어 ‘로제’는 과메기와 찰떡궁합인데, 매콤하고 단맛이 섞인 로제 떡볶이나 로제 파스타와도 잘 어울립니다. ‘사워’는 회와 함께할 때 특유의 산미가 입맛을 살려줘요. ‘재즈’는 버터리한 스테이크나 육사시미, 뭉티기 같은 고기 요리와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술의 맛과 향은?
마스브루어리의 술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복합적인 레이어다. 꽃향기처럼 산뜻한 첫맛이 입안을 맴돈 뒤, 곧 흙 내음이 어린 고소함과 은은한 감칠맛이 뒤따른다. 비 온 뒤 허브 정원을 거니는 듯한 향은 묵직한 여운을 전한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처음부터 강하게 다가오기보다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새로운 면모가 드러난다는 점.
요리와 함께라면?
향이 강하거나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요리와 함께할 때 진가를 발휘할 것. 들깻잎과 쑥을 곁들인 훈제 오리는 허브를 닮은 술의 향과 잘 어우러지며, 훈연 오리의 맛을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짭조름한 숙성 간장 육회는 감칠맛을 돋보이게 하고, 다시마 버터를 곁들인 그을린 전복의 짭짤한 미네랄 맛이 술의 발효 풍미를 잘 끌어올려 줄 것이다.
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절제된 듯 섬세하다.
호주 출신 셰프. 영국 ‘레드버리’, 미국 ‘프렌치런드리’ 외에도 다양한 나라에서 경력을 쌓았다. 한식의 매력에 빠져 한국에 정착한 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에빗@restaurantevett’을 열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직접 재료를 채집하고, 새로운 식재료를 탐색하는 일에 진심이다. 2021년 미쉐린 영 셰프 상을 수상했으며, 2020년부터 5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 스타를, 2025년에는 미쉐린 2스타를 획득했다. 2024년 넷플릭스〈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하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editor신문경
photographer임수빈
취재 협조 마스브루어리 @mars_brew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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