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리저우드 셰프와 떠나는 양조장 투어 5

계절을 건너는 달콤함 

한여름의 더위를 견디며,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깊어지는 술, 과하주. 술아원@koreasoolawon에서 빚어낸 과하주의 달콤한 맛 뒤에는 12년간 한길을 걸어온 강진희 대표의 열정과 과감함이 함께 녹아 있다. 

 

술아원의 시그니처 과하주 중 하나인 봄 에디션, ‘술아 매화주’. 높은 도수에도 목 넘김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술아원의 시그니처 과하주 중 하나인 봄 에디션, ‘술아 매화주’. 높은 도수에도 목 넘김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여름을 지나는 술’이라는 뜻의 과하주過夏酒는 특유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특징. 그 기원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사나 손님 접대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술은 더운 날씨에 쉽게 맛이 변하곤 했다. 이를 막기 위해 발효 도중 증류주를 넣어 도수를 높였고, 덕분에 여름 더위에도 맛을 잃지 않는 안정적인 술인 과하주가 탄생했다. 과하주는 약주, 탁주, 증류주를 모두 만들 줄 알아야 하는 까다로운 술이다. 먼저 탁주를 걸러 약주를 만든 후 여기에 증류주를 섞어 저온에서 숙성시켜 완성한다. 쌀과 누룩, 물을 치대어 발효시키는 중간에 소주 같은 증류주를 첨가하면 알코올 도수가 급격히 올라가 발효가 안정되고 장기 보관이 가능해지며, 시간이 흘러도 뛰어난 맛을 자아낸다. 경기도 여주에 자리한 양조장 ‘술아원’은 12년 전,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과하주를 널리 홍보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곳이다. 술아원을 이끄는 강진희 대표는 와인 스쿨에 다니던 중 술을 직접 빚고 싶어 전통주 교육 과정을 듣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처음 과하주를 만들게 되었다.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강한 알코올 향과 거친 맛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뒤 잘 숙성된 과하주는 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술의 부드럽고 깊은 맛에 매료된 강 대표는 2014년 양조장 문을 열게 된다. 과하주는 이름에 ‘여름을 지난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 흔히 여름에 마시는 술로 여겨진다. 하지만 강 대표는 여름을 지날 수 있다는 건 곧 장기 숙성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사계절 내내 함께하기 좋은 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매력을 알리기 위해 술아원에서는 봄·여름·가을·겨울 과하주 에디션을 출시하고 각 계절을 상징하는 꽃을 더해 매 계절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20년에 출시한 ‘경성 과하주’는 고문헌에 가장 충실하게 연구, 복원한 술로 2025년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과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과하주를 선보이는 양조장이 늘어나면서 차별화를 위한 과감한 시도를 이어가는 술아원, 어느덧 과하주의 명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00년 넘게 이어온 양조장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에 우리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전한 강진희 대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전통과 실험이 어우러진 과하주의 특별함을 살펴볼 수 있었다.

양조장 한쪽에 자리한 다단식 동증류기. 방문 당시, 뜨거운 김과 함께 술이 증류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양조장 한쪽에 자리한 다단식 동증류기. 방문 당시, 뜨거운 김과 함께 술이 증류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가열된 술이 증류 과정을 거쳐 통에 모여드는 모습. 투명한 증류주가 탄생하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가열된 술이 증류 과정을 거쳐 통에 모여드는 모습. 투명한 증류주가 탄생하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기계를 살피며 술의 증류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조셉 리저우드 셰프.
기계를 살피며 술의 증류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조셉 리저우드 셰프.

Q. 처음 양조장을 시작하며 가장 고민한 점은 무엇이었나요?
2014년에 양조장 문을 열었으니 벌써 12년이 지났네요. 지금은 새로 생긴 양조장이 많아서 저희도 그중에서는 나름대로 오래된 축에 속하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한국에 3대, 4대째 이어지는 양조장이 대부분이었어요. 어떤 곳은 100년도 넘는 세월을 술에 쏟아온 곳들이었죠. 그런 술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비슷한 술을 만들기보다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싶었습니다. 부재료와 숙성 방식을 다양하게 시도한 과하주 라인, 여주 고구마를 원료로 한 소주 등 과감한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어요.

Q. 과하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양조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과하주는 참 ‘든든한 술’이에요. 발효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맛 차이가 크지 않고, 여름에도 보관이 가능하죠. 작은 양조장이 수출을 하려면 보통 고가의 살균기가 필요한데, 과하주는 알코올 도수를 높일 수 있어 살균하지 않은 생주 형태로 수출하기가 비교적 수월해요. 작은 양조장의 효자 상품이 될 수 있어요(웃음). 무엇보다도 레시피에 따라 다른 맛을 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에요. 발효 중 넣는 소주의 양과 알코올 도수, 투입 시간에 따라 다른 개성을 가진 술이 탄생하고, 숙성 기간과 부재료에 따라서도 풍미가 바뀝니다. 같은 종류의 과하주여도 양조장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무척 독특하고 흥미롭죠. 보통 술을 보관하다 보면 도수가 높아져 드라이해지고 쓴맛이 생겨요. 그런데 과하주는 찹쌀로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단맛이 나옵니다. 발효조 안에 누룩을 넣으면 그 안에서 찹쌀이 당화되고 알코올이 발효돼요. 초기에는 찹쌀 당화 속도가 빠르고 알코올 발효 속도가 느린데요. 단맛을 많이 남기려면 발효 초기에 소주를 넣어주면 되죠. 그 전통적인 발효 기법이 대단하다고 느껴 초창기에는 소비자 취향에 맞추기보다는 전통적인 과하주의 맛을 재현하는 데 더욱 집중했어요. 그래서 달콤한 맛이 강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지금은 술마다 조금씩 조절하고 있어요.

술아원의 과하주를 잔에 따르는 장면.
술아원의 과하주를 잔에 따르는 장면.
전통 레시피를 충실히 구현한 ‘경성과하주’와 여주산 찹쌀로 빚은 ‘몽상주'.
전통 레시피를 충실히 구현한 ‘경성과하주’와 여주산 찹쌀로 빚은 ‘몽상주'.

Q. 술아원만의 과하주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과하주는 이름 때문에 보통 여름에만 마시는 술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그런데 여름을 지날 수 있다는 것은 곧 장기 숙성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해요. 사계절 내내 언제든 마실 수 있다는 의미죠. 그래서 저희는 계절을 담은 과하주 시리즈를 기획했어요. 봄의 매화를 담은 ‘매화주’, 여름의 연꽃을 더한 ‘연화주’, 가을의 국화를 가미한 ‘국화주’, 겨울 에디션으로는 순수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로 ‘순곡주’를 만들어 각 계절의 향과 맛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 모든 술은 여주의 찹쌀로만 빚어 재료의 지역성을 살렸어요.

Q. 양조장을 운영하며 지켜온 철학이나 원칙이 있다면요?
사실 거창한 철학은 없습니다. 10년 넘게 운영하면서 운도 참 많이 따랐다고 생각해요. 계속 신제품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아직도 꿈만 같고요. 지금 바로 선보이고 싶은 새로운 술이 많지만, 하나의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요. 연구하고 만드는 데만 6개월, 허가를 받는 데에도 그만큼이 필요하죠. 이 과정이 저를 성급하지 않게 만들었고,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Q. 과하주를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을 추천해 주세요.
한식에는 단맛이 나는 요리가 많아요. 대표적으로 불고기 같은 음식이요. 과하주가 달콤하지만, 이런 대부분의 한식과 함께 곁들여도 잘 어울립니다. 디저트 와인처럼 초콜릿과도 궁합이 좋고, 새콤한 회무침과 함께 마셨을 때도 조화로워요. 개인적으로는 안주 없이 마실 때가 많은데요(웃음). 과하주의 향과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과하주를 맛보는 조셉 셰프.
과하주를 맛보는 조셉 셰프.
Tasting Note

과하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레스토랑의 전통주 리스트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던 과하주가 바로 술아원의 제품이었어요. 직접 양조장을 방문해 다시 마주한 술에서는 즐기는 사람이 한정적인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12년 동안 묵묵히 빚어온 시간이 느껴져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또 최근 좋은 소식이 있었죠. 레스토랑 에빗이 세계적인 와인 전문지 〈The World of Fine Wine〉이 주관하는 ‘World’s Best Wine Lists Awards 2025’에서 아시아 최고 스파클링·롱 와인 리스트에 선정된 거예요. 그러나 저는 언제나 전통주 리스트를 더 널리 알리고 싶었기에, 이번 기회에 양조장을 찾아 더 깊이 배우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술의 맛과 향은 어떠했나요?
과하주는 디저트 와인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어요. 알코올의 존재감이 거의 없고 무겁지 않아 마시기 편합니다. 알코올 도수는 약 20도로 일반 소주보다 높지만 부드럽게 넘어가요. 누룩 향이 느껴지면서도 과하지 않아 향과 맛의 균형이 뛰어납니다.

함께 곁들였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무엇일까요?
떡볶이 같은 매운 음식과 특히 잘 어울려요. 달콤한 맛이 매운맛을 중화시키며 조화롭게 어우러지죠. 매운 음식과 함께한다면 한 병을 다 마셔도 부담이 없을 거예요.

 

 

조셉 리저우드Joseph Lidgerwood
호주 출신 셰프로 영국 ‘레드버리’, 미국 ‘프렌치런드리’ 외에도 다양한 나라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한식의 매력에 빠져 한국에 정착한 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에빗@restaurantevett’을 열고 전국 각지를 돌며 직접 재료를 채집하고 새로운 식재료를 탐색하는 일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다, 2021년 미쉐린 영 셰프 상을 수상했고 2020년부터 5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 스타를 받은 데 이어 2025년에는 미쉐린 2스타를 획득했으며 2024년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하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CREDIT INFO

editor신문경

photographer임수빈

취재 협조술아원 soolawon.co.kr, @koreasoola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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