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테토의 아트스페이스 68

사진가 김용호는 잡지 혹은 광고 비주얼을 만든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사다. 아마 지난 수십 년간 그의 사진을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는 사진가 김용호의 작업 세계.  


창덕궁에서 특히나 잘 어울리는 ‘매화는 늙어야 합니다’ 시리즈.
창덕궁에서 특히나 잘 어울리는 ‘매화는 늙어야 합니다’ 시리즈.

 

 

김용호 KIM YONGHO 

국내 최고 매거진과 기업, 브랜드의 사진 작업을 통해 시대를 풍미한 사진가.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작가만의 독특한 시선과 분위기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백남준과 이어령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인들과의 작업도 주목받았다. 

 

사진가이기보다는 사상가
김용호 작가의 사진은 익숙함을 벗겨낸다. 어떻게 보면 그의 작업들은 하나로 모아지는 세계가 아니라, 마치 별들이 이리저리 뻗어나가 무한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우주 같아 보인다. 같은 작가의 작업이라고 믿기 어려운 다양한 작품 세계 속에서 그는 한 가지 철학을 고수한다. ‘너머에 있는 것을 보는 것’. 우리는 주로 수면 위에서 연잎을 바라보지만, 작가는 연잎을 관찰하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간다. 진흙탕 속에서 바라보는 연잎의 뒷면은 마치 달의 뒷모습처럼 생경하고 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연꽃 대의 가시에 찔리고 진흙 속에 푹푹 빠졌지만, 작가는 그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찾았다. 잠시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 그의 작업은 ‘※피안彼岸’을 만났고, 이것이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에피소드다. 마크 테토가 김용호 작가의 작품에 매료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익숙하지 않은 앵글에서 느껴지는 색다름,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한 기분.

피안 강 저쪽 둔덕이라는 의미에서 종교나 철학에서 이쪽의 둔덕, 즉 차안此岸의 상대어로,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에 이름을 뜻한다. 

오래된 빌라에 임시로 마련했다는 김용호 작가의 사무실. 작가의 여러 작품과 앵무새가 공존하는 오묘한 공간이다.
오래된 빌라에 임시로 마련했다는 김용호 작가의 사무실. 작가의 여러 작품과 앵무새가 공존하는 오묘한 공간이다.
김용호 작가가 옛 카탈로그와 잡지 작업들을 꺼내 보여주었다. 지금 봐도 여전히 최고의 감도를 자랑하는 그의 작업에 마크 테토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물속에서 연잎을 촬영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아요. 

시원한 물과 바람의 감촉이 저를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이끄는 느낌이었어요. 

그게 바로 ‘피안彼岸’이었던 것 같아요.

 

지난 9월 창덕궁 낙선재 일원에서 열린 K-헤리티지 아트전,〈이음의 合〉에 전시된 김용호 작가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와 마크 테토.
지난 9월 창덕궁 낙선재 일원에서 열린 K-헤리티지 아트전,〈이음의 合〉에 전시된 김용호 작가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와 마크 테토.
김용호 작가가 옛 카탈로그와 잡지 작업들을 꺼내 보여주었다. 지금 봐도 여전히 최고의 감도를 자랑하는 그의 작업에 마크 테토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김용호 작가가 옛 카탈로그와 잡지 작업들을 꺼내 보여주었다. 지금 봐도 여전히 최고의 감도를 자랑하는 그의 작업에 마크 테토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M 작가님은 패션모델을 촬영하는 사진작가시지만, 스스로도 패션모델처럼 스타일이 좋으세요.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유년기를 부산에서 보냈는데,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외국 잡지들을 보면서 직접 옷을 맞춰 입을 정도로 열정적이었죠.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저와는 맞지 않았고, 서울에 올라와서 일을 시작할 때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면서 광고 비주얼 작업을 담당하게 되었죠. 지금은 없어졌지만 ‘허리케인’이라는 패션 브랜드였는데, 당시에는 인기가 높았어요. 지금도 그때 제가 만든 카탈로그를 가지고 있어요.

M 1985년이라니! 벌써 40년 전인데, 이렇게 멋진 책자를 만드셨다니 정말 놀라워요.
네, 제가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다 했죠. 일부러 이국적인 공간을 찾아다니면서 촬영을 했는데, 그때도 새로운 방식이라는 평가가 많았어요. 당시에도 사람들이 “아니 패션 사진인데 왜 모델 얼굴이 더 크게 나오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패션이라는 것은 옷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할 때 나타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답해주었습니다. ‘당신이 이 옷을 입으면 이런 분위기, 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가 핵심 메시지였죠.

M 정말 멋진 철학이네요. 패션 광고 담당에서 자연스럽게 잡지 사진을 촬영하신 거예요?
‘허리케인’ 이후에는 ‘공간’이라는 건축회사의 사진부장으로 일했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국 최고의 건축회사였고, 동명의 문화예술 잡지도 발행했죠. 올림픽 스타디움이 세워졌을 때도 촬영하고, 88올림픽 때는 서울을 기록한 사진도 촬영하고요. 하지만 회사를 오래 다니지는 않았고, 그 이후에 독립해서 잡지사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어요. 〈우먼센스〉, 〈레이디경향〉, 〈여성자신〉 등 여성지들이 태동하고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때예요. 그때부터 여성지, 패션지 등 다양한 잡지사와 꾸준히 작업을 함께했습니다.

M 잡지사와 기업의 사진가로도 활약하셨는데, 언제부터 개인 작업을 시작하신 거예요?
개인 작업은 상업사진 작업을 하면서도 꾸준히 했었어요. 언젠가는 꼭 파인아트를 할 거야, 라는 생각보다는 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고 했죠. 예를 들어 〈지큐(GQ)〉라는 잡지에서 인물전을 했었는데요. 제 친구였던 김중만 작가가 그걸 보고 제 인물 사진이 참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해볼 생각으로 기업의 후원을 받아, 백남준부터 이어령까지 다룬 〈대한민국 문화예술 명인전〉이라는 걸 하게 됐어요. 꽤 큰 전시였죠.

자신의 작업 ‘피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용호 작가. 아래쪽에서 보는 연잎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만들어준다.
자신의 작업 ‘피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용호 작가. 아래쪽에서 보는 연잎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만들어준다.

 

패션이라는 것은 옷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할 때 

나타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죠. ‘당신이 이 옷을 입으면 이런 분위기, 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가 핵심 메시지일 거예요.

M 최근 창덕궁에서 열린 전시도 정말 좋았어요. 연잎과 매화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었는데, 각각 다른 작품인 것 같으면서도 함께 있으니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작년에 구찌에서 인물과 자연, 풍경을 함께 전시하신 것도 흥미로웠고요.
관객의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구찌와의 협업 전시는 인물과 자연이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 것들을 사진으로 담은 것들이에요. 예를 들어 조성진과 바위 사진을 함께 전시했어요. 울산의 한 바위였는데, 바위라는 건 지구의 역사와도 같잖아요. 그런데 그 바위가 마치 피아니스트의 손처럼 생겼어요. 그러니까 클래식 연주자들의 손은 지구의 역사처럼 오랜 수련을 통해서 나타나는 걸 상징적으로 표현했고요. 안무가 안은미를 촬영한 작품은 제목이 ‘도망치는 미친년’이에요. 매화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고, 봄바람이 불면 도망치는 미친년들이 생기죠. 그 안에서 생명력 같은 것이 보인달까? 그래서 매화와 안은미 사진이 딱 붙은 거죠. 

M 작가님께서 앞으로 계속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으시다면요?
2007년에 대림미술관에서 〈몸〉이라는 전시를 했었어요. 인체를 다양한 시선, 각도로 촬영해서 좀 더 새롭게 바라보길 바랐던 마음으로 작업을 했죠. 그래서 아름다운 누드는 아니에요. 오히려 조금은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미술관, 매거진과 협업을 하면서 여러 변주들을 만들었고, 몸을 탐구하려고 해부학 박물관도 여러 차례 다닐 정도로 재미를 느낀 작업이었어요. 그 작업을 통해 오히려 저는 명상을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작업이 저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촬영 기술이 더 좋아지고, 좀 더 깊이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전시를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희망사항도 있어요.

M 연꽃 등 풍경 작업을 보면 한국의 미도 전해져서 저는 더 특별하게 느낍니다. 작가님의 앞으로 작업이 더 기대되기도 하고요.
저는 특별한 목표의식이 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꾸준히 뭔가 더 탐구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새로운 방식에 도전하면서 깨달음도 얻고, 또 미지의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제가 늘 익숙하게 접한 한국적인 아름다움도 함께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곧 카메라 브랜드와 전시를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어떤 주제를 담을지 고민이에요. ‘메이크 다큐멘터리’라고 이름 붙여서, 제가 직접 서사를 만들고 촬영하는 방식을 해보려고 하는데, 좋은 이야기가 전달되면 좋겠어요.

 

MARK TETTO JTBC〈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 생활 14년 차, 북촌의 한옥 마을에 거주하며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매일 누리고 있다. 경복궁 명예 수문장을 역임하고, 한국 공예품과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 중 한 명. 매달〈리빙센스〉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CREDIT INFO

editor심효진

photographer김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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