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ONGS, BEYOND SELF
음악밖에 모르던 과거에서 벗어나, 스스로는 물론 타인까지 긍정하게 만들어주는 또 다른 탈출구 안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 장재인. 그녀는 이제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본다.
여기, 숫기가 없어 음악으로밖에 스스로를 표현할 수 없던 한 소녀가 있다. 남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가장 편한 소통 수단이 노래와 기타여서 무대에 오른 사람. 바로 싱어송라이터 장재인이다. 단 한 번도 ‘남들이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적 없던 그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독특함이 〈슈퍼스타K〉출연 당시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미래를 예상하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던 탓일까. 음악 외에는 모든 것이 서툴렀던 그녀는 쏟아지는 관심을 즐기지 못했고, 오히려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심지어 그 원인을 그토록 사랑했던 음악에게 돌리기도 했다. 시간은 유독 느리게 흘러 그 시기도 과거가 되었을 무렵, 음악 외에도 소중한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마음도 훨씬 여유로워졌다. 이제는 가수라는 본업 외에도 전시음악감독, 패션모델로서 활동하며 세상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스스로 만든 좁은 방에서 괴로워하던 장재인은 이제 없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진 덕분일까. 요즘 유독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고.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만끽하고 있기에, 최근 작업한 곡들이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6년 만에 발표하는 새 앨범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먼저 3월에 선보일 선공개곡까지. 곧 세상에 나올 그녀의 세계를 함께 그리며, 봄의 문턱에서 장재인을 만났다.
Q. 꽤 오랜만에 마주한 독자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간 자신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슈퍼스타K>가 끝난 후 한때 큰 슬럼프를 겪었어요. 하지만 저를 변화하게 만든 터닝포인트 같은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2021년에는 전시음악감독을 맡았고, 작년부터는 새로운 소속사 대표님과 함께 본격적으로 모델 활동도 시작하면서 다시 데뷔한 느낌마저 들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변화했고, 음악만큼이나 저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일들도 찾게 됐어요.가장 큰 사랑을 받던 <슈퍼스타K>시기에 슬럼프가 왔다니, 조금 의외네요.굉장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로 음악을 시작했으니까요. 그런 저에게 대중이 예상치 못한 큰 사랑을 보내니까, 오히려 그 관심이 버겁게 느껴졌어요. 그때의 저는 여러모로 서툴고 어려서 힘든 원인을 음악에 돌려버렸죠. 한동안은 아예 음악을 듣지도 않았죠. 그때 비로소 깨달았어요. ‘대중적 관심이 나의 행복과는 별개구나. 나는 결국 자기만족을 위해 음악을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요.
Q. 프로그램 출연을 후회하기도 했나요?
벌어질 일은 다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과거를 후회하진 않아요. 다만, 무방비 상태로 큰일을 맞닥뜨렸던 저에게 누군가 “그것도 한때니까 조금만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해줬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하지만 그때의 일들도, 슬럼프도 겪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겠죠.
Q. 어떤 계기로 다시 음악을 마주하게 된 거예요?
2021년에 한 전시에서 음악감독을 맡으면서요. 전시음악이라는 게 굉장히 자유롭더라고요. 대중음악은 그렇지 않잖아요. 곡의 길이나 주제에 대한 일정한 틀이 있고, 공식화된 전형들이 존재하죠. 그런데 전시음악은 마치 흰 도화지 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듯 곡을 만들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요. ‘이것만 평생 해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요. 그 과정에서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중엔 DJ 친구도 있는데, 마치 과거의 저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이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자연스레 소홀했던 시간만큼 더 깊이 음악을 사랑하게 됐어요. 그렇다면 이 소중한 음악을 되찾아준 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냐고 되물어봤을 때.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건, 곡을 쓰는 일이더라고요. 그런 마음으로 만든 곡이 바로 2023년 8월에 발표한 ‘파랑’이에요.
Q. 그 곡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가 유독 남다르다고요?
살면서 처음으로 타인을 생각하며 만든 보편적인 음악이니까요. 이전까지 저는 음악에 오롯이 개인적인 경험만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도 자기만족에 가까운 곡만 써왔고요. 그런데 그렇게 음악에서 타인을 배제했던 제가, 누군가를 위해 곡을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파격적인 변화인 거죠. 그 과정을 통해 보편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그 고민이 자연스럽게 지금 준비 중인 2집 앨범의 주제로 이어졌어요.
Q. 장재인이 생각하는 보편성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말하는 보편성이란, 결국 ‘남들이 듣기 좋은 음악’ 정도일 거예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전혀 대중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요(웃음). 다만, 듣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악기 한 대만 두고, 그저 편안한 멜로디를 들려주려 합니다. 창법도 마치 옆에 앉은 새가 속삭이듯 조곤조곤하게 부르려고 해요.
Q.2집 앨범에 대해 조금 더 힌트를 주세요.
곡의 소재는 자연이 될 거예요. 돌멩이도 있고, 과일 이름도 있고, 혹은 땅 파기 같은 어릴 적 시골에서 놀던 순간조차 소재가 될 수도 있죠. 제가 생각하는 ‘보편성’이 뭘까 고민했을 때 떠오른 이미지들이었거든요. 어릴 때 자연 가까이에서 3개월 정도 살았던 경험이 제게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런 주제들을 떠올리게 된 것 같아요.
만약 과거의 저를 잘 아는 사람이 지금 이야기를 들으면, “재인이 네가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닌 이런 주제를 노래한다고? 30대가 되더니 많이 컸구나, 성장했네”라는 말을 할지도요(웃음).
Q. 그 변화 속에서도 그간 고수한 정체성이 있다면요?
재미 요소를 어떤 식으로든 넣으려고 해요. 그간 음악을 하면서 지켜온 철칙과도 같죠. 예를 들면, 멜로디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도약하거나, 흐름이 평이할 땐 낯선 단어를 사용해 보는 거예요. 이번 앨범 곡 중 3월에 발매할 선공개곡 가사를 윤종신 선생님께 들려드린 적이 있는데, 재미있어 하셨어요. “싸리잎이 깨어나 무등지면 마중을 나서요”라는. 이처럼 일상에서 자주 쓰지 않는 예쁜 표현들을 찾아 사전도 뒤져보고, 가사에 녹여내려 노력했어요. 단 몇 명이라도 제 음악 속 작은 재미들을 발견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찰 것 같습니다.
Q. 요즘은 어떤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나요?
감히 말하자면, 제가 쓴 멜로디요. 1집 때 만든 곡들은 아름답다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최근에 쓴 멜로디 중 훅에서 도약하는 곡을 들었을 때는 “너, 꽤나 아름다운 방식을 택했구나”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웃음). 물론, 미적인 감각은 굉장히 개인적인 거니까요.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Q. 앨범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를 해주세요.
“모두가 기대했던 장재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이 말의 의미는, 기타를 들고 있으니 익숙한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음악은 전혀 다른 결이거든요. 발성조차도요. 조금 더 어렸을 때 만든 곡들이 록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좀 더 아름다운 형태의 음악이 나오고 있어요. 확실한 건 록이 아닌데, 독특한 포크에 가깝겠네요.
Q. 최근 한 브라질 보사노바 가수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고요?
포크 특유의 저항 정신을 가지고 있는 갈 코스타gal costa라는 브라질 가수인데요. 흔히 치마를 입으면 조신하게 앉아야 한다”거나, “포크 가수는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어야 한다” 같은 편견이 있잖아요. 그녀는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에요. 살이 훤히 드러나는 프린지 드레스를 입고, 다리를 자유롭게 뻗으며 노래하죠. 특히 ‘Volta’ 공연 영상을 보고는, 어떤 해방감마저 느끼면서 눈물이 절로 났어요. 그 영향 때문인지, 저도 요즘 포크 가수가 입지 않을 것 같은 의상을 입고 릴스를 찍곤 하는데, 꽤 재미있더라고요.
Q. JTBC <비긴어게인 오픈마이크>를 통해 오랜만에 방송 카메라 앞에서 노래했어요. 후기가 궁금합니다.
‘함께한 출연진 분들, 정말 다 멋지고 예쁘다!’라는 생각?(웃음) 연예인 친구들이 많은 편도 아니라서요. 또 데뷔한 지 꽤 흘렀는데도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각 잡고 노래하면 쭈뼛거리게 돼요(웃음). 작은 방과 편한 친구 앞에서 노래하고 기타 칠 때 가장 자연스럽죠. 하지만 이 모습을 바꾸려곤 하지 않아요. 누군가는 능숙한 모습이 어울릴지라도. 지금이 더 장재인스러운 걸요(하하). 그래도 불러주셔서 감사했습니다.
Q. 요즘엔 어떻게 하루를 보내요?
2021년에 작업했던 전시음악을 앨범 형태로 정리해 보고 싶어서 그 작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정규 2집 앨범도 준비 중이라 기타 연습도 하고, 곡도 완성해야 해서 늘 긴장 상태죠. 1절까지는 모든 곡을 완성했고, 2절까지 완성된 곡은 두세 곡 정도라서. 녹음만 들어가면 빨리 발표할 수도 있는데요. 발매 시점은 아직 장담 못 해요. 제가 곡들에 얼마나 더 집착하느냐에 달려 있으니까요(웃음). 그래도 빠르면 올해 안에 나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어요. 밀라노 패션 위크에도 참석할 예정이라, 모델 활동으로 바쁘게 지낼 것 같아요. 남는 시간에는 책도 더 읽고 싶어요.
Q.음악 외에도 또 다른 것들에서 큰 즐거움을 얻고 있다고요.
오늘처럼 카메라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일인데요. 음악처럼 스스로 선택한, 나의 일이자 자기애를 갖게 해준 최초의 일이죠.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이건 하면 안 돼”라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랐어서 자기애가 강한 편이 아니었죠. 하지만 모델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현장에서 결과물을 보고 “잘 나왔다, 예쁘다” 라고 말해 주는 걸 듣고, ‘나도 예쁠 수 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됐어요. 이제는 무대에서는 일과 비할 정도로 이 일을 좋아해요. 어찌 보면 대중 가수로서 부족한 상업성을 모델 일이 보완해 주는지도 모르겠어요.
Q.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다면요?.
먼저, 찰스 디킨스의《두 도시 이야기》요. 여러 번역본을 읽어봤는데, 특히 시공사 번역본으로 꼭 읽어봐야 해요. 그리고 웹툰&드라마〈유미의 세포들〉의 어른 판 같은 느낌의 양귀자 작가님의《모순》, 스튜디오 지브리의 음악감독 ‘히사이시 조’와 뇌과학 권위자 ‘요로 다케시’가 나눈《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까지 푹 빠져 있습니다.
Q.이제 자신에게 음악 말고도 즐거운 것들이 많아졌군요?
맞아요. 음악 역시 앞으로도 두 자아를 모두 펼쳐보려고 해요. 어느 날은 가사 없는 전자음악도 만들고, 또 때로는 가사가 있고 보컬이 얹힌 대중음악도 하면서요. 모델 일도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하고 싶거든요. 요즘에는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이 행위예술의 한 단계씩 밟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먼 훗날의 장재인은 어쩌면 행위예술가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지도요(하하).
editor권새봄
photographer김연제
장소 협조비에프디 @bfd_kr
스타일링안리엔 @hyangll
메이크업예담 @ye___.dam
헤어소미 @s0m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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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돌아온 정세운, 오늘을 노래하는 뮤지션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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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단히 땅을 딛고 노래하는 홍이삭
